검수완박 '국민투표' 승부수 던진 尹…헌법학자들 의견은?

by이배운 기자
2022.05.01 07:00:00

"투표법 위헌이라 불가" vs "보완할 규칙만 만들면 돼"
"국가안위 문제 단정 못해" vs "내치 바꾸는 중대 사안"
"명확한 폐지 규정 없어" vs "정당성 없는 법 폐지가능"

[이데일리 이배운 기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이 더불어민주당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단독 처리에 맞서 회심의 카드로 국민투표를 제안하면서 실제 성사 가능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27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 앞에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검수완박)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연합뉴스)
1일 정치권과 법조계에 따르면 현재 국민투표 제안을 놓고 떠오른 핵심 쟁점은 △국민투표법 일부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상황에서 투표법의 효력이 있는지 △검수완박을 헌법에서 규정한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으로 볼 수 있는지 △이미 공포된 법안을 국민투표로 되돌릴 수 있는지 등 세 가지다.

헌법 분야 전문가들은 국민투표법의 효력은 유효할 수 있다는 데 대체로 의견이 모이지만, 검수완박을 ‘국가 안위’가 걸린 문제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선 해석이 엇갈린다. 나아가 국민투표가 시행되더라도 공포된 법안을 되돌리는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앞서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측의 검수완박 국민투표 제안과 관련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측은 “재외국민의 참여가 제한되는 점 때문에 국민투표법은 2016년부터 효력을 상실했다”며 “현행 규정으로는 투표인 명부 작성이 불가능해 국민투표 실시가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2014년 헌법재판소는 재외국민의 투표인 명부 작성 부분을 다룬 국민투표법 14조1항이 재외국민 투표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2015년 12월까지 개선 입법이 이뤄지지 않으면 해당 조항이 효력을 잃는다고 결정했고, 국회는 아직까지 조항을 개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검수완박 국민투표를 시행하려면 국민투표법 개정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게 선관위 측 입장이다. 이에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의 선택에 관심이 모이지만, 민주당은 국민투표 제안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법 개정에 응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럼에도 선관위의 주장이 타당하지 않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한국헌법학회 회장을 역임한 신평 변호사는 “하위 규범인 법률의 미비로 그보다 상위 규범인 헌법의 효력이 무력화된다는 것은 본말전도다. 법률의 특정 조항이 위헌이라 무효라도 그 법률 전체가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다”며 “헌법상 대통령의 국민투표 부의권은, 국민투표법 자체에 일부 흠결이 있다고 해도 유효하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헌법재판소 헌법연구원 출신 황도수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문제의 헌법 불합치 결정은 국민투표제가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재외국민도 투표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선언하는 의미”라며 “헌법 조문을 보면 선관위는 법률을 구체적으로 시행하기 위해 ‘규칙’을 만들 수 있다. 따라서 재외국민의 투표권 보장을 위한 규칙을 만들면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라고 강조했다.

한국헌법학회 부회장을 지낸 이호선 국민대 법대 교수도 “국민투표법의 효력 여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면 대법원에 맡길 일이지 사무를 집행하는 기관인 선관위가 자의적으로 해석을 하는 것은 명백한 월권”이라며 “국민투표 부의권(신청권)은 대통령에게 있으며 선관위는 국민투표를 관리할 책임만 있고 거부할 권한은 없다”고 비판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28일 대전광역시 중앙시장을 방문해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인수위사진기자단)
다만 검수완박이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는 사안인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국민투표에 관한 규정인 헌법 72조는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는데, 검수완박이 이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선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로스쿨 교수는 “검수완박에 전면 반대하는 진영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국가 안위가 직결된 문제라고 보지만, 반대 진영의 시선에서는 그렇지 않다. 현 시점에서는 외교·국방·통일과 동격의 문제라고 함부로 단정 지을 수는 없는 것”이라며 “법안마다 국민투표에 부칠 거면 아예 국회가 필요 없다. 6.1 지방선거가 지자체의 발전이라는 본래 목적을 잃고 정치 내전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점도 짚고 넘어갈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재윤 헌법재판연구원 교수는 “헌법도 아닌 일반 법안이 통과되는 상황을 가정한 다음에 이 구체적인 법안의 효력을 ‘없애겠다’ 식으로 국민투표를 하는 게 오히려 헌법에 반할 소지가 있다”며 “차라리 검수완박에 대한 어떤 추상적인 방향에 대해서 국민투표를 하고, 그 방향에 맞춰서 국회가 법안을 개정해 나가는 것이 현실성 있는 방안일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또 다른 일각에선 검수완박도 국가 안위와 직결된 사안으로 볼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호선 교수는 “국가의 기능은 크게 내치와 외치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이 중 내치는 내부의 범죄로부터 국민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라고 규정하며 “이 내치 시스템을 바꾸겠다는 검수완박은 국가 안위와 연결된 중대한 문제로 볼 수 있고, 이 사안으로 국론이 분열됐다는 측면에서 당연히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고 했다.

황도수 교수는 “애초 민주당의 검수완박 추진 과정은 국회의 입법 독재로 절차상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며 “국민의 뜻을 대표하는 대통령이 국민투표를 신청해 입법 독재를 견제한다는 차원에서도 투표를 실시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한편 또다른 일각에서는 실제로 국민투표가 시행돼 ‘검수완박 철회’에 국민 다수가 찬성해도 이미 공포된 법안을 되돌릴 방법이 명확하지 않을뿐더러 자칫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할 수 있는 만큼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조언도 제기됐다.

정웅석 한국형사소송법학회 회장은 “헌법은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고 명시는 하고 있지만, 투표에 부친 다음에 어떤 효력 발생하는지에 대해서는 내용이 없다”며 “국민투표로 법률을 폐기할 수 있는 제도적 강제성이 있기보단 법률의 정당성을 상실 시키는 정치적 측면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검수완박은 이미 입법과정에서 정당성을 상실했다는 점을 근거로 어떻게든 폐지가 가능하다는 주장이 일부 헌법학자들 사이에서 나온다”고 전하면서도 “국민투표가 법안 폐지로 결론나더라도 실제 폐지 방법을 놓고 격론과 정치적 혼란이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