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물과 똑같다'로는 부족하다…대하드라마 품은 '자두'

by오현주 기자
2022.04.25 03:30:00

△갤러리나우서 개인전 연 작가 김대섭
''자두작가''가 우주론 심은 ''물아'' 연작
낡은 목재에 올리고 추구한 세상 조화
"수많은 생명 품은 별들이 놓인 은하계"

김대섭 ‘물아’(物我·2022), 나무에 오일, 43.5×45㎝(사진=갤러리나우)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제 또 얼마 남지 않았다. 탱글탱글한 노란 속살에, 아니 그 이전, 붉은 피부결을 따라 투명한 수분을 총총히 매단 저 과일의 계절이 말이다. 사과와 복숭아, 그 어디쯤 놓일 ‘자두’란 과일이 이만큼 조명을 받았던 때가 있을까. 관심을 뜻하는 은유가 아닌 진짜 조명 말이다.

‘자두작가’라 불리는 김대섭(50)의 붓을 만난 덕이라면. 작가는 줄곧 자두를 그려왔다. 물론 자두만 그린 건 아니다. 사과, 복숭아, 모과, 포도 등 거의 과수원에 가깝다. 하지만 유독 자두가 빛난다. ‘실물과 똑같다’는 표현으론 적절치 않다. 작가가 화면에 옮겨놓은 자두는, 생김새를 넘어 역사와 드라마를 다 품고 있으니까. 태생부터 지녔던 하얀 분, 나무에서 꺾일 때 난 상처, 이동 중 생겼을 사람의 손자국까지.



게다가 궁극의 종착지라 할 바탕은 흔한 캔버스가 아닌, 오랜 세월을 견뎌온 늙은 나무판 혹은 소반 위다. 그 위에서 스토리까지 만드는 거다. 이 모두는 작가의 ‘큰 그림’이다. “투박하고 낡은, 오래된 목재를 바탕으로 수많은 생명을 품고 있는 별들이 이리저리 배치돼 하나의 은하계를 이루는 것”이라고. 장구한 시간에 딱딱하게 굳은 형상과 이제 막 태어나 말랑하고 유연한 형상이 만나 한몸이 되는 세상. 그래서 외물과 자아, 과거와 현재, 허상과 실상 등이 마주친 ‘물아’(物我·2022)가 됐다.

서울 강남구 언주로152길 갤러리나우서 여는 개인전 ‘관계: 소리 없는 대화’(Relationship: Conversation of the Heart)에서 볼 수 있다. 전시는 5월 3일까지.

김대섭 ‘물아’(物我·2022), 나무에 오일, 67×20㎝(사진=갤러리나우)
김대섭 ‘물아(物我·2022), 나무에 오일, 76×49×6㎝(사진=갤러리나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