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공예은 기자
2021.07.12 00:25:41
"탈덕하면 굿즈?앨범 처리 곤란"
"사회면 장식하는 아이돌에 실망"
소속사 상술 비난 및 환경오염 우려도 제기
문화평론가 "실리추구성향·덕질 올인에 대한 회의감 때문"
예나 지금이나 팬들의 아이돌 사랑은 여전하다. 하지만 한 가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바로 덕질할 때 ‘가성비’를 고려한다는 것이다.
2020년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MZ세대 2,33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소비성향 조사에 따르면 51.2%가 가성비 소비를 선호한다고 답했다. 이러한 경향 때문인지 아이돌 덕질을 할 때도 가성비를 추구하는 ‘가성비 덕질’을 하는 추세다.
“굿즈?앨범 사봤자 탈덕하면 쓰레기... 환경에도 악영향”
가성비 덕질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덕질을 할 때 구매한 굿즈와 앨범이 탈덕 후에 처리해야 할 ‘쓰레기’가 된다는 것이다.
김민경(25)씨는 “혹시 모를 미래의 상황을 위해 가성비 덕질을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아이돌 멤버가 논란을 일으키면 팬들이 탈퇴를 요구하거나 보이콧 하는 모습을 종종 본 적이 있다"며 "문제가 심각해지면 그동안 구매했던 앨범과 굿즈를 처리하기 힘들어지는 상황에 이르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이러한 이야기를 보고 들으며 부정적인 상황에 대한 감정소모를 최대한 피하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좋아하고 싶어서 가성비 덕질을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온라인 중고마켓 ‘당근’에서 본인이 탈덕한 아이돌의 앨범과 굿즈를 싼 값에 처분하는 게시글을 찾아볼 수 있다.
일각에서는 처분하지 못한 앨범들이 환경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의견도 있다.
진주(24)씨는 “이사 준비를 하면서 짐을 줄이려고 과거에 구매한 아이돌 앨범을 정리 하는데 앨범 어느 곳을 찾아봐도 분리배출표시가 없었다”며 “이 많은 것들이 분리수거도 안 되고 쓰레기로 돌아가는구나 싶어서 그때부터 앨범과 환경오염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어 “앨범과 환경오염 문제는 소속사가 먼저 나서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팬들이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한계가 있으니 앨범 구성에 변화를 준다거나 분리수거가 가능한 재질로 바꾸는 등 음반 제작사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대다수의 아이돌 팬들이 앨범 구매에 집착하는 이유는 앨범을 많이 살수록 팬사인회에 참가할 수 있는 당첨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명 아이돌 그룹의 경우 수백장을 사야 팬사인회 응모가 가능할 정도로 ‘팬싸컷’(팬사인회와 커트라인의 합성어)이 높다.
실제로 아이돌 팬들이 가장 활발히 이용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트위터에서는 팬싸컷을 돈주고 구매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아이돌 앨범에는 그룹 멤버 중 1인의 포토카드가 랜덤으로 들어있는데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멤버(최애)의 포토카드를 얻기 위해 수십장의 앨범을 사곤 한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팬들은 앨범을 많이 살 수밖에 없다.
이하얀(29)씨는 “앨범을 많이 사야 가수를 만날 수 있다는 게 굉장히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이돌에겐 앨범 성적이 중요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한편으로 앨범 판매량을 운운하는 것도 솔직히 조금 구시대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산업 전체로 보면 큰 비중은 아니겠지만 앨범을 제작·폐기하는 것을 고려하면 환경파괴라고 생각한다”며 지적했다.
“팬 기만하는 아티스트?소속사에 회의감 느껴”
2019년 가수 승리, 최종훈씨가 도덕적 물의를 일으켜 많은 팬들에게 실망감을 주었다.
이처럼 아이돌이 마약, 음주운전 같은 범법행위를 하거나 성추문 논란 등 팬들을 크게 실망시키는 경우를 보고 가성비 덕질을 결심하는 경우도 있다.
이유진(22)씨는 “이전에 좋아했던 아이돌이 크게 실망을 주는 행동을 해서 덕질 하면서 얻은 좋은 추억이 순식간에 쓰레기가 됐다”며 “이것에 큰 회의감을 느껴 다른 아이돌을 좋아할 때부터는 덕질을 할 때 가성비를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이씨는 "덕질이란게 아이돌이 팬층을 두텁게 형성해야 가능한 것"이라며 "아이돌 본인이 망가지는 모습을 본 뒤로 깊게 덕질 하는 것을 멀리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한편 소속사가 소비를 부추기는 팬덤 문화를 조성하는 것에 회의감을 느껴 가성비 덕질을 하게 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포토카드, 팬 사인회 등 덕질에 필수적인 것들을 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돈을 써야 하는 구조라는 것.
이솔지(26)씨는 "돈을 써야만 팬심을 표현할 수 있는 현행 스타 마케팅이 마음에 들지 않아 가성비 덕질에 입문했다"며 "소속사가 소비를 조장하는 팬덤 문화를 만들어 내가 소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보다 더 많은 돈을 쓰는 팬에게 모든 혜택이 돌아가게 된다"고 말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이같은 현상에 대해 "실리를 추구하는 문화가 폭넓게 확산되었기 때문에 그게 덕질에도 자연스럽게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말했다. 하씨는 이어 "아이돌들이 잇달아 구설수에 휩싸이면서 그들의 도덕성에 대한 의심을 하게 되고 인생을 다 바치면서까지 덕질을 할 가치가 있는가 하는 회의감이 들면서 가성비 덕질을 하게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 스냅타임 공예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