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kg 철판이 바람에 접혀?..故이선호 측 "정부도 응답하라"
by박지혜 기자
2021.05.13 00:15:00
故 이선호 씨 산재에 원청업체 사과...유족 "보여주기식"
[이데일리 박지혜 기자] 지난달 평택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300㎏ 컨테이너에 깔려 숨진 고(故) 이선호(23) 씨의 산재에 대해 원청업체가 20일 만에 공식 사과했다. 하지만 유족 측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원청업체인 ‘동방’ 관계자 20여 명은 지난 12일 오후 2시께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 신켄터이너 터미널 운영동 앞에서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컨테이너 작업 중 안전관리에 소홀했기 때문에 이번 사고가 발생했다”며 “이에 따르는 어떤 질책도 달게 받겠다”고 밝혔다.
성경민 동방 대표이사는 “한 가족의 사랑하는 아들이자 삶을 지탱하는 희망이었던 청년이 평택항에서 고귀한 생명을 잃었다”며 “유가족의 고통과 슬픔 앞에 정중한 위로와 깊은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항만 터미널의 모든 작업 현황 및 안전관리 사항을 다시 점검하겠다”며 “나아가 안전관리위원회를 설치하고 적절한 시스템과 인프라를 구축해 유사한 안전사고의 재발을 반드시 막겠다”고 전했다.
사과문을 읽은 뒤 성 대표를 비롯한 관계자들은 일제히 허리를 숙이며 사죄의 뜻을 전했다.
| 12일 오후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 신컨테이너 터미널 운영동 입구에서 주식회사 ‘동방’ 관계자들이 지난달 발생한 고(故) 이선호 씨의 산재 사고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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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씨의 아버지는 MBC를 통해 “순서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저한테는 아무런 사과도 없고, 사죄도 없고. 하나의 보여주기 식”이라고 말했다.
이 씨 관련 청와대 국민청원 참여를 요청하며 산재 사실을 SNS로 알려온 친구 김모 씨도 “사과는 선호랑 선호 가족들한테 하셔야죠”라는 반응을 보였다.
김 씨는 이날 오후 페이스북을 통해 “다 같이 빈소에 몰려 올 때는 가족들 눈물 나는 얘기만 해놓고 속이 썩어가게 해놓고, 정작 사과는 엄한데 가서 하십니까. 선호랑 유가족 앞에서 회사 책임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과 함께 진정성 있는 사과 부탁드립니다”라고 했다.
이어 “이대로 급히 끝내려 하지 말고, 정부도 얼른 응답해주세요. 항만은 국가가 관리하는 시설입니다. 원청인 ‘동방’에 관리 감독 책임이 있는 정부의 책임 있는 사과와 대책 마련, 재발 방지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또 원청업체의 사과엔 이 씨의 아버지가 언급한 사고 직접 관련자의 반성도 담기지 않았다.
이 씨의 아버지는 이날 MBC에 출연해 “제 아이가 사고를 당하고 나서 어떻게 해서 사고가 났는지 알아보는 과정에서 직접적으로 제 아이의 죽음에 관련된 사람, 동일 선상에 있는 사람 두 사람이 나오게 된다”고 운을 뗐다.
그는 “B라는 지게차, C라는 지게차 두 대의 지게차가 등장하는데 C라는 지게차는 저희 아이 앞에서 죽을죄를 지었다고 사죄를 했고 제가 용서를 했다. 그런데 말도 안 되는 작업 지시를 그 위험한 공간으로 아이를 밀어 넣고 위험한 지시를 내렸던 B라는 지게차는 현재까지 자기는 그런 작업 지시 내린 적이 전혀 없다고 발뺌하고 있다. 그래서 저는 제 아이가 용서를 받아야 할 사람한테 용서를 받지 못해서 아직 눈을 못 감고 있다. 현재까지 이 빈소가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 고(故) 이선호 씨 부친인 이재훈 씨가 12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만공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를 마치고 열린 이선호 씨 대책 마련 간담회에 참석해 있다 (사진=더불어민주당/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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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 씨의 아버지는 평택항을 방문한 여당 지도부와 간담회에서 평택항을 관리하는 해양수산청과 해양수산부 공무원에 대한 울분도 터뜨렸다.
해양수산청은 사고 발생 초기 300kg에 달하는 컨테이너 상판이 바람 때문에 접히면서 이 씨를 쳤다고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해 이 씨의 아버지는 “사람이 죽었다. 현장에 한 번 구경이라도 갔다 와서 이게 바람에 넘어가는 건지, 발로 걷어차서 넘어가는지 한 번 확인을 해보고 상급기관에다 보고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후 MBC에 출연해서도 “대한민국 공무원들이 먼저 각성을 해야 한다고 본다”고 토로했다.
이 씨의 아버지는 정부를 향해서도 “제가 오늘 오전에 평택항에서 민주당 최고위원회 회의에 참석했다. 제가 여당 대표하고 여당 국회의원한테 부탁을 했다. ‘4년 전에는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침에 출근했다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노동자가 없는 세상, 비정규직이 없는 세상 만들겠다 해놓고 4년간 도대체 하신 게 뭐 있습니까? 뭐 하셨습니까? 도대체 얼마나 더 죽어야 할까요. 얼마나 더 죽여야 겠습니까’ 그 말씀 전해 드렸다”고 말했다.
이 씨는 군 복무 뒤 복학을 앞두고 아버지의 일터에서 용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참변을 당했다. 현장에서 이 씨는 아버지가 8년 동안 근무했지만 한 번도 투입된 적 없는 개방형 컨테이너 해체작업에 보조로 투입됐다가 떨어진 300㎏가량의 컨테이너 상판에 깔려 숨졌다.
이 씨의 아버지는 아들의 사고 직후 119 신고나 가족 연락 등 아무런 조치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했다.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원청과 하청업체 관계자를 조사했지만, 아직도 누구의 잘못인지 가려내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