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공태영 기자
2019.06.02 00:25:35
설렘이 사라질 때 시작되는 진짜 여행
상상도 못한 전개가 여행의 묘미
‘여행’을 생각하면 항상 설렌다. 여행지에서 먹을 음식, 만날 사람, 마주칠 풍경, 문화, 경험...그 모든 것에 대한 기대감이 뒤섞여 설렘이 된다. 그런데 막상 여행지에 도착하면 새로 바뀐 환경에 정신없이 적응하느라 그런 설렘이 있었단 사실도 잊게 된다. 가끔은 상상했던 모습과 실제 여행지의 모습이 달라 설렘이 실망으로 바뀌기도 한다. 설렘은 여행을 떠나게 만들어주지만, 여행을 지속시키는 동력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설렘이 없는 여행은 김빠진 콜라, 소리 없는 ASMR(자율 감각 쾌감 반응) 아닐까. 설렘이 없는 여행은 과연 무슨 맛일까?
첫여행 아프리카 안행복
처음으로 여행의 설렘이 깨진 건 첫 여행의 시작점인 탄자니아에서였다. 4박5일 킬리만자로 트레킹을 마치고 내려와서는 쉬지도 못하고 바로 다음 여행지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실수로 버스를 잘못 타면서 기차를 놓쳤고, 덩달아 예약했던 비행기까지 놓치고 나니 ‘여행을 온 목적이 뭘까’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탄자니아에 발을 내디딘 지 딱 1주일 되던 때였다.
휴학하고 7개월 동안 열심히 아르바이트 해서 모은 돈으로 그토록 그리던 아프리카에 왔는데, 정작 행복하지가 않았다. 여행을 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뛰고 마냥 기분이 좋을 줄 알았는데, 막상 와보니 현지인들은 어떻게든 돈 좀 뜯어내려고 하는 것 같고, 음식은 입에 안 맞고, 하는 경험은 좋다 나쁘다 판단하기도 전에 힘부터 들었다. ‘여행 왔는데 왜 안 행복할까’란 물음에 대답을 생각할 힘도 없었다. 설렘 따위 네발동물에게 줘버린 지 오래였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단 마음이 굴뚝같았다.
두번째 중앙아시아 자전거 또속냐
아프리카 여행을 갔다 온 지 2년 뒤, 이번엔 중앙아시아로 떠났다.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해발 4,000m의 파미르 하이웨이(Pamir Highway)를 여행하기 위해 한국에서 타던 자전거를 분해해서 가져갔다. 기대감에 첫 페달을 밟았지만 난생 처음 짐받이에 짐을 가득 올리고 탄 자전거는 이전에 알던 자전거가 아니었다. 뒤쪽에 실린 짐의 무게 때문에 앞으로 나가기는커녕 중심을 잡는 것도 힘들었다. 게다가 파미르 하이웨이가 있는 타지키스탄 국경까지 가는 200km는 대부분이 오르막이었다.
자전거에 적응할 새도 없이 첫날 100km를 꾸역꾸역 달리고 나니 몸도 마음도 모두 지쳤다. 전에 생각했던 자전거 여행의 로망은 허상이었고 오늘보다 더 힘든 내일의 오르막이 남아 있는 게 현실이었다. 내일도 낑낑대며 오르막을 올라가고 있을 모습을 상상하니 끔찍했다. ‘이 상태로 자전거를 계속 타면 행복할까?’ 고민 끝에 지나가던 키르기즈스탄 아저씨한테 자전거를 무작정 줘버렸다. 그렇게 파미르 자전거 여행은 파미르 입구에도 못 가고 하루 만에 끝이 났다.
여행_빼기_설렘 극적전개
그렇게 설렘이 깨져버린 후에 여행은 어떻게 됐을까. 뻔하고 당연한 얘기지만, 여행은 계속됐다. 6~7개월씩 알바만 한 돈으로 떠난 여행인데 그렇게 끝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후의 전개는 전혀 뻔하지 않게 진행됐다.
탄자니아에서 버스, 기차, 비행기 모두 놓쳐서 정신 못 차리고 있을 때 친한 지인이 카톡으로 탄자니아의 오지에서 선교를 한다는 한국인 선교사 가족을 소개시켜줬다. 생전 처음 보는 사이였지만 한식도 차려주시고 오지도 데려가주시고, 직접 사파리 구경까지 시켜주셨다. 그분들과 4일 정도 같이 지내면서 힐링도 받고 재충전도 하니까 한국으로 가고 싶은 생각 대신 여행을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키르기스스탄에서 자전거를 버리고 나서 남은 선택지는 히치하이킹뿐이었다. 해본 적도 없고 할 수 있을 거란 확신도 없었다. 다행히 자전거를 버리고 시도한 첫 히치하이킹이 성공해서 대형트럭을 얻어 타고 타지키스탄 국경까지 갔다. 그걸 시작으로 타지키스탄 여행이 끝날 때까지 3주 동안 히치하이킹을 했다. 8시간 이상 차를 기다리고, 투어 차량을 히치하이킹 해서 같이 투어도 하고, 히치하이킹하면서 다른 여행자를 만나 같이 여행을 다닌 적도 있었다. 무슨 차를 타게 될지, 얼마나 오래 기다릴지 모른 채 하루 일정을 불확실성에 던져 놓는 여행이 처음엔 불안했지만 차츰 재미있어졌다.
설렘그이후 진짜여행 행복
설렘이 없어진 뒤에도 여행은 계속됐다. 아니, 그때부터가 진짜 여행이었다. 계획에 없던 일이 일어나고 예상치 못한 전개로 흘러가는 게 일상이었지만, 거기에 즐거움이 있고 행복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 사랑에 빠질 것 같던 풍경, 기억나는 사건 모두 여행 전에 알지도 못했고 애초에 계획했던 것과도 전혀 달랐다. 하지만 여행은 매번 예상 밖의 것들로 가득 차버렸고 그래서 더 재미있다. 그 재미를 알아버려서일까. 아직도 여행을 생각하면 설렌다.
/스냅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