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남궁 덕 기자
2013.12.20 06:00:00
[남궁 덕 칼럼]황창규가 깔아야 할 ‘코르부스’
KT 차기 회장으로 내정된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은 온화한 인상에 화려한 스팩을 갖고 있는 경영자다. 한국 경제라는 생태계가 만들어낸 글로벌 스타CEO 가운데 한 명일 것이다. 전문성과 글로벌 감각을 갖추고 있는 데다 ‘황의 법칙’이라는 성공DNA도 갖고 있다. 그가 40명이 넘는 도전자를 제치고 임직원 3만2000명의 거대 통신회사인 KT의 수장 자리에 오른 것에 대해 이의를 다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그는 기자들과의 첫 소통에서 “경영 구상 등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KT는 풍전등화다. 경쟁사들도 그렇게 보고 있다. 이곳에 황창규가 왔다.
그는 인문학에도 조예가 깊고, 글도 잘 쓰는 걸로 전해진다. 그가 언론 등에 기고한 글 가운데 기억이 남는 게 있어 인터넷을 뒤져봤다.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는 카르타고를 물리치고 지중해의 패권을 쥐었다. 해전(海戰)의 틀을 깬 새로운 발상 덕분이었다. 로마는 적함을 격침시키는 기존의 전술 대신 백병전을 통해 배를 점령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전술은 병사들을 재빨리 적함으로 보내 상대를 제압해야 성공할 수 있었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이 코르부스(Corvus)다. 적선과 모함을 연결해 병사들이 적함으로 건너갈 수 있게 한 이 ‘이동발판’ 덕에 로마군은 승리했던 것이다. 지금 글로벌 혁신 기업들은 미래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이동발판’ 확보에 열을 올린다….”
그가 KT를 퀀텀점프시키기 위해 깔아야 할 코르부스는 어떤 것일까. 첫째 회사 안팎과의 ‘소통‘에 기반한 혁신을 이뤄야 한다. 그는 “글로벌 신시장을 개척했던 경험을 통신 산업으로 확대해 미래 ICT 비즈니스를 창출하겠다. 경청하는 자세로 임하면서 비전을 나누고 참여를 이끌어 KT 경영을 정상화하겠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경청하겠다는 초심이 좋아보인다. 그는 진흥산업인 반도체 분야에서 성공DNA를 축적했지만, 규제 산업인 통신 경험은 없다. 성과주의로 대변되는 삼성의 경쟁문화와 아직도 ’반관반민‘의 어쩡쩡한 KT문화의 접점을 찾는 것도 숙제다. KT는 지금도 인사철이면 청탁이 난무하는 조직으로 알려졌다. 기존 임직원을 지칭하는 ‘원래’파와 외부 영입자를 말하는 ‘올레’파의 눈에 보이지 않는 간극도 좁혀야 한다. 어차피 구조조정이 필요한 상황에서 황 내정자부터 연봉을 깍는 등 자신을 스스로 낮추는 솔선수범의 미덕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두번째 코르부스는 먹거리 창출이다. 소통도 이걸 만들기 위한 필요조건일 것이다. KT는 뭐니뭐니해도 통신회사다. 본업에서 적자가 쌓여가고 있다. 이때문에 전임 이석채 회장도 직원들에게 보낸 마지막 메일에서 임원 구조조정을 언급했을 정도다. ‘누더기’처럼 벌려놓은 사업도 정리할 필요가 있다. 구글도 현재의 핵심 비즈니스에 70%, 미래 창조에 30%의 자원을 투입한다고 한다.
지속성장하는 기업의 가장 큰 특징은 훌륭한 경영진을 배출하는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KT는 나쁜 사례로 교과서에 실릴 수준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CEO가 교체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대통령선거철이 되면 임원들은 여의도를 바라본다.악습을 바꿀 멋진 지배구조를 만들기 위한 로드맵을 짜야 한다. 제너럴일렉트릭(GE) 모델이 벤치마킹 대상이다. 잭 웰치 전 회장은 1994년 취임하자 마자 10여 명의 내부 후보를 뽑아 6년간 치열하게 경쟁시킨 뒤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제프리 이멜트를 후계자로 정했다. 이런 일들은 취임 초기에 해야한다. 임기 후반기에 하면 오해받을 수 있다.
황 내정자가 KT를 미래의 번영으로 이끌 ‘코르부스’는 그리 먼 곳에 있지 않다. 사심 없이 오로지 KT를 부활시키겠다는 순수한 마음가짐이 절실해 보인다. <총괄부국장 겸 산업1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