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복지’ 기수(機首) 돌릴 때다

by남궁 덕 기자
2013.08.16 06:00:00

[남궁 덕 칼럼]‘공짜 복지’ 기수(機首) 돌릴 때다

“아빠! 대한민국이 잘 사는 나라라는데 왜 에어컨도 마음대로 못 틀게 해서 잠을 설치게 하지요. 누구 책임이에요. 세금 걷어서 어디다 쓰길래 이래요”

“털 뽑히는 느낌을 알기나 하고 그렇게 무식한 소리를 합니까. 월급쟁이들도 유권자란걸 모르나 보죠.”

멀리서 들을 필요도 없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딸과 대기업에 다니는 조카가 잔뜩 핏대를 냈다. 2013년 8월 중순 대한민국의 민심 온도계다.

국민들이 엄청 짜증을 내고 있다. 부글부글 끓는 수준이다. 전국을 강타한 폭염 때문만은 아니다. 두 가지가 화염을 키우고 있는 탓이다. 하나는 간당간당한 전력수급에 비상이 걸리면서 정부가 국민들에게 절전을 읍소하고, “내 돈 내고, 내가 쓰겠다”는 사람들에겐 “강제 단전 불사” 엄포를 놓는 정부의 무책임 에너지 정책이다.

정부는 매일매일 ‘대규모 정전(블랙아웃)’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문제는 고작 일기예보 챙겨보고 폭우예보지역 주인들에게 ‘조심하세요’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처방전이다. 공공기관 건물 온도관리와 전기를 많이 쓰는 기업체의 생산시설을 쉬게하는 게 유일한 대책이다.



두번째는 ‘유리지갑’인 봉급 생활자의 세 부담을 늘린다는 지적을 받은 세제개편이다. 당초 발표한 세제개편안을 두고 증세 논란이 격화하자 조원동 대통령경제수석이 프랑스 루이 14세 때 재무상 장바티스트 콜베르가 남긴 경구를 인용해 “세금을 걷는 건 거위가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깃털을 살짝 뽑는 것이며, 그것이 이번 세제개편안의 정신” 이라고 말해 여론을 악화시켰다. 여론이 듫끌자 박근헤 대통령이 원점 재검토를 지시했고, 기획재정부가 하루만에 세제개편 수정안을 부랴부랴 내놨다. 세부담이 늘어나는 봉급생활자의 기준을 종전 연봉 3450만원에서 5500만원(OECD 기준 중산층 상한)으로 높이고 5500만~7000만원 근로소득자는 종전 16만원이던 연간 세 부담 증가액을 2만~3만원으로 대폭 낮춘다는 내용이다.

결국 정부가 사잇길로 빠져 복지 확대로 인한 증세 부담을 상위 7%에게만 떠안긴 셈이다. 정부가 매달리는 게 또 있다. 기업 상대로 한 세무조사를 통해 세수 부족분을 벌충하는 것이다. 진짜 ‘거위’는 부유층과 기업이란 점을 직시한 것이다. 실제로 국민들의 조세저항을 줄이고 복지재원을 늘릴 길은 성장판을 키워 그 수혜자들로부터 세금을 거두는 외나무 길뿐이다.

‘정직이 최선의 정책’이라는 서양 속담이 떠오르는 형국이다. 블랙아웃을 피하기 위해 원전건설이 필요하면 국민을 설득하고, 복지 증세가 필요하면 솔직하게 부탁하라. 무상의료 무상급식 노령연금 등 보편적 복지는 중산층 모두가 십시일반의 정신으로 공동 부담하는 게 공동체의 기본이다.

2009년 1월15일. 승객과 승무원 155명을 태운 미국 US에어웨이 소속 1549편 여객기가 뉴욕 라가디아 공항 활주로를 이륙한 지 1분 만에 두 차례에 걸쳐 새떼와 충돌해 엔진 2개가 모두 고장 났다. 연기에 휩싸인 상태로 뉴욕 상공을 1㎞ 이하 높이로 날고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는데 설런버거 기장이 과감하게 허드슨강 수면 위로 비상착륙을 시도, 승객과 승무원을 모두 무사히 구조시켰다. ‘허드슨강의 기적’이다.

순간의 선택이었다. 지금 박 대통령이 ‘공짜 복지’의 허상을 떨쳐내지 않으면 두고두고 덫에서 빠져 나올 수 없다. 공짜복지는 여야가 부모인 ‘이란상 쌍둥이’여서 솔로몬의 지혜가 먹힐 수 있다. <총괄부국장겸 산업1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