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休] 바람의 노래를 듣는 섬 '우도'
by이승형 기자
2013.01.29 06:30:02
[글·사진=이데일리 이승형 선임기자] 바람. 기압의 차이에 따른 대기의 이동. ‘맥스웰의 악마’처럼 고기압과 저기압을 오가며 그 가운데 놓인 삼라만상을 어루만지고 솎아내는 자연의 힘.
온몸으로 바람과 마주한다는 것은 우주의 일부가 되는 일이다. 육신과 영혼은 바람과 함께 왔고, 바람처럼 떠돌다 바람과 함께 우주 저 편으로 사라질 것이다. 우리네 인생, 결국 스쳐가는 한 줄기 바람 아니겠는가.
그러니 지금 눈을 감고 두 팔을 벌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정처없이 내동댕이쳐진 인생일지라도 그럴 자격은 있다.
| 우도봉 입구에서 바라본 해안 절벽. 바위의 형상이 누워있는 사자의 머리를 닯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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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원을 가로지른 바람이 쉼없이 돌진해 온다. 마치 심중에 상형문자라도 새길 기세로 몸을 관통하더니 이내 바다를 향해 거침없이 질주한다.
뺨은 얻어맞은 듯 얼얼하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다. 하지만 바람이 한바탕 훑고 간 몸 안에는 정화의 흔적이 남는다.
바람은 우도(牛島)를 찾은 손님들을 이렇게 열렬히 환영해준다. 1월의 우도에는 바람이 거세다. 우도 해안을 따라 걷는 올레길의 바람은 더 그렇다.
우도의 올레길은 항구에 도착하자마자 시작된다. 제주 성산포항에서 출발한 배는 요일과 시간에 따라 우도의 천진항과 하우목동항 두 곳으로 나뉘어 닿는다. 두 항구 중 어느 곳에서든 올레길은 열려 있다.
섬 한 바퀴를 원을 그리며 도는 올레길은 총 16.1km. 어른 걸음으로 5~6시간 걸린다. 제 자리에서 시작해 제 자리에서 끝난다. 만약 천진항에서 일주를 시작하면 우도봉과 검멀레를 지나 비양도망대와 산물통, 하우목동항, 쇠물통언덕 등을 거쳐 다시 천진항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 길을 걷다보면 하루에 세상의 모든 날씨를 모두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내리던 비는 길모퉁이 하나 돌아서면 진눈깨비로 변한다. 다시 언덕 하나 넘으면 구름이 사라지고 볕이 든다. 몸의 젖고 마름이 반복된다.
| 지난 24일 오전 우도봉 오르는 길. 간간히 비를 뿌리는 쌀쌀한 날씨임에도 여행객들이 적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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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오전 올레길을 걷다 먼저 찾은 곳은 우도에서 가장 높은 곳, 해발 132m의 우도봉이었다. 다른 계절이라면 이 곳에서 보는 우도의 평원과 바다는 온통 푸른 빛이었겠지만(실제 우도봉에서 내려다 본 절경을 지두청사(地頭靑莎:섬머리에서 본 푸른 잔디)라 부른다), 지금 여기는 영상 3도의 흐린 겨울날에 느껴지는 무채색의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갈색 평원과 회색 하늘, 검은색 바다의 어울림.
해 좋은 날에 보이던 성산일출봉은 어렴풋이 윤곽만 보이고, 한라산도 이날 만큼은 구름인지 안개인지 모를 뿌연 것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우도봉 가장자리에는 등대공원이 있다. 1906년 지어져 지난 2003년 문을 닫은 옛 등대와 그 뒤를 이은 최신식 등대가 나란히 서 있다. 바람은 어느 새 방향을 바꿔 평원으로 향한다.
“바람이 어마어마하네요. 이러다 날아가는 거 아닌지 몰라요. 저 깃발 좀 보세요. 저러다 찢어질 것 같네요.”
대전에서 남편과 함께 이 곳을 찾은 여행객 김도희씨가 연신 옷깃을 여민다. 그녀의 말처럼 날아간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바람이다. 밴드 ‘레너드 스키너드’의 ‘프리 버드(Free Bird)’처럼 이토록 아름다운 섬을 맘껏 볼 수만 있다면.
‘내가 내일 이 곳을 떠난다고 해도 당신은 나를 기억하실건가요. 나는 이제 여행을 계속해야만 합니다. 둘러봐야 할 곳이 너무나 많거든요….’
| 한 가족이 우도봉을 향해 힘겹게 가파른 길을 오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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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라는 이름은 물소가 머리를 내민 형상을 닮았다 해서 붙여졌다. 이 섬이 세상에 나온 것은 신생대 제4기 홍적세(약 200만년~1만년 전)으로 추정된다. 사람이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조선 헌종 10년(1844년)때의 일이다.
다른 관광지들이 그렇듯이 우도에도 사자성어로 된 8경이란 것이 있다.
우선 등대공원을 지나 걷다보면 검멀레(검은 모래라는 뜻) 해안이 나온다. 우도봉의 협곡과 붙어 있는 100여m 길이의 작은 해변이다. 모래사장은 부드러워서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눈밟는 소리가 난다. 그런데 이 해변 끄트머리 절벽 아래 ‘콧구멍’이라 부르는 동굴이 있다.
길이 150m, 높이 20m, 넓이 15m 크기의 이 동굴엔 커다란 고래가 살았다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 이름이 동안경굴(東岸鯨窟)이다. 조선시대에 왜구들이 이 동굴에 숨어들어 말썽을 피웠는데 실제로 보면 이 안 어딘가에 보물이라도 숨겨져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 우도 검멀레해안의 동굴. 썰물이 돼야 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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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멀레와는 달리 우도 서쪽 해안에는 백사장이 있다. 눈이 부셔 잘 뜨지 못할 정도로 하얗다 못해 푸른 빛이 도는 모래 사장이다. 서빈백사(西濱白沙)다. 홍조단괴해빈(紅藻團塊海濱)이라고도 불리는데 살아있을 때 붉은 색이던 해초들이 죽은 뒤 퇴적됐다가 모래가루가 됐기 때문이란다. 천연기념물 438호다.
이 밖에도 바다 위에서 보는 우도 경관이 아름답다고 해서 붙여진 전포망도(前浦望島), 천진항에서 바라본 한라산을 뜻하는 천진관산(天津觀山), 햇빛이 만들어내는 동굴 속 달 모양이 일품인 주간명월(晝間明月) 등도 8경이라 부른다. 사람들은 이 모든 게 다 보물이라고 말한다.
“우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남동쪽에 있는 섬이라 ‘새벽을 여는 섬’이라고 한답니다. 가장 먼저 하루를 시작하는 섬이죠. 날씨만 좋으면 거문도, 보길도, 청사도 주변 섬들이 다 보여요. 뉴욕에 사시는 재미교포 한 분이 ‘전세계 안 가본 곳이 없는데 여기 만큼 광활하게 다 볼 수 있는 곳은 없다’고 하시더군요. 진짜 와 보시면 알게 됩니다.”
이 섬에서 40여년을 살아 온 57세의 여혜숙 문화해설사가 말한다. 미국 방송사 CNN이 ‘한국 여행 때 가봐야 할 50곳’중에 하나로 꼽고, 한국관광공사가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국내 관광지 100선’에 포함시킨 이유는 그녀의 말 속에 있다.
| 우도 등대. 왼편 하얀 집은 1906년 지어진 등간이라고 부르는 곳으로 사람이 직접 불을 지펴 등을 밝히던 곳이다. 오른편 등대는 2003년까지 문을 열었다가 지금은 문화재로 영구히 보존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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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성산항에서 우도로 가는 배는 매일 오전 8시부터 30분 간격으로 뜬다. 약 3.8km의 뱃길로, 15분 정도 걸린다. 우도에서 성산가는 마지막 배는 매일 오후 5시(11월~12월)이니 유념해야 한다. 왕복 비용은 5500원. 차를 갖고 우도를 갈 경우 중소형 승용차 기준으로 왕복 2만3000원이다. 만일 어른 2명이 차를 갖고 가면 모두 3만4000원을 내야 한다.
| 우도와 성산포를 오가는 배. 배 이름은 ‘우도사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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