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불법사찰 권력형 게이트, 대통령이 결단해야
by논설 위원
2012.03.22 07:00:00
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3월 22일자 39면에 게재됐습니다. |
민간인 불법사찰의 증거 인멸에 청와대가 깊숙히 개입돼 있다고 폭로한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이 21일 이틀째 검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았다. 청와대 개입의혹을 뒷받침할 녹취파일 등도 추가로 검찰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법사찰 자료가 든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청와대 지시로 파기했고, 이후 입막음용으로 금품을 제공받았다는 장 전 주무관의 증언은 이명박 정부와 핵심 권부의 도덕성을 정면 겨냥하고 있다.
전날 영포(영덕·포항) 라인의 핵심 인물인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기자회견을 자청해 "컴퓨터 하드디스크 자료 삭제 문제는 제가 몸통"이라며 청와대 개입설을 강하게 부인했지만 일개 비서관이 이런 엄청난 일을 혼자 저지를 수 있다고 믿을 사람은 별로 없다. 민주당 박지원 최고위원은 "진짜 몸통은 박영준, 형님(이상득)으로 이어지는 영포라인과 청와대"라고 특정 인물까지 거명했다.
지난 2010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주도한 불법사찰 사건은 검찰수사후 1년9개월만에 증거인멸에 관련된 한 공무원의 폭로로 청와대, 국무총리실, 검찰 등 핵심 권부가 얽히고 설킨 초대형 권력형 비리 게이트로 떠올랐다. 청와대와 국무총리실에서 '공직기강' '공직윤리' 업무를 맡은 인사들이 주업무보다는 권력 보위를 위한 정보·사찰 활동에 주력했고, 이 사실이 불거지자 돈과 권력으로 입막음을 하려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장 전 주무관의 증언에 따르면 국무총리실쪽에서는 특수활동비를 매달 청와대에 상납했고, 청와대는 사건을 축소하기 위해 검찰과 짜고 국무총리실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파기하도록 지시했다. 그의 진술중에는 '지난해 압수수색 과정에서 검찰은 관련서류를 거의 가져가지 않았고, 압수물을 담을 박스가 텅텅 비자 신문지를 구겨서 채워넣었다'는 내용도 있다. 검찰이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있어 특검이나 국정조사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사건은 이제 영포라인 핵심인사 뿐 아니라 민정수석실, 비서실장까지 이어져 이명박 대통령의 턱밑에까지 이르렀다.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더 늦기 전에 결단을 내려야 한다. 철저한 진상규명을 통해 의혹을 해소하고, 비리를 척결하겠다는 의지를 시급히 천명해야 한다. 곤혹스럽다며 외면하고, 선거에 미칠 영향에만 주판을 두드리고 있기엔 사안이 매우 중하고, 실기에 따른 위험이 너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