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강소국의 저력]②아이슬란드, 부실은행 포기가 약(藥)

by김기훈 기자
2012.02.28 09:45:00

은행권 공적자금 `NO`..법정관리 들어가게 해
가계부채 탕감, 내수 진작 기여..회복 앞당겼다

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2월 28일자 3면에 게재됐습니다.

[이데일리 김기훈 기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첫 희생양이 됐던 북유럽의 작은 섬나라 아이슬란드가 부활의 날갯짓을 하고 있다. 지난해 국채 발행을 통해 금융시장에 정상적으로 복귀한 데 이어 최근 신용등급도 투자 적격 수준을 회복했다. 경기 개선 속도는 유로존 내에서도 월등하다.

아이슬란드에 짙게 드리워졌던 구제금융의 그림자는 어느새 거의 사라진 듯 보인다. 아이슬란드의 부활을 도운 일등공신은 아이러니하게도 자국을 부도 위기로 몰아넣었던 은행권이었다.


아이슬란드를 파국으로 이끈 것은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진 은행권. 부실 대출과 무분별한 해외 차입으로 이미 곪을 대로 곪은 은행들은 미국발(發) 금융위기가 유럽에 상륙하자 우후죽순처럼 쓰러졌다. 신용압박에 시달리던 3대 은행이 일제히 파산 위기에 처했고 시장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당시 아이슬란드 은행권의 거품 낀 자산은 자국 국내총생산(GDP)의 11배인 2090억달러까지 불어난 터라 충격은 더 컸다. 아이슬란드 은행권은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파산 위기에 처한 자국 은행들에 막대한 공적자금을 풀었던 미국의 사례처럼 아이슬란드 역시 은행권 살리기에 애쓸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아이슬란드 정부의 선택은 달랐다. 은행권에 공적자금을 지원하는 대신 부실 은행들을 과감하게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했다. 국민의 혈세를 은행 지원에 쓰기보단 채권단들에 부실의 책임을 돌린 것이다. 채권단의 대부분은 해외 투자자들이었다. 아이슬란드 정부는 이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해 은행의 구조조정과 포트폴리오 개편을 이끌어냈다. 무분별한 공적자금 투입이 없었던 덕분에 아이슬란드는 당초 예상보다 위기에서 재빨리 탈출할 수 있었다.



▲ 각국 GDP 대비 은행권 자산(주황색) 및 국채 규모(검은색) 비교. 아이슬란드의 경우 금융위기 이전 GDP 대비 은행권 자산 규모가 1200%에 이르렀다.(단위:%, 출처:포브스)

위기 극복 과정에서 나타난 정부와 은행권의 파격적인 가계부채 탕감 역시 주목할 만하다. 앞서 극심한 경제난에 채무부담까지 겪게 된 아이슬란드 국민은 정부와 은행권에 대책 마련을 요구했고, 이에 주택가격의 110%를 초과하는 가계부채에 대한 채무 탕감 조치가 이뤄졌다. 그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아이슬란드 금융서비스협회가 최근 낸 보고서를 보면 2008년 이후 아이슬란드 정부와 은행권이 탕감해준 가계부채 규모는 GDP의 13%에 달하며, 혜택을 받은 사람은 전체인구의 25%가 넘는다. 채무 부담 축소는 자연스럽게 내수 소비 진작으로 이어져 경제 성장을 도왔다.

2009년 6.7% 뒷걸음질쳤던 아이슬란드 경제는 지난해 2.9% 성장했고, 올해와 내년에도 2.4%의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관측된다. 이 수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추산 올해 0.2%의 성장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과 OECD 회원국의 성장률 전망치인 1.6%를 크게 앞선다.

다만 일각에서는 아이슬란드가 여전히 부활의 시험대 위에 올라 있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WSJ는 위기의 정점에 있을 당시 아이슬란드 정부가 취한 자본 유출입 통제 조치의 완화와 장기적 성장을 위한 국가 경쟁력 확보가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한편 지난 17일(현지시간)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아이슬란드 신용등급을 1년3개월 만에 투자 적격 수준으로 올렸다. 피치는 "아이슬란드 정부가 금융시장과 거시경제 안정성을 찾기 위한 개혁을 이뤄냈으며, 망가진 국가의 신용도를 되찾기 위한 정책들을 도입했다"고 아이슬란드 정부의 노력을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