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in][M&A, 재벌총수&크레딧]④미션! 권력승계
by오상용 기자
2011.02.08 09:25:15
마켓in | 이 기사는 02월 07일 12시 57분 프리미엄 Market & Company 정보서비스 `마켓in`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
[이데일리 오상용 기자] 재벌그룹의 M&A 시도는 2·3세 경영이 본격화하는 시점에 급증하는 경향성을 띤다. 과거에는 여러 자녀를 둔 창업자가 장남에게 회사를 물려주고, 나머지 자녀들의 몫으로 돌아갈 회사를 마련하기 위해 이뤄지는 기업 인수가 많았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선 40~50대 나이에 경영권을 넘겨받은 2·3세 후계자들에 의해 의욕적인 몸집 불리기가 두드러지고 있다.
두산그룹의 박용만 회장과 지난 1호 마켓인에서 다뤘던 롯데그룹의 신동빈 부회장의 권력승계 과정이 대표적이다. 이번에는 두산그룹의 사례를 살펴보자. 2000년을 기점으로 두산그룹에는 일대 혁신이 일어났다. 식음료 사업부와 비주력 자산을 떼어 내고 중장비 기계와 플랜트 사업으로 변신한 것이다.
두산은 1996년 한해 동안에만 한국네슬레 보유지분과 한국3M 지분, 한국코닥지분, OB맥주 영등포공장을 팔았고 이듬해 두산 음료사업부문을 매각한다. 1998년에는 두산빌딩을 매각한데 이어 오리콤 케이블TV 영업권과 두산씨그램 보유지분도 팔았다. 2001년에는 두산을 대표하던 OB맥주 보유지분까지 처분했다. 이렇게 해서 마련한 돈으로 2001년 한국중공업을 인수했고 2003년과 2005년엔 고려산업개발, 대우종합기계를 사들였다.
2006년에는 주단조업체 루마니아IMGB를 인수했고 이듬해에는 소형건설기계 업체인 미국의 밥캣 인수까지 마무리짓는다. 이 시기 그룹의 사업구조조정을 진두지휘했던 인물이 지금의 박용만 회장이다. 그가 부회장으로 승진했던 2005년부터 두산그룹의 M&A는 한층 가속 페달을 밟는다. 후계자로 자리를 굳히는 과정에서 박 회장의 공격적인 확장전략이 두드러진 시기다.
그룹 확장의 총대를 멨던 계열사는 두산중공업과 두산인프라코어 두산엔진이다. 그 과정에서 3사의 재무적 부담도 컸다. 클라이맥스는 2007년 밥캣 인수다. 미국발 금융위기의 조짐이 고개를 들던 무렵 두산그룹은 49억달러에 밥캣을 인수했다. 인수대금중 14억달러는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엔진 등 계열사가 나눠 맡았다. 재무적투자자(FI)를 통해서는 전환우선주 발행방식으로 8억달러를 조달했다.
나머지 27억달러는 신디케이티드론으로 조달했는데, 운영자금 2억달러를 합하면 전체 차입규모는 29억달러였다. 밥캣 인수에 들어간 총비용 51억달러(운영비 포함)에서 두산그룹 자기자금의 비중은 27.4%에 불과했다. 두산그룹은 당시 FI들에게 전환우선주가 2012년까지 전환되지 않을 경우 연복리 9% 가산금액으로 매입한다는 약정을 맺었다. 인수금융을 제공한 대주단에게는 밥캣의 부채 대비 EBITDA 수준이 일정수준 이상을 유지하지 못할 경우 밥캣에 자본을 확충한다고 약속했다.
이렇게 대규모로 외부 자금을 끌어다 성사시킨 밥캣 인수였지만 두산을 기다리는 것은 전 세계에 불어닥친 신용경색과 부동산 경기침체였다. 플랜트와 중장비 기계 수주에 의존하던 두산그룹의 현금흐름은 나빠지기 시작했다. 기대를 모았던 밥캣의 실적도 실망스러웠다. 적자가 이어지면서 EBITDA 수준이 대주단과 약속했던 기준 밑으로 떨어지자 2008~2009년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엔진은 밥캣에 자본금 10억달러를 확충해야 했다. 2010년 들어 주력사의 수주실적이 회복되고 밥캣도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서 그룹의 유동성 흐름은 나아지고 있다.
그러나 두산그룹으로선 한껏 베팅했던 M&A가 글로벌 신용위기와 맞물리는 과정에서 아찔한 순간을 경험해야 했다. 두산의 밥캣 인수금융에 참여했던 은행권 고위관계자는 “재벌 그룹내 2·3세 경영의 시작과 맞물려 빈발했던 M&A는 그 규모의 웅장함만큼이나 그룹의 재무구조와 기업의 크레딧(신용도)을 압박했다”며 “유동성 황금기의 끝물적 현상이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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