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배장호 기자
2006.12.15 11:30:00
해외 진출·장기투자 선도..혁신의 쌍두마차
업계 빈익빈 부익부 현상 심화..내년 인수합병 본격화 전망
[이데일리 배장호기자] 저물고 있는 2006년은 한국 자산운용업계가 양질(量質)의 성장을 구가한 한 해로 기억될 만하다. 치열한 경쟁속에 `낭중지추(囊中之錐)`처럼 몇몇 운용사의 활약도 돋보인 한 해였다.
펀드 운용 성과면에선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1~2년새 불어닥친 적립식펀드 열풍으로 자산운용업계의 운용자산 규모는 크게 증가했다. 운용보수가 상대적으로 높은 주식형펀드의 급성장은 자산운용사들의 수익 구조를 크게 개선시켰다.
연초 이후 이달 12일까지 전체 펀드 수탁고는 237조1350억원으로 지난해말 204조3330억원에 비해 33조원 가량 증가했다. 이 중 20조7000억원이 주식형펀드로 새롭게 들어온 자금이었다.
결국 올해 업계 내의 진검 승부는 `주식형펀드`를 가려질 수 밖에 없는 구조였던 셈이다.
올 11월 중 미래에셋투신과 미래에셋자산이 `미래에셋자산운용`이란 사명 아래 합병했다. 통합 운용사의 현재 펀드 수탁고는 20조1120억원으로, 단순 펀드 자산규모만 놓고 보면 삼성운용에 이어 두번째다.
불과 1년새 미래에셋의 펀드 운용규모는 9조원 가까이 늘었다. 계열 운용사인 미래에셋맵스운용의 펀드까지 합칠 경우 명실 상부한 1위다.
사실 이 결과는 국내 자산운용업계에는 충격적인 사건이다. 불과 1년전만해도 미래에셋이 삼성, 한투, 대투 등 전통의 `3투신`을 넘어서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한국운용은 김범석 사장이 직접 산파 역할을 했던 `삼성그룹주펀드`를 공전의 히트작으로 만들어내면서 전통 펀드 명가(名家)로서의 자존심을 굳건히 지켜냈다.
올해 한국운용의 펀드 운용자산은 지난해 말에 비해 소규모로 줄었다. 현재 한국운용의 펀드 운용자산규모는 17조5000억원 정도로 지난해말에 비해 1조5000억원 가량 감소했다.
하지만 질적인 면에서는 고도 성장을 했다고 평가할 만 하다. 머니마켓펀드(MMF), 채권형 등 수익성이 적은 자산 증대를 통해 계수 경쟁에 매달리던 구태를 지양하고 수익성 높은 주식형펀드와 대안(AI)펀드에 주력했다.
지난해말 2조5000억원대에 불과하던 한국운용의 주식형펀드 수탁고는 현재 4조9000억원대로 증가했다. 계열 자산운용사인 한국밸류운용을 합칠 경우 1년만에 3조원 가량이 늘어났다.
미래에셋과 한국운용은 올해 국내 자산운용산업의 선도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만 하다. `적립식펀드` 이후를 미리 내다보고 해외로 눈길을 돌렸다.
미래에셋은 홍콩과 싱가포르에 해외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인도와 중국에 대한 직접 투자에 나섰고, 한국운용은 베트남의 미래에 새로운 승부수를 던졌다.
이들 운용사들은 해외에 직접투자하는 펀드를 국내에 처음 선보임으로써, 그동안 펀드오브펀즈(FoF)나 은행을 통해 직판되던 해외투자의 패턴을 바꿔 놓았다.
단기투자 문화가 몸에 밴 국내 펀드시장에서 10년이상의 초장기 투자를 선도할 `한국밸류운용`도 올해 출범했다. 물론 한국운용 계열사이다. 한국밸류운용은 1개 운용사가 1개 펀드만을 운용한다는 점이나 `이채원`이라는 특정 펀드매니저의 역량을 전폭적으로 신뢰해 만들어졌다는 점 등에서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올해 자산운용업계가 양질을 성장을 구가했다고 하지만 실제 내막을 들여다보면 `양극화` 현상도 극심했다. 미래에셋-한국 등 일부 자산운용사들이 눈부신 활약상을 펼친 반면 삼성운용, 대투운용 등 대기업 및 은행계 운용사는 이렇다할 인상을 주지 못했다.
특히 대투운용은 그동안 한투와 함께 국내 자산운용산업을 이끌어온 양대산맥 중 하나로 대우받아왔지만 올해는 한투와 비교하기 어색한 처지가 됐다.
하나은행으로 주인이 바뀌면서 강력한 은행 판매채널이 큰 자산이 될 것으로 기대됐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게다가 주인이 바뀐지 채 1년도 안돼 스위스계 UBS로의 매각 추진 소식이 알려지면서 적극적인 성장전략을 쓰지 못한 것도 한 요인으로 판단된다.
자산규모가 작은 중소 운용사들은 더욱 어려운 한해였다. 펀드 계좌수가 1천만 계좌를 넘어서며 본격적인 펀드 대중화의 시대로 접어들었지만 중소 자산운용사들은 그냥 구경만 할 수 밖에 없었다.
자산운용사의 `브랜드` 인지도가 갈수록 중요해지면서 이름없는(?) 중소형사는 판매회사와 펀드 투자자들에게 철저히 외면받았다. 이들 중소형사들 중 상당수가 여전히 자본 잠식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양극화 때문이다.
이러한 양극화는 업계 구조조정으로 직결되기 시작했다. 경영난에 허덕이던 글로벌에셋이 매각돼 `피닉스운용`으로 재출발했고, 굿앤리치운용도 매각됐다.
사정이 그마나 나은 운용사들도 미래의 생존을 위해 새주인을 맞거나 외국사와의 합작에 나섰다. 플러스운용이 최근 한국야쿠르트에 팔렸고, 우리CS운용은 세계적인 금융그룹인 크레디트스위스(CS)와 합작법인으로 재출범했다.
현재 랜드마크운용도 새주인 찾기에 나섰고, 대투운용도 이르면 내년 봄 UBS로의 매각이 마무리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자산운용산업에 대한 국내 산업자본들의 관심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고, 외국 자산운용사들이 본격적으로 국내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며 "내년부터 본격적인 업계 인수합병 바람이 불 공산이 크다"고 전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