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노벨상 '한강' 열풍, 문화 강국 견인차 되길

by논설 위원
2024.10.14 05:00:00

‘한강 신드롬’이 거세게 불고 있다. 지난주 작가 한강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온 나라가 잔칫집 분위기다. 책방에선 한강의 책이 완전 동났다. 창비, 문학동네 등 출판사들은 증쇄를 찍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다. 앙앙불락하던 국회의원들도 여야 가릴 것 없이 박수치고 환호했다. 한강 열풍이 문학을 넘어 한국이 진정한 문화 선진국으로 가는 기폭제가 되길 바란다.

한강은 기자회견을 따로 열지 않기로 했다. 부친 한승원 작가에 따르면 “러시아,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전쟁이 치열해서 날마다 주검들이 실려 나가는데 무슨 잔치를 하고 기자회견을 하겠느냐”며 마다했다는 것이다. 개인의 기쁨에 앞서 타인의 아픔을 어루만지려는 깊은 배려에 공감한다. 4년 전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감독상 등 4개 부문을 석권했다. 당시 엔터테인먼트를 주력사업으로 하는 CJ와 이미경 부회장의 역할이 주목을 끌었다. 두말할 나위 없이 상을 받으려면 작품이 좋아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작품도 심사위원들의 눈에 띄지 않으면 헛일이다. 이는 예술가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몫이다. 르네상스 시대를 꽃피운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피렌체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았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문학은 특히 번역이 중요하다. 한강의 노벨상 수상도 대표작인 ‘채식주의자’의 영어 번역이 다리를 놓았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국내 번역 환경은 취약하기 짝이 없다. 문학평론가 출신 강유정 의원에 따르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학번역원이 올해 번역·출판지원사업 예산으로 쓸 돈은 20억원에 불과하다. 민간쪽에선 교보생명그룹의 대산문화재단이 번역 사업을 일부 지원하고 있을 뿐이다.

로이터 통신은 “K팝과 드라마 ‘오징어게임’ 등으로 상징되는 K컬처가 K문학으로 확대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미 음악, 미술 등 순수 예술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한국인이 늘고 있다. 얼마 전 ‘그라모폰 클래식 뮤직 어워즈’에서 2관왕을 차지한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대표적이다. 문화 소프트파워도 결국 국력에 비례한다. K컬처가 변방에서 중심으로 본격 진입하려면 체계적인 지원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