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선 구청장의 비밀…그는 고문 수사관이었다[그해 오늘]
by한광범 기자
2022.10.11 00:03:00
2012년, 고문 인정않던 추재엽 양천구청장 법정구속
전두환정권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조작시 직접 고문
"행정업무만 했다" 피해자 고소…대법 "고문 인정"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2012년 10월 11일 오전. 서울남부지방법원 406호 법정. 서울 지역 현역 구청장이 피고인석에 앉아있고, 법대에 앉은 형사합의11부 재판장 김기영 부장판사(현 헌법재판관)가 판결을 선고하고 있다.
김 부장판사는 검찰의 공소사실 대부분을 유죄로 인정한 후 ‘주문’을 통해 피고인에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징역 3월, 위증·무고 혐의에 대해 징역 1년 등 도합 징역 1년 3월을 선고했다. 그리고 “무죄추정의 원칙을 더는 유지하기 어렵고 범죄사실의 내용에 비춰 항소심에서 도망할 우려가 있다”며 법정구속했다.
현직 구청장인 피고인은 ‘변명 기회를 주겠다. 할 말 있으면 하라’는 김 부장판사의 발언에 “너무 가혹하십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김 부장판사는 재차 “고문을 했는지는 피고인이 잘 알 것입니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피고인은 교도관들의 손에 이끌려 법정을 나간 후 수갑을 찬 후 구치소에 수감됐다.
피고인은 당시 3선 양천구청장이었던 추재엽씨였다. 2011년 10월 양천구청장 재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당선된 추씨는 세 번째 구청장 임기를 겨우 1년 정도 한 상태였다. 그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추재엽씨가 2011년 10월 27일 열린 양천구청장 재선거에서 당선이 확정되자 환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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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우선 2010년 6월 열린 지방선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현역 구청장이었던 추씨는 무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한 상태였다. 당시 선거에선 전두환정권 시절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에서 근무했던 추씨의 고문 가담 여부가 핵심 쟁점이었다.
맞수였던 민주당 후보 이제학씨는 선거기간 중 추씨의 고문 전력을 거론하며 파상공세를 폈다. 그와중에 “추씨가 신영복 전 성공회대 명예교수를 간첩으로 조작하기 위해 고문에 가담했다”고 주장했다. 선거에선 이씨가 3.9%포인트차로 추씨를 이기고 당선됐다.
검찰은 2010년 12월 이씨가 선거기간 추씨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며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추씨는 같은달 이씨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보안사 근무 당시 고문에 가담한 사실이 없다”고 증언했다. 특히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 조작’ 피해자였던 유지길씨에 대해서도 “직접 고문한 적도, 고문 현장에 참여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결국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던 이씨는 2011년 4월 2심에서 ‘신영복’ 관련 발언의 허위성이 인정돼 당선무효형인 벌금 250만원을 선고받았다. 대법원도 같은 해 6월 이를 확정해 이씨는 구청장직을 상실했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2011년 10월 26일 열리는 재·보선에 양천구청장도 포함되게 됐다. 추씨는 한나라당에 복당해 선거에 출마했다. 선거에선 다시 추씨의 고문 전력이 도마 위에 올랐다.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였던 김병진씨가 선거 직전인 2011년 10월 20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추씨가 재일교포 유학생 유지길씨 고문에 직접 가담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추씨가 젖은 수건으로 피해자의 눈과 코를 덮었고, 고춧물이 담겨진 주전자로 입에 여러 번 빨간 물을 쏟아부었다. 숨도 못 쉬고 꼼짝도 안 하게 된 피해자를 보고 다른 수사관이 ‘죽는다’고 소리 질렀던 장면을 평생 잊을 수 없다”고 폭로하며 울먹였다. 그는 추씨의 법정진술이 모해위증에 해당한다며 직접 검찰에 내기도 했다.
하지만 추씨는 고문사실을 강력 부인했다. 추씨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 고문 기술자라는 주장은 비열한 허위사실”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폭로자인 김씨를 폄훼하며 “간첩 출신”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결국 선거에서 추씨는 승리해 다시 양천구청장에 취임했다. 추씨는 취임 후인 2011년 11월 “고문기술자라는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며 선거법 위반 혐의로 김씨 등을 고소했다.
| 보안사에서 수사관들의 고문행위를 가까이에서 지켜봤던, 재일교포 김병진씨가 쓴 저서 ‘보안사’. 책엔 당시 고문 행위가 적나라하게 적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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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씨 주장은 모두 거짓이었다. 검찰 수사에서 추씨의 과거 고문 수사관 전력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추씨는 전두환정권 시절인 1981년 특채로 보안사에 들어가 1985년 금괴밀수에 연루돼 의원면직되기 전까지 수사관으로 근무했다. 1985년 7월 민간인이었던 유씨가 38일간 보안사에 불법구금돼 고문을 받는 동안 추씨 역시 물고문, 전기고문, 인간바베큐 고문 등의 잔혹한 고문에 가담했다.
실제 피해자였던 유지길씨는 2008년 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나체로 거꾸로 매달고 고춧가루가 든 물을 코에다 부었다. 여러 차례 물고문을 했다. 또 의자에 앉혀서 몽둥이로 가슴과 다리를 비틀고 때렸다. 아침 인사가 손으로 때리는 것이었다. 수사관 모두 다 그렇게 했다. 또 나체로 전신에 물을 끼얹고 전선을 성기에 감고 전기고문을 했다”고 증언했다. 다만 고문 피해 당시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했던 유씨는 수사관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결국 추씨는 2012년 4월 공직선거법 위반과 위증·무고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추씨는 법정에서도 고문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그는 “유씨를 수사한 부서에서 근무한 것은 맞지만 수사에 참여하지 않았고 행정서무 업무만 담당하며 승진시험 준비만 했다”고 주장했다. 또 “유씨의 진술은 증거능력이 없다”는 주장도 폈다. 함께 고문에 가담했던 동료 수사관들도 법정과 수사기관에서 이미 숨진 동료 수사관 김모씨만 고문을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심을 맡은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1부는 추씨와 동료 수사관들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해자들과 관련 증거를 종합하면 추씨가 소속됐던 수사5계 수사관 전원이 유씨 고문, 가혹행위에 가담된 것이 인정된다”며 “당선을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김씨 등을 무고했다”고 결론 냈다.
재판부는 “보안사 수사관들의 고문은 중대한 인권침해에 해당하는 것임에도 추씨는 물론 보안사 수사관 전원이 고문행위를 은폐·축소시키려 하고 있다”며 “후유증으로 정상 생활이 불가능한 피해를 입은 유씨는 여전히 진정한 사과나 보상을 받지 못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추씨는 “고문에 가담하지 않았다”며 끝까지 혐의를 부인하며 상소했지만, 서울고법과 대법원도 모두 추씨의 고문사실이 인정된다고 결론 냈다. 법정구속에도 구청장직을 자진사퇴하지 않았던 추씨는 2013년 4월 대법원 확정 판결에 따라 직을 상실했다. 추씨는 2014년 1월 9일 만기출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