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는 규제 줄이는데…'모래주머니' 달고 뛰는 대형마트

by정병묵 기자
2022.06.28 05:00:00

미국·영국·독일·프랑스·일본 등은 규제 점점 완화 추세
국내 유통산업발전법 10년째 제자리
"법 사각지대 식자재마트 등이 진짜 골목상권 위협"
이커머스가 오프라인 앞질러…현실적 진흥법안 필요

미국 최대 규모의 오프라인 대형마트 월마트. (사진=월마트)
[이데일리 정병묵 기자] 미국 워싱턴주 벨링헴시에 올해 초 주재원으로 발령받은 홍성완(44·가명) 씨는 미국 현지와 한국에서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로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는 것을 꼽았다. 대형마트의 대명사인 ‘월마트’는 휴무일이 없다. 오전 6시부터 밤 11시까지 영업을 하다보니 아주 이르거나 늦은 시간에도 장을 보는데 불편함이 없다.

홍씨는 “한국에서는 장을 보기 위해 일요일에 대형마트를 갔다가 휴점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허탕을 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며 “미국에서는 필요할 때 장을 볼 수 있다는 점이 매우 편리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유통규제를 완화하는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대형마트, 백화점 등 기존 대형 유통업체뿐만 아니라 복합쇼핑몰 같은 새로운 업태에도 영업제한 등의 조치를 통해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복합쇼핑몰에 대한 영업제한과 대규모 점포 허가제 도입, 전통산업보존구역 범위 확대 등과 관련된 법안이 대표적이다. 반면 해외 선진국들의 오프라인 유통채널 규제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할 뿐만 아니라 기존 규제들도 줄이는 추세다.

우리나라의 출점 제한은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이 강도가 높다. 우리나라는 대규모(3000㎡ 이상) 점포 또는 대규모 점포를 경영하는 회사가 직영하는 점포는 출점제한을 받는다. 전통상업보존구역 1km 이내에도 점포 출점이 불가능하다.

반면 프랑스는 2009년부터 소매점 허가제 면적을 종전 300㎡ 이상에서 1000㎡ 이상으로 대폭 완화했다. 일본은 기존 허가제를 2000년에 폐지했다. 일요일 영업제한도 기존 연간 5일에서 12일로 확대하고 국제관광지구나 주요 역 내부 상점은 일요일 영업이 제한에서 제외했다.

영국, 미국, 독일은 지역 성격에 따라 규제가 다른데, 종교생활 보장 차원에서 일부 일요일 개점을 금지할 뿐 우리나라처럼 월 2회 의무 휴업 같은 규제는 없다.

핵심 상권에 대형 유통업체 신설을 제한하는 국내와 달리 영국은 도심 내 출점을 장려한다. 도심 내 출점 제한이 없을 뿐 아니라 도심 공동화를 방지하기 위해 도심 외 지역에 2500㎡ 이상 규모의 점포를 설립할 경우 도심 내 지역에 설립할 공간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도심 외에 짓는 경우에도 도심 경계에 최대한 인접해 짓거나 도심에서 접근이 유리한 교통요지에 짓도록 하고 있다.

독일은 지자체별로 일정 규모 이상 점포를 대상으로 출점 규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국내에 비해 기준이 명확해 출점 이후 논란이 될 가능성이 적다. 베를린·헤센주 등 주요 지자체들은 주변상권 영향 분석을 통해 주변상권 매출이 10% 내로 감소할 것으로 추정되면 출점을 허용하고 있다.



일본은 1974년 이후 우리나라 유통산업발전법과 비슷한 대규모점포법을 통해 영업시간과 휴업일수를 규제했다. 하지만 2000년 관련 규제를 완화하는 대규모점포입지법을 시행하고 현재는 특별한 진입 제한 규제가 없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영업시간 제한도 우리나라는 외국과 전혀 다른 모양새다. 현재 오전 10시부터 자정까지 영업할 수 있다. 하지만 매월 둘째주, 넷째주 일요일은 의무적으로 쉬어야 한다.

반면 미국과 일본은 영업시간 제한이 없다. 프랑스도 일요일은 폐점을 원칙으로 하지만 2017년부터 일요일 영업 가능 일수를 확대하고 있다. 영국은 종교생활 보호를 위해 일요일은 오전 10시~오후 6시 중 6시간 이내에 영업시간을 제한한다.

(그래픽= 김일환 기자)
업계에서는 이미 유통시장의 중심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넘어간 상태에서 유통산업발전법은 사실상 유명무실해졌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오프라인을 ‘역차별’한다고 보고 있다.

컨슈머인사이트에 따르면 지난 2017년 우리나라 온라인 쇼핑 시장 비중은 53%로 오프라인 쇼핑(47%)을 추월했다. 2021년에는 온라인 쇼핑이 62%, 오프라인 쇼핑이 38%로 격차는 더욱 커졌다. 유통산업발전법상 규제대상이 아닌 온라인 쇼핑에 비해 시장규모가 줄고 있는 오프라인 유통채널은 오히려 ‘모래주머니’를 달고 뛰는 셈이다.

유통산업발전법의 ‘방치’는 또 다른 갈등을 낳고 있다.

지난해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는 유통산업발전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신종 유통전문점인 ‘식자재마트’에도 똑같이 형평성을 맞춰 규제해달라고 국회에 촉구했다. 식자재마트는 대형마트처럼 영업제한 대상이 아니다 보니 골목 상권을 위협하는 존재라는 이유에서다.

한국체인스토어협회 관계자는 “중소 유통업체 보호를 위해 시행된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가 시행된 지 10년이 지났으나, 규제의 본래 목적인 보호효과는 없었고 오히려 상권침체, 소비자 불편, 수많은 납품업체 피해 등 부작용만 초래하고 있다”며 “특히 이커머스가 유통의 중심이 되면서 과거 대형마트와 중소유통이라는 이분법적 논리에 기초한 규제는 하루 빨리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