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장의 재판개입 권한 있나…윤종섭 재판부만 인정
by한광범 기자
2022.01.27 00:00:05
오늘 '사법농단 1심 유죄' 이민걸·이규진 2심 판결
'직권남용 전제조건' 재판개입권 쟁점…1심 '인정'
법조계 "1심 판결, 헌법상 '재판독립' 반하는 논리"
| 통합진보당 재판 등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된 이민걸·이규진 전 부장판사.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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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사법농단 관련해 기소된 법관들 중 유일하게 유죄 판결을 받았던 이민걸·이규진 전 부장판사에 대한 항소심 판결이 27일 선고된다. 1심 유죄 판단의 핵심 근거가 된 ‘사법행정권의 재판 개입 권한’에 대한 2심 재판부의 판단이 중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서울고법 형사13부(최수환 최성보 정현미 부장판사)는 27일 오후 2시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법원행정처 기조실장을 지낸 이민걸 전 부장판사,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하 양형실장)을 지낸 이규진 전 부장판사, 방창현 부장판사, 심상철 전 서울고법원장에 대한 항소심 판결을 선고한다.
이민걸·이규진 전 부장판사는 2015년 5월~2016년 6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과 공모해 헌법재판소의 위헌정당해산결정을 받은 통합진보당 관련 행정사건에 개입한 혐의 등을 받는다. 이들은 통진당 소속 국회의원들과 비례대표 지방의원들이 ‘의원직 상실’에 불복해 제기한 행정소송과 관련해 재판부에 법원행정처 입장을 전달하는 방법 등으로 재판에 개입한 혐의를 받는다.
또 2017년 1~2월엔 사법행정에 비판적이었던 연구모임 국제인권법연구회와 인권보장을 위한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 와해를 위해 연구회 중복가입 해소조치를 지시한 혐의도 받는다. 이민걸 전 부장판사는 이와 별도로 2016년 10~11월 국민의힘 의원들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담당 재판부의 심증을 확인하라는 지시를 한 혐의도 있다.
이규진 전 부장판사는 양형실장으로 부임한 2015년 2월부터 2017년 4월까지 양 전 대법원장 등의 지시를 받고 헌법재판소 파견 판사를 통해 서면심리와 평의 등 헌재 내부 정보와 동향 등을 불법적으로 수집한 혐의를 받는다. 또 2015년 4월 서울남부지법에서 한정위헌 취지의 위헌제청결정을 내리자 재판부에게 해당 결정을 직권취소하고 단순위헌 취지의 위헌제청결정을 하도록 해 재판에 개입한 혐의도 있다.
아울러 2016년 7월 동일한 사안을 두고 대법원과 헌재가 동시에 심리하는 상황이 발생하자 양 전 대법원장 등과 공모해 대법원 재판연구관에게 헌재보다 빨리 선고가 될 수 있도록 대법원 재판에 개입한 혐의를 받는다.
1심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재판장 윤종섭)는 두 사람의 △인권법연구회 와해 시도를 유죄로 판단했다. 개별적으로는 이민걸 전 부장판사에 대해선 △국민의힘 의원들 사건 재판부 심증 확인 지시 혐의를, 이규진 전 부장판사에 대해선 △남부지법 재판부 한정위헌 취소 요구 △통진당 관련 법원행정처 의견 서울행정법원·전주지법 재판부 전달 지시 혐의 등을 유죄로 인정했다. 이민걸·이규진 전 부장판사는 1심에서 각각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 판결을 선고받았다.
재판에서의 쟁점은 사법행정권이 재판사무에 개입할 권한이 있는지 여부였다. 이들에게 적용된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죄가 성립되기 위해선 우선적으로 재판사무에 관여할 ‘직무권한’을 갖고 있어야 한다. 아울러 그 같은 직무권한이 인정될 경우에 한해 재판부의 권리행사를 실제로 방해했는지를 따져 유무죄를 판단하게 된다.
법원은 그동안 다른 사법농단 관련 재판에서 일관되게 “재판독립의 원칙상 재판업무를 지휘·감독할 사법행정권은 없다”며 직무권한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에 부적절하게 관여한 것은 맞지만 이는 직권을 뛰어넘는 월권적 행위이고, 여기엔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결론이었다.
하지만 이민걸·이규진 전 부장판사 1심 재판부(이하 윤종섭 재판부)는 사법행정권의 재판 개입 직무권한을 인정했다. 윤종섭 재판부는 국민의 재판청구권 보장 등을 이유로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의 사실 인정, 헌법·법령 해석·적용 등 재판 핵심 영역에 대한 ‘지적 사무’ 권한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구체적으로는 “장기미제사건 처리 지연이나 미숙한 재판으로 명백한 잘못을 저지른 경우에도 재판독립을 이유로 대법원장이나 법원행정처가 판사를 상대로 어떠한 지적도 할 수 없다고 보는 자체가 불합리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같은 판단을 근거로 이민걸·이규진 전 부장판사가 재판에 대한 ‘지적 사무’ 권한을 가진 양 전 대법원장과 공모한 만큼 재판 개입에 대한 직무권한이 인정된다고 봤다. 그리고 이 같은 직권을 통해 통진당 사건 재판부 등에 대한 권리행사를 방해했다고 결론 냈다.
법조계에선 이 같은 판단에 의문을 제기한다. 특히 임성근 전 부장판사 2심 재판부였던 서울고법 형사3부(박연욱 김규동 이희준 부장판사)는 판결문을 통해 윤종섭 재판부의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하기도 했다.
서울고법 형사3부는 “재판 핵심영역에 대한 지적 사무는 법관으로 하여금 대법원장이나 법원행정처에 대해 복종하도록 하는 것이어서 법원 외부뿐 아니라 내부로부터의 재판독립을 보장하는 헌법에 정면으로 반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법원장 등이 재판에 개입할 수 있게 한다면 독립되고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기 어렵고 이 같은 지적사무로 재판이 지연돼 신속하고도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고 강조했다.
부장판사 출신 한 변호사도 “재판 개입이라는 사법행정권 남용을 처벌하기 위해 사법행정권의 재판 개입 권한을 인정한다는 모순된 논리”라며 “사법행정권이 어떻게 재판독립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뛰어넘을 수 있단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수도권 법원 소속 한 판사는 “재판독립을 위한 법관의 여러 신분보장 장치를 윤종섭 재판부는 오히려 사법행정권의 재판 개입 필요 근거로 판단했다는 점에서 전혀 동의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한편, 전주지법 근무 당시 통진당 비례 기초의원 행정소송 사건 재판장이었던 방 부장판사는 법원행정처 소속 법관에게 심증을 누설하고 행정처 요구를 반영해 판결문 일부를 수정하도록 한 혐의로 기소됐다. 심 전 법원장은 통진당 국회의원 행정소송 2심 배당과 관련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되도록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모두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