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구자형 기자
2019.04.03 00:11:47
선 없는 블루투스 이어폰…걸림 없는 편리함 추구
최근 암을 유발한다는 오해 받기도…오보 기사로 판명
“이어폰을 쓰다 보면 한쪽이 안 들리는 일이 엄청 많았죠. 비싼 것도 마찬가지였어요”
MP3 플레이어의 태동과 함께 쭉 이어폰을 달고 산 대학생 이종영(가명·27) 씨는 유선 이어폰의 가장 큰 단점을 ‘단선’이라고 지적했다. 선을 정리해주는 줄감개, 전용 파우치 등 좋은 제품은 죄다 이용해 봤지만 단선을 피할 수는 없었다. 결국 이 씨는 지난해 상반기에 유선 이어폰을 4개나 갈아 치웠다. 맞은편 행인의 가방에 걸려, 만원 전철에서 급하게 내릴 때 또 누군가의 가방에 걸려 이어폰이 쉽게 망가지곤 했다.
의도치 않게 친구들로부터 ‘이어폰 파괴왕’이라는 별명을 얻은 이 씨는 얼마 전 블루투스 이어폰(코드리스, 무선 이어폰)을 장만했다. 선 없이 귀에 끼우기만 하면 되는 제품이었다. 이어폰을 바꾼 이후 이 씨는 더 이상 혼잡한 자리에서 단선을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이 씨와 같은 고민에서 시작된 무선 이어폰 시장은 큰 인기를 얻으며 지난해 1억대 이상의 판매량을 달성했다. 기존 오디오 업체, 휴대폰 제조사 가릴 것 없이 시장에 뛰어들어 여러 제품을 낸 결과다. 특히 버스, 전철 등의 대중교통에서 20·30세대와 일부 중년층이 무선 이어폰을 이용하는 풍경을 자주 볼 수 있게 됐다. 무선 이어폰은 왜 꾸준히 사랑받는 아이템이 됐을까?
인기 없던 제품군…애플 ‘에어팟’으로 급부상
무선 이어폰은 최근 들어 생긴 제품이 아니었다. 휴대폰 벨소리가 몇 화음인지가 중요했던 지난 2005년, 광고를 통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당시 삼성 애니콜 휴대폰 광고에서는 문근영 배우가 광고 모델로 등장해 춤을 춘다. 이어 전화 벨소리가 울리자 고개를 옆으로 젖혀 한쪽 어깨로 블루투스 헤드셋의 버튼을 누른다. 그 후 상대방과 통화한다. "여보세요?"
휴대폰을 손에 들고 있지 않아도 통화할 수 있다는 이 광고는 당시 획기적이고 신박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무선 이어폰 시장을 크게 활성화 시키지는 못했다. 당시 블루투스는 음성 끊김 현상이 잦았고 고속 데이터도 지원되지 않아 인식이 나빴기 때문이다. 블루투스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도 한 몫 했지만, 무엇보다 별매인 헤드셋 가격이 비쌌다. 문근영폰과 함께 발매된 별매 블루투스 헤드셋의 가격은 11만원이었다. 당시 물가를 고려했을 때 결코 저렴한 가격은 아니었다.
하마터면 실패작으로 흘러갈 뻔했던 무선 이어폰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은 것은 약 10년 후 출시된 애플의 ‘에어팟’이다. 하지만 이 또한 등장 초기부터 사람들에게 주목받았던 제품은 아니었다. 많은 전자제품 마니아들은 “콩나물 같이 생겼다”, “애플 디자인 중 최악”, “귀에 담배꽁초를 끼우고 다니냐”는 혹평과 함께 에어팟이 실패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선꼬임 없는 편리함, 블루투스 전송 기술의 발전으로 에어팟은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단숨에 애플의 효자 상품이 됐다. 지난해 1분기 애플 재무제표에 따르면 에어팟이 포함된 제품군의 매출은 약 4조 3995억 원을 달성했다. 전년도인 2017년 같은 분기에 비해 38%가량 오른 수치다.
에어팟의 성공과 함께 휴대폰 제조사와 기존 음향기기 업체들도 잇따라 무선 이어폰 시장에 뛰어들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에어팟의 모양을 비슷하게 본뜬 제품들이 판을 쳤다. 길거리에서는 많은 사람이 하얀색 꽁지가 달린 무선 이어폰을 착용한 채 다녔고, 무선 이어폰은 그야말로 ‘힙(hip)’한 아이템이 됐다.
선 없는 것이 장점…혼잡 시엔 끊김도 있어
무선 이어폰 이용자들은 하나같이 ‘선 없는 편리함’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는다. 약 1년째 무선 이어폰을 이용하고 있는 대학생 장은수(가명·23) 씨는 “롱패딩을 입을 때 유선 이어폰을 쓰면 꼬인 선이 짧고 지저분해 보이는데 무선 이어폰은 그런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저렴한 제품도 많아서 선택의 폭이 넓다”고 덧붙였다. 한편 삼성의 문근영폰 시절 블루투스 헤드셋을 사용했던 안덕현(가명·37) 씨는 “최근 무선 이어폰을 이용해보고 기술이 발전했음을 느꼈다. 격하게 움직이거나 멀리 있다고 해서 끊기지 않아 놀랐다”고 말했다.
실제로 블루투스 전송 기술은 지난 2017년 최신 버전인 ‘블루투스 5’가 출시되며 크게 발전했다. 이 기술에서는 데이터 전송 속도와 전송 거리를 유동적으로 조정하면서, 한 쪽에 집중할 수 있는 방식이 도입됐다. 이로서 저전력 모드로 유지해야 하는 제품군에서 활용성이 높아졌다. 자체 대역폭과 거리도 크게 늘어났다.
그러나 무선 이어폰이 ‘끊김 없는 재생’을 완벽히 보장하긴 어렵다. 기술의 발전과 함께 데이터 전송 기술도 좋아졌지만 여전히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끊기는 경우가 잦다. 특히 많은 인파가 몰리는 퇴근 시간 대중교통에선 음악을 온전히 듣기 힘들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통신 장비의 전파와 와이파이 대역폭이 마구잡이로 뒤섞인 상황에서 블루투스 전파 또한 방해를 받기 때문이다. 특히 이 전파는 액체를 통과할 수 없어 주머니 속에서 휴대폰을 손으로 쥐고 있는 상태라면 전파 방해는 더욱 심해진다.
음질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음향 매니아들은 “무선 이어폰의 음질이 떨어진다”고 지적하며 유선 장비를 추구하는 경우가 많다. 무선으로 데이터를 전송하며 발생하는 손실율을 간과할 수 없다는 얘기다.
암을 유발한다?…오해받지만 성장 계속
지난달 18일 국내 중앙 일간지에서 무선 이어폰이 암 발병에 영향을 끼친다는 기사가 보도됐다. 해외 비영리단체 EMFscientist에서 지난 2015년 세계보건기구(WHO)와 유엔환경계획(UNEP)에 보낸 호소문 때문이다. 당시 기사에 따르면 EMFscientist는 “무선 장치에서 발생하는 비이온화 전자기장이 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우려를 표명했다. 이어 ‘전 세계 과학자들이 애플 에어팟 등 무선 이어폰이 암 발생 위험을 키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정 보도에 따르면 해당 단체는 무선 이어폰 제품을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사에서 이야기하던 것처럼 ‘애플 에어팟’을 특정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 같은 오보가 난 것은 잘못된 외신을 인용했기 때문이다. 정정 보도문은 “외신 기사들이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며 “호소문은 특정 제품이나 제조사를 언급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마터면 발암 제품으로 억울하게 몰릴 뻔했던 에어팟은 다행히 약 24시간 이후 정정 기사가 발표되면서 누명을 벗었다. 실제로 WHO도 지난 연구 결과를 통해 “일상 전자기파의 인체 유해성은 과학적 근거를 찾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국립전파연구원도 지난 2016년 웹사이트 질문 코너에서 “블루투스 기기에서 발생하는 의도적 전자파는 출력이 작아 측정하기도 힘들 정도”라고 답변했다.
온라인 가격 비교 사이트 다나와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무선 이어폰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2017년 57.9%에서 지난해 61%로 늘었다. 반면 유선 이어폰은 41.5%에서 38.5%로 소폭 감소했다. 무선 이어폰 유형별 점유율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완전 무선형은 19.2%에서 48.6%로 대폭 증가했다. 그러나 목에 둥근 밴드를 걸고 사용하는 넥밴드형 무선 이어폰은 42.%에서 24.8%로 크게 감소했다. 아예 선이 없는 에어팟이 급부상하면서 귀에 끼우기만 해도 사용할 수 있는 유형의 이어폰이 시장의 절반 수준을 차지했다.
무선 이어폰이 극복해야 할 물리적 한계는 여전히 많다. 혼잡한 장소에서 블루투스 전송 기술은 여전히 발전 대상이다. 일각에서는 여전히 무선 이어폰에서 나오는 전자기파의 인체 유해성을 주장하고 있어 임상 연구도 소홀할 수 없다. 하지만 시장 규모와 발전 속도를 볼 때, ‘선 없는’ 이어폰 트렌드를 창조하는 무선 이어폰 시장은 앞으로도 꾸준히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스냅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