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시장 생태변화..1등 기업도 흔들린다

by오상용 기자
2012.03.12 06:10:02

강력해진 마켓파워..베이징 입에 춤추는 기업들

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3월 12일자 3면에 게재됐습니다.

[이데일리 오상용 기자] 중국에서 장사하기가 녹록치 않아졌다. 중국의 마켓파워(market power)가 다국적기업의 민첩성을 앞질러 더 강해지고 있어서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와 뒤이은 유럽의 재정위기로 이같은 양상은 더 뚜렷해졌다. 미국이 반세기 가까이 누리던 마켓파워를 중국이 나눠 가지면서 중국 소비자를 붙잡기가 쉬운 일이 아닌 게 됐다.



▲ 현대차 베이징 딜러[현대자동차 제공]

베이징의 정책변화에 울고 웃는 다국적 기업이 늘고 있다. 중국의 거시정책과 산업별 육성전략, 업종별 구조조정 계획 하나하나에 주변국, 나아가 전 세계 기업이 영향을 받고 있다. 한국의 대표산업인 자동차와 전자가 최근 중국시장에서 주춤거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시장에서 승승장구하던 현대차는 올들어 뒷걸음을 치고 있다. 현대차의 1~2월 중국내 자동차 판매실적은 지난해 같은 기간 보다 1.6% 줄었다. 중국 정부가 자동차 구입보조금 정책을 지난해 중단하면서 수요가 둔화되고 있다. 현대차 뿐만 아니라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 대부분이 처한 현실이다.

철강과 제지 시멘트 부문은 2년 앞서 홍역을 치렀다. 중국 정부가 설비과잉 양상을 보인 철강과 철광석·제지·시멘트 등 18개 산업에 대해 구조조정을 단행하자 눈물을 머금고 고향으로 돌아간 해외투자자가 적지 않았다.



정책 환경 뿐만 아니다. 중국 본토 기업의 반격도 매섭다. 외국기업에 빼앗겼던 안방시장을 탈환하는 본토기업이 늘면서 TV와 휴대폰 디스플레이 등 가전시장을 주무르던 한국 기업은 1등 자리를 내주고 있다.
 
한때 중국에서 에어컨 1위였던 LG전자도 중국 업체에 자리를 내주고 한참 뒤로 밀린지 오래다. TV 시장도 중국 업체들이 싹쓸이했다. 1위부터 5위까지가 모두 중국 업체다. 삼성과 LG 등 한국기업의 중국 TV 점유율은 지난해 1분기 12%에서 4분기에는 9%로 더 낮아졌다.



지난해말 중국 정부는 수출에서 내수산업 중심으로 양적성장에서 질적성장으로 경제체질을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사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시장`으로 변모하기 시작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미국과 EU 경제가 여전히 불안한데다, 글로벌 리밸런싱(무역불균형 해소)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도 거세져 이행 속도가 빨라지고 있을 뿐이다.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 내수시장은 분명 주변국에게 기회다. 크레디트스위스(CS)의 세계부(富) 보고서를 보면 중국내 자산 총액이 100만달러 이상인 인구는 100만명을 넘어섰다. 전세계 명품의 26%를 소비할 만큼 막강한 소비층을 이미 갖추고 있다.
 
그렇다고 밥상만 차려놓을 중국이 아니다. 내수산업을 키워 일자리와 성장세를 유지하겠다는 정책의 중심엔 기본적으로 자국기업 우선주의가 자리한다.
 
이문형 산업연구원의 선임연구위원은 "중국의 정책에 맞춰 한·중간 브랜드 공동개발 등 광범위한 산업기술협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중국 중서부 내륙지역을 위한 다양한 경기부양책이 예상되는 만큼 중서부 핵심지역에 대한 진출도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문익준 대외경제연구소 부연구위원도 "중국에서 경쟁상대를 본토기업으로 잡으면 안된다"며 "중국기업과 손잡고 외국기업과 경쟁하는데 초점을 맞추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엄정명 삼성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그간 대중(對中)수출의 70%는 중간재였다"면서 "중국 수출이 늘어야 우리 기업의 대중수출도 늘어나는 구조였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제는 중국의 내수육성 전략에 맞춰 유통 물류 금융 부문에 대한 진출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