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th SRE)⑨기아차 등급, 해소되지 않는 불신

by배장호 기자
2007.11.01 10:30:35

[이데일리 배장호기자] 기아자동차(000270)에 대한 신용평가기관과 시장간의 인식 괴리가 평행선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이데일리가 여섯번째로 실시한 신용평가 전문가 설문(SRE) 결과에 따르면, 기아차의 신용등급에 `이의`를 제기한 응답자는 무려 60%에 달했다. 두번째로 많은 지적을 받은 이랜드의 응답률 48%와 비교해도 월등히 높았다. 역대 SRE에서도 유례가 없는 높은 집중도였다.

 

신용평가회사들은 현재 기아차에 대해 AA-(안정적)의 등급을 부여하고 있지만, 시장은 이보다 세 등급이나 낮은 가격에서 기아차 채권을 거래하고 있다.


 
SRE 분석의 자문을 맡은 전문가들은 기아차의 이번 등급 설문 결과에 대해 "굳이 부연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자문위원은 "기아차의 회사채 유통수익률이 동급 평균 대비 세단계나 아래인 A- 채권 수준으로 헐값 취급을 받고 있다"고 상기하면서 "신용평가사들이 아무리 AA-라고 우겨도 시장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KIS채권평가)


기아차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3년여 전부터 시작된 환율 하락으로 영업 실적이 타격을 입고 있는 가운데, 슬로바키아, 중국 등 해외 생산 능력 확보를 위한 거액의 투자가 지속되면서 잉여 현금흐름이 현저히 저하됐다.
 
특히 올초 들어 해외 현지법인들의 재고가 급격히 쌓이면서, 단기 유동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회사채 시장 주변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신용평가사들도 기아차의 이러한 사정에 주목을 했다. 일부 신평사는 기아차 유동성 위기설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분석리포트(`기아자동차 유동성 위기설의 원인과 장단기유동성 분석` 07.5.28 한신정)를 내기도 했다.
 
신평사들은 단기적으로 유럽을 중심으로 한 현지재고 급증 문제라든가, 장기적으로 환율하락이나 해외생산법인 투자 부담 문제 등 시장이 기아차에 대해 시장이 우려하는 바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결론 부분이다. 신평사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급을 조정할 정도는 아니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여러 근거들을 들이 대며 현 등급의 타당성을 주장하지만 시장은 냉담하다.
 
시장은 "이 정도면 기아차에 등급 조정 얘기가 나와야 하는 거 아니냐. 하다못해 등급 조정 가능성에 대한 언급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지적한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교역조건이나 가동률을 감안할 때, 기아차는 당분간 영업을 통해 창출하는 현금으로 경상 수준의 투자와 금융비융을 충당하기가 벅찰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여기에 현지법인 지원을 위한 추가지출, 해외공장 설립 추진에 소요될 현금 등을 감안할 때 적어도 9000억원 정도의 추가 현금 유출이 불가피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결국 이 정도의 추가 소요 현금은 회사채 발행 등 외부 조달을 통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시장이 기아차의 신용등급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지적한다. 대규모 사채 발행을 앞두고 등급 괴리로 인한 혼란을 없애고 진정한 가격 발견 기능을 돕기 위해서는 신평사들이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신평사들의 딜레마는 여기에서 발생하는 지도 모른다. 대규모로 회사채를 발행할 가능성이 있는 기아차를 건드리기가 부담스럽지 않겠냐는 것.

한 크레딧 애널리스트는 "신용평가사들 입장에서는 고객인 발행 기업의 심기를 건드리는 일을 하고 싶지 않을 것"이라며 "특히 기아차 처럼 재벌그룹의 핵심 계열사라면 더욱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신평사들이 기아차의 현 등급을 고수하는 단골 논리인 `현대차 그룹의 지원 가능성`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의문을 표했다.

신평사들은 "기아차가 현대차 그룹의 사업상, 지배구조상 핵심 계열사로서, 만일 회사가 재무적 곤경에 처할 경우 그룹 차원의 지원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자문위원은 "그룹의 지원 가능성이 등급 고수의 중요 포인트라면 결국 현대차와 기아차가 공동 운명체란 의미란 얘긴데, 그럼에도 불구 현대차와 기아차의 신용등급이 다른 것은 논리 모순"이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자문위원은 "현대차와 기아차를 한 몸으로 인식한다면, 오히려 현대차 등급을 기아차에 맞춰 내리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실제로 글로벌 평가사들은 이런 논리를 적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