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실리콘밸리의 자금 조달 비법…키워드는 '명확성·꾸준함·반복수익·고객'

by박소영 기자
2024.11.13 06:38:05

명확한 사업 철학과 BM, 투자사에 보여야
평정심 가지고 꾸준히 도전하는 자세 필수
ARR 만들어 안정적 운영 토대 구축해야
고객 생각한 비즈니스 일궈야 사업도 성공

[실리콘밸리=이데일리 마켓in 박소영 기자] “미국에서는 준비가 덜 돼 있어도 일단 사람들 앞에 나서서 대화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일단 (잠재) 고객과 대화를 시도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미국 진출을 위해 실리콘밸리에 모인 국내 창업가들을 위해 현지 벤처캐피털(VC)과 업계 관계자들이 공통으로 전한 조언이다. 이들은 초기 스타트업일수록 “매출을 올리기 외에도 정기적으로 고객과 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며 지속적인 미팅을 하는 근육을 길러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실리콘밸리는 혁신의 산실로 불리며 전 세계 출자자(LP)들의 자금이 쏠리고, 스타트업 성공 사례가 즐비한 동네다. 일각에서는 그 명성이 예전만 못하다는 이야기가 들려오지만, 아직 각종 투자들의 관심이 이 지역에 쏠리고 있다고 집계될 만큼 스타트업 성지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실리콘밸리 현지에서 성공한 스타트업의 특징은 무엇일까, 그리고 현지 투자사들은 어떤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걸까. 현지에서 엑시트 경험을 일군 선배 창업가들과 VC 관계자들이 전하는 성공 비법을 알아봤다.

지난 7일(현지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 500글로벌 본사에서 열린 ‘2024 윈터 파운더 리트릿’ 행사에 참석한 한기용 그렙 CTO가 국내 창업가들에게 조언하고 있다. (사진=박소영)
글로벌 VC 500글로벌의 국내 지사 500글로벌 매니지먼트 코리아는 지난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2024 윈터 파운더 리트릿’ 행사를 개최했다. 행사에는 현지에서 엑시트에 성공한 선배 창업가들과 VC 관계자들이 참석해 국내 스타트업들을 위한 다양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우선 다니엘 솔 은 버티컬 바 대표는 미국 진출을 원하는 초기 단계 스타트업이 가장 염두에 둬야 할 사항으로 ‘명확한 사업 철학과 비즈니스 모델(BM) 갖추기’를 꼽았다. △어떤 철학을 가지고 사업을 구상했는지 △어떤 테크 사이클에서 어떻게 비즈니스 플레이를 할 것인지 △회사의 기술이 창업가에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물었을 때 대답할 수 있는 자신만의 철학과 스킬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약 30년간 실리콘밸리부터 국내까지, 스타트업과 대기업을 종횡무진하고 지금은 개발자들의 멘토로 일컬어지는 한기용 그렙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성공하는 스타트업들의 공통점’에 대한 생각을 전했다. 한 CTO는 “실리콘밸리에는 똑똑하고 돈을 잘 버는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사람이 많다”면서도 “도전하는 사람에게 기회가 간다”며 창업가들이 평정심을 가지고 꾸준히 도전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점을 짚었다.

그는 리더십뿐 아니라 팔로우십 또한 필요하다고도 했다. 창업가들이 구성원들과 함께 문제를 풀고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함께 기업을 만들어가는 분위기에 동참할 수 있는 사람들과 오래갈 수 있다는 의미다. 그는 그러면서도 수평적 의사결정은 지양해야 한다고 말을 꺼냈다. 수평적 관계를 형성해 편하게 의견을 교류하는 분위기는 좋지만, 조직 사회인만큼 대표의 결단과 결정, 책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난 7일(현지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 500글로벌 본사에서 열린 ‘2024 윈터 파운더 리트릿’ 행사에 참석한 앤드류 부스 다윈벤처스 창업자 겸 대표가 연간반복수익(ARR) 창출의 중요성을 국내 창업가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사진=박소영 기자)


매출 측면에서는 어떤 전략을 펼쳐야 할까. 앤드류 부스 다윈벤처스 창업자 겸 대표는 “연간반복수익(ARR)을 확보해야 급여, 임대료 등 고정비용을 충당할 수 있어 자금 조달이 어렵거나, 문제가 생겨도 실질적으로 안정적인 사업 운영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때 초기 단계 기업이 처음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처음 보는 사람을 고객으로 만들어 매출을 달성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의 말과 달리 대부분의 국내 스타트업은 반복수익이 아닌 일회성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대기업과 기술검증(PoC)을 진행하는 단발성 프로젝트를 반복하는 식이다. 이에 권혁현 500글로벌 코리아 심사역은 “PoC 결과에 만족하지 말고 관계 구축을 이어나가야 한다”며 “PoC의 기본 범위를 설정하고 관계를 쌓아야 이후에 고객 전환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앤드류 부스 창업자는 이어 매출이 10만달러(약 1억 4000만원)에 이르는 사업 초기에는 다양한 유형의 고객군을 대상으로 실험하는 게 좋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기업과의 거래는 성사까지 오래 걸리므로 소규모 고객군을 타켓 삼아 계약을 성사시키며 성장세를 만들어가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이렇게 데이터를 축적해야 어느 고객군에 집중해야 할지 점차 명확해진다는 설명이다.

또한 그는 “초기 단계에서는 절대 업무를 위임하면 안 된다”며 “한국에서 시리즈 A나 B 라운드를 유치했거나 상장했다고 해도 미국에서는 제품·서비스나 반복 가능한 영업 프로세스가 없으면 창업자가 이를 직접 경험해야 한다”고 전했다. 그는 창업자가 직접 경험하며 반복 가능한 영업 프로세스를 세운 후에는 원하는 사람을 고용해 교육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올바른 사람을 채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전에 시스템과 데이터를 모두 준비하는 게 80%의 성공을 좌우한다”며 매출이 30만달러(약 4억 2000만원)를 넘어서면서부터 팀 확장과 관련된 스케일업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지나 트루윈드 고객 성공 디렉터 역시 고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지나 디렉터는 “회사의 가치 중 고객 중심을 포함시키는 건 매우 중요하다”며 “아마존도 첫 번째 원칙이 고객의 중요성 강조하는 것인데 인재채용에서도 이와 관련된 사례를 제시해야 할 정도다”고 했다. 즉 고객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해 원하는 목표나 가치를 성공적으로 달성할 수 있도록 한다는 의미인 ‘고객 성공’에 집중해 비즈니스를 펼쳐야 한다는 이야기다.

김 디렉터는 소비자의 60%가 더 높은 고객 서비스 기준을 요구할 만큼 최근 실리콘밸리 고객들이 스타트업과 기업에 대한 기대치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짚었다. 인공지능(AI)이 고객 맞춤화에 이바지하며 이런 트렌드는 계속될 전망이다. 그럼에도 그는 AI가 모든 고객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점을 짚었다. 고객 성공은 결국 공감을 기본으로 하며 여전히 관계와 신뢰를 기반으로 이뤄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는 “실제 프로세스에는 AI가 유용할 수 있지만, AI가 인간의 감정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