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억 빚 갚아라” 아버지 유언, 꼭 따라야 할까요[양친소]
by최훈길 기자
2024.02.04 06:00:00
[양소영 법무법인 숭인 대표 변호사(한국여성변호사회 부회장)·정지인 법무법인 숭인 변호사]
| 양소영 법무법인 숭인 대표 변호사. △20년 가사전문변호사 △한국여성변호사회 부회장 △사단법인 칸나희망서포터즈 대표 △전 대한변협 공보이사 △‘인생은 초콜릿’ 에세이, ‘상속을 잘 해야 집안이 산다’ 저자 △YTN 라디오 ‘양소영변호사의 상담소’ 진행 △EBS 라디오 ‘양소영의 오천만의 변호인’ 진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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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2년 정도 투병 생활을 하면서 많이 힘드셨죠.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의 막내 동생인 작은아버지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찍은 유언장 녹화본이 있다면서요.
영상을 보니 저희 아버지와 작은아버지 사이에서 3억원 가량 돈이 오갔던 것 같습니다. 영상은 “법정 상속인이 아파트 1채와 빌라 1채를 상속 받으면 작은아버지에게 3억원의 채무를 갚아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와 어머니는 아버지와 작은아버지 사이에 채무가 있었는지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두 분이 거래한 돈에 대한 차용증도 없는데, 돈이 오갔다는 상황이고요. 유언 녹화 영상은 증인도 등장하며 절차에 문제없이 촬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유언 녹화 당시 저의 아버지는 말기암 투병 중으로 건강이 상당히 좋지 않을 때였습니다. 녹화하고 열흘 뒤에 돌아가셨으니까요. 이 유언 영상은 법적 효력이 있는 건가요?
△유언은 일정한 방식을 요구하고 이 방식에 따르지 않은 무효로 하고 있습니다. 민법이 인정하고 있는 유언 방식에는 자필증서, 녹음, 공정증서, 비밀증서 및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 등 5가지가 있습니다.
△동영상에 의한 유언은 녹음에 의한 유언에 해당하므로 민법 제1067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요건을 갖춰야 합니다. 즉 유언자가 유언의 취지, 그 성명과 연월일을 구술하고, 이에 참여한 증인이 유언의 정확함과 그 성명을 구술해야만 유언으로서의 효력이 인정됩니다.
△최근 판례를 살펴보면요. 망인이 각 부동산을 차남과 나머지 상속인들에게 일부씩 분배하는 취지의 유언을 했고, 이를 차남이 단독으로 촬영했습니다. 하지만 이 동영상에 의한 유언은 망인이 자신의 성명과 연월일을 구술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증인이 유언의 정확함과 성명을 구술한 사실도 없었기에 그 효력이 무효가 됐습니다. 또한 더나아가 사인증여의 요건도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보고 사인증여로서의 효력도 없는 것으로 판단한 대법원 판례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동영상에 의한 유언이 유언으로서 효력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민법에서 정한 엄격한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합니다.
△유언 역시 일종의 의사 표시이므로 의사 능력이 없는 자가 한 유언은 그 형식을 갖추고 있더라도 무효입니다. 또한 유언 능력이 필요한 시기에 대해서는 민법이 규정하는 바 없으나, 유언할 때 유언 능력이 있으면 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사연자의 아버지가 많이 편찮으셔서 유언할 당시 정상적으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상태였다고 볼 수 있는 경우에는 사실상 의사 능력이 없는 자가 한 유언에 해당해 무효라고 할 것입니다. 반면 유언 당시에 의사 능력이 있는 것으로 본다면 해당 유언은 유효라고 할 것입니다.
한편 사연에서 작은아버지의 말에 의하면, 작은아버지는 사연자의 아버지에게 3억원의 채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언으로 이익을 받을 사람에 해당한다고 판단되지만, 증인이 아니고 단순히 동영상을 촬영했기 때문에 작은아버지가 동영상을 촬영한 것 그 자체는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동영상에 의한 유언의 효력 유무에 따라 변제 의무가 달라지게 됩니다. 아버지의 유언 능력이 인정돼 유언의 효력이 유효하다면, 작은아버지에게 3억원의 채무를 변제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유언 능력이 결여된 것으로 판단돼 유언의 효력이 무효가 되고, 상속인들이 채무의 존재를 전혀 알지 못했고, 차용증 역시 없는 상황이라면 작은아버지에게 3억원의 채무를 변제할 의무가 없습니다.
△민법 제1091조에 의하면 유언의 증서나 녹음을 보관한 자 또는 이를 발견한 자는 유언자의 사망 후 지체 없이 법원에 제출해 그 검인을 청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검인은 유언자의 최종 주소지 관할 법원에 유언의 원본을 제출해서 유언의 형태와 내용을 확인하는 절차인데요. 녹음에 의한 유언은 검인 청구가 의무입니다. 검인 절차에서 상속인 중 일부가 이의제기를 해 그 검인 조서로는 유언 집행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유언무효확인의 소를 제기해 법원의 판결을 받는 것이 좋은 방법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