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령 제 남편이 엉덩이를 만졌대도”…젠더 전쟁의 발발[그해 오늘]
by이로원 기자
2023.09.06 00:01:41
| (곰탕집 성추행 사건 CCTV 장면.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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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크코코* : 전 요즘 잠을 못잡니다. 정신병 걸린 것 같네요. 8살 난 아들도 있는 분인데 재판부의 잘못된 판단으로 한 순간에 가정이 파괴되버린거에 얼마 전 아들을 낳은 아빠로서 너무 공감이 됩니다. 길을 가다 앞에 여자가 있으면 멀찌감치 피해 가게되구요. 혹시나 주변에 cctv가 없진 않을까 찾아보게 됩니다.
쿠라* : 억울한 남편분, 네이버 실검 올려야 합니다. 그래야 전국적으로 이슈화 됩니다. 다들 ‘억울한 남편 국민청원’으로 네이버에 한 번씩 검색합시다. 정말 이불 밖은 위험해서 못 나갈 것 같습니다. ㅠㅠ
운전면허없* : ‘남편의 억울한 사연’ 올리신 초코파이1님의 영상이요. 올려주신 영상이 보기 힘드신 분들이 있을까 해서 수정했습니다. 워낙 올려주신 동영상의 소스가 안좋아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더 좋은 소스가 있다면 제가 또 도와드리겠습니다.
한미르마* : 억울한 남편 6개월 판사 이름이 뭐지요? 이런 판사는 판사 자격이 없어보이네요. 판사 이름 아시는분 좀 올려주세요.
[앵커]
강제추행 혐의로 징역 6개월을 선고받은 남편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국민청원이 올라와 나흘 만에 24만 명이 넘는 국민 동의를 얻었습니다. 구속된 남편의 아내는 재판 당시 CCTV와 판결문까지 공개하고 나섰습니다. 어찌된 일일까요.
[기자]
CCTV 속 여성이 ‘남성이 엉덩이를 움켜잡았다’며 경찰에 고소했지만, 남성은 손이 스친 것 뿐이라며 혐의를 강하게 부인한 것입니다.
검찰은 벌금 300만원을 구형했으나 1심 재판부는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징역 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습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온라인 상에서 사건의 진상을 파헤쳐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는데요.
하지만 남성의 부인이 감정을 앞세워 피해 여성을 꽃뱀으로 매도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습니다.
레모네이* : 성추행 자체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고가 아쉽네요. 당한 사람 입장은 그게 아닌데..
블루 와* : 느낌 있잖아요, 스치는 느낌이 아니라.. 그냥 닿은 느낌이 아니라 확실하게 움켜쥔 느낌, 순식간에 만지고 빠지는.. 아 이건 정말 당해본 사람만 아는데.. 근데 영상봤을 때 딱 그런 느낌이 오더라구요
흐* : 근데 아내분은 당시 자리에도 없었는데 남편분 말만 믿고 억울하다며 글 올리는게 흠.. 당연히 남편들은 안 만졌다고 하지 않을까요..?
오리* : 가입한지 5년 만에 처음으로 글 써보는데요. 초코파이1 님 남편 분의 성추행 장면 동영상을 몇 번이나 돌려 봤습니다. 제 생각엔 몸이 닿은 건지 손이 닿은건지는 모르겠지만 단순히 ‘미투 분위기에 힘입어 성추행이라 주장하는 거 아니냐’는 분위기로 몰고 가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요.
이날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게재된 글 한 건이 불러온 파장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최씨의 아내 A씨가 올린 청와대 국민청원과 관련된 서명은 거의 33만명에 육박했고, 해당 판결문 내용과 당시의 CCTV 영상은 온라인에 퍼져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누리꾼들은 ‘억울한 남편’과 ‘꽃뱀 매도 그만’의 두 진영으로 나뉘어 누구보다 치열한 설전을 벌였고, 그 몰입감은 실로 대단했다. 대전의 한 곰탕집에서 일어난 성추행 사건이 그 시작이었다.
2017년 11월 26일 새벽 대전 유성의 한 곰탕집에서 A씨의 남편 최씨는 모임을 마친 뒤 일행을 배웅하던 중 옆을 지나치던 여성 B씨의 엉덩이를 움켜잡은 혐의(강제추행)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에 양측 일행간에 큰 시비가 붙었다. 이들은 서로 전혀 모르는 사이였다.
B씨는 당일 이뤄진 경찰 피해자 조사에서 “남성이 손으로 오른쪽 엉덩이 부위를 밑에서 위쪽으로 움켜잡았다. 제가 바로 돌아서서 항의했으나 남성이 추행 사실을 부인했고 결국 양측 일행 사이에 다툼이 발생했다”고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반면 최씨는 당일 모임에서 폭탄주 15잔을 마셨다고 밝히며 “신발을 신는 과정에서 해당 여성과 어깨만 부딪혔다. 이때 여성이 ‘왜 부딪히냐’고 해 죄송하다고 말한 것이 전부”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5일 후 그의 진술은 완전히 달라졌다. 식당 내부에 설치된 CCTV에 B씨가 근처에 있는 상황에서 최씨가 신발을 신는 모습이나, 어깨를 부딪히는 장면이 없었기 때문이다.
CCTV에는 B씨의 주장대로 뒤돌아서 있는 B씨 뒤편을 최씨가 지나가고, 그 직후 피해자가 최씨를 뒤쫓아가 항의하는 모습이 명확히 담겨 있었다. 최씨가 자신의 손을 순간적으로 A씨 쪽으로 향했다가 다시 모으는 듯한 모습도 포착됐다.
이에 최씨는 경찰 조사에서 “애초 신체접촉이 전혀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실수로 제 손이 여성 엉덩이를 스쳤을 수 있고, 이를 피해자가 착각했을 수도 있다”고 말을 바꿨다.
그는 진술을 바꾼 경위에 대해 “CCTV 영상을 보기 전에는 피해자와 신체접촉이 전혀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CCTV 영상을 보니 신체접촉을 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2018년 9월 5일, 1심은 B씨 진술의 일관성, 구체적이고 모순되는 지점이 없는 것을 들어 유죄를 인정했다. 특히 1심 재판부는 검찰의 구형량보다 무거운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최씨는 법정구속됐다.
그리고 1심 판결 다음날 최씨의 아내 A씨가 청와대 국민청원과 온라인 커뮤니티에 억울하다고 글을 쓰며 해당 사건이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최 씨의 편에 선 남성들은 곳곳에서 판결을 규탄하는 시위를 열기도 했다.
이렇듯 누리꾼들의 뜨거운 갑론을박이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옮겨가 격한 성 대결 양상으로까지 번지자 청와대는 ‘곰탕집 성추행’ 사건 청원과 관련 “청와대가 언급하는 것은 삼권분립 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답변을 냈다.
청와대 국민청원 담당인 정혜승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장은 그해 10월 12일 유튜브 라이브 ‘국민청원에 답합니다’를 통해 “해당 사건은 법원의 1심 선고 이후 피고인이 9월 6일 항소장을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2심 재판이 진행되는 사건에 대해 청와대가 언급하는 것은 삼권분립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점을 양해해주시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정 센터장은 이어 “온라인 공론장인 청원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낼 수 있으나, 사법부나 입법부 관련 사안은 청와대가 답변하기 어렵다”라며 “앞으로도 청원에 참여할 때, 이 부분은 감안해주기 바란다”고 했다.
같은 날 2심 재판부는 보석청구를 인용해 최씨를 석방했다. 이에 최씨는 법정구속된 지 38일 만에 풀려나 불구속 상태에서 2심 재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B씨도 지지않았다. 그는 2018년 9월 28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한 일은 당한 걸 당했다고 얘기한 것 뿐”이라며 “당하지 않았다면 어떤 이해관계도 없는, 처음 본 남자를 자비로 변호사까지 선임해 1년 가까이 재판해가며 성추행범으로 만들겠느냐”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2019년 4월 26일 부산지법 형사3부(남재현 부장판사)는 최씨의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강제추행의 정도가 무겁지 않다며 징역 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아울러 최씨에게 40시간 성폭력 치료 강의 수강, 160시간 사회봉사, 3년간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취업 제한도 명령했다. 2심의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은 1심에서 내린 ‘징역 6개월’보다 감형된 판결이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수사기관에서 법정에 이르기까지 피해 사실을 비합리적이거나 모순되지 않고 일관되게 진술하고 CCTV 영상을 보더라도 오른팔이 여성을 향하는 점 등을 볼 때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씨는 수사기관에서 어깨만 부딪혔고 신체 접촉 자체가 없었다고 했지만, CCTV를 본 후 ‘접촉이 있었을 수도 있겠다’고 말하는 등 진술 일관성이 없다”며 “최씨가 성추행을 하지 않았다고 진술한 증인도 사건 현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목격한 것은 아니어서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정신적 고통을 받았고, 피고인이 용서를 받지도 못해 엄히 처벌해야 마땅하나 형사처벌 전력이 없고 추행 정도가 중하지 않아 집행유예 등을 통한 교정이 타당하다”며 양형이유를 밝혔다.
당시 항소심 판결에 누리꾼들의 반응 또한 엇갈렸다. 한 누리꾼은 “애매한 비디오였다. 그렇다면 확실한 물증이 있는 국회의장은 분명 유죄가 나와야 할 것”, “증거가 불충분한데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유죄판결이 가능한가”, “전과자도 아닌 사람이 직장 상사랑 있는데 성추행한다는 것이 말이 되냐”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반면 “법원 판결을 존중해야 한다”고 반박한 다른 누리꾼들은 “피고인이 의도적으로 스친 것이 문제”, “피해 여성분 고생 많았다”, “피고인도 중간에 스쳤을 수 있다고 말한 것은 일부 인정한 것 아니냐”는 입장을 보였다.
사법부의 곰탕집 성추행 판결을 규탄하며 만들어진 온라인 카페 ‘당신의 가족과 당신의 삶을 지키기 위하여’(이하 당당위)에서도 당시 항소심 판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당당위’ 측은 “부족한 증거에도 ‘피해를 주장하는 자의 일관적인 진술이 거짓일 리 없다’는 편향적 관념에 의한 선고가 법치주의를 위협했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일부 카페 회원들도 “답답하다”, “시위를 다시 계획해야 하지 않나”라며 반발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최씨의 불복은 이어졌고 사건은 대법원으로 넘어갔다. 2019년 12월 12일 대법원 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최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공개된 CCTV에 따르면 최씨가 B씨를 성추행했다는 순간은 1초 남짓이다. 하지만 최씨와 B씨 사이의 접촉 장면은 신발장에 가려졌고, 진술의 일관성 유지 여부가 유무죄를 가르는 주요 판단 근거가 됐다.
대법원은 “피해자 진술이 비합리적이거나 진술 자체로 모순되는 부분이 없고 허위로 피고인에게 불리한 진술을 할 만한 동기나 이유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을 경우 그 진술의 신빙성을 특별한 이유 없이 함부로 배척해서는 안된다”는 기존 판례를 적용했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손으로 피해자의 엉덩이를 만짐으로써 강제추행했다는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 판단에 법리오해, 심리미진 등의 잘못이 없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2년에 걸친 끝에 ‘성추행’으로 최종 결론이 난 곰탕집 성추행 사건의 판결이다.[이데일리 이로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