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옛날이여"…자타공인 '에이스' 조사국, 인기 시들[BOK잡담]

by하상렬 기자
2023.08.31 05:00:00

'국가 발전 위해' 사명감은 옛말
업무량 늘어나는데…보수는 은행권 대비 낮아
인사 정책 변화 조짐, 대학 다변화·IT인력 확충
퇴사자에게 5년 이내 재입행 기회도

[이데일리 하상렬 기자] 자타공인 한국은행 ‘에이스’ 부서로 꼽히는 조사국을 둘러싼 행내 시선이 변화하는 분위기다. 과거 모두가 ‘가고 싶었던’ 조사국이 행내 ‘기피 부서’가 되고 있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진=이데일리DB
통화정책 운용에 있어 외부로부터의 독립성과 동등할 정도로 한은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경제전망’이다. 경제전망은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한은의 주요 역할 중 하나다. 한은은 1년에 4차례(2·5·8·11월) 수정경제전망을 통해 올해와 내년 경제성장률과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 등을 내놓는다. 기준금리 결정도 사실상 이같은 전망을 토대로 이뤄진다. 이에 따라 한은에서 경제전망을 담당하는 조사국은 행내 핵심 부서로 분류돼 왔고, 국장부터 조사역(5급)까지 모두가 인정하는 이른바 ‘에이스’로 채워졌다.

‘에이스 집합소’ 조사국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업무량이다. 최근 들어 일과 생활의 균형(워라밸)이 강조되면서 국가 발전을 위한 사명감만으로 근무했던 옛 분위기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는 평가다. “나라가 어려운데 우리가 더 일해야 하지 않겠냐”는 관리자급의 목소리는 직원들에게 와 닿지 않았다. 조사국 업무량은 행내에서도 손으로 꼽히는 수준이다. 야근이 잦아 초과업무 수당을 목적으로 한 외벌이 가구의 지원율만 높아졌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이창용 한은 총재가 중복 작업이나 관행·비효율적 업무를 줄이자는 취지로 추진한 ‘워크 다이어트’(Work Diet)에서도 조사국은 예외다. 조사국 업무량은 오히려 이 총재 부임 이후 더욱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과도한 업무량에 비해 시중 은행권 대비 상대적으로 낮은 보수는 ‘있던 사명감도 없게 만든다’는 평가다. 2018년까지만 해도 시중은행과 비슷했던 한은 평균임금은 5대 시중은행보다 낮아졌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작년 기준 한은 평균임금은 1억330만원으로 국민은행(1억2292만원), 신한은행(1억970만원), 우리은행(1억933만원), 하나은행(1억1935만원), 농협은행(1억604만원)보다 낮았다.



낮은 보수는 인재 유출로 이어졌다. 작년엔 조사국 과장이 한국투자증권으로 이직하는가 하면, 올해엔 한국경제학술상을 수상한 조사국 팀장이 대학 교수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

바뀐 분위기에 맞춰 최근 한은의 인사 정책은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이 즐비했던 과거와 달리 출신 대학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다양한 배경의 인재를 뽑겠다는 취지다. 올해 신입행원의 출신 대학은 총 22곳으로 작년(14곳)에 비해 다양성이 늘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IT 전문 인력 확충 흐름도 두드러진다. 올해 IT 계열 입사자 수는 9명에 달하며, 내년엔 20명을 충원할 예정이다. 한은은 최근 컴퓨터, IT, 정보보호, 소프트웨어,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의 전공 학위(석·박사 포함) 소지자를 우대하는 채용을 시행했고, 앞으로도 진행할 방침이다. 한은은 자체 IT인력을 확충해 통합 데이터 플랫폼, 회계결제시스템,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 관련 시스템 등을 구축·운영한다는 계획이다.

인력 유출 방지책으로 퇴직자에게 5년간 재입행의 문을 열어두는 정책도 시행됐다. 한은에서 6년 이상 근무한 직원들이 이직했을 때 만 5년 이내 복귀 의사를 밝힐 경우, 재입행할 수 있는 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