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기술25]눈앞에 펼쳐지는 ‘제2의 현실’…‘메타버스’의 무한확장
by김정유 기자
2022.10.18 00:50:10
美SF소설 ‘스노우 크래쉬’서 유래 ‘또 다른 현실’
‘포트나이트’서 유명가수 콘서트, 시장 본격화
XR기기 통해 실재감 ↑, 햅틱·볼류메트릭 기술도
창작자이자 소비자 개념, 블록체인과 접목도 기대
[이데일리 김정유 기자]
2020년 4월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신음하던 그때, 미국의 유명 힙합 뮤지션 트래비스 스콧은 자신의 신곡을 ‘이곳’에서 처음 공개했습니다. 수만명이 들어설 수 있는 미국 내 대규모 콘서트장? 아쉽게도 아닙니다. 트래비스 스콧이 선택한 장소는 바로 에픽게임즈의 게임 ‘포트나이트’ 였습니다.
‘게임 속에서 무슨 콘서트?’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트래비스 스콧의 ‘포트나이트’ 콘서트엔 무려 전 세계에서 1230만명이 동시 접속해 공연을 관람했습니다. 수만km 떨어져 있는 해외 팬들이 공간 제약 없이 ‘포트나이트’ 게임에만 접속하면 유명 스타의 콘서트를 방문할 수 있죠. 또한 이곳에서 스타의 의상과 이모트 등 다양한 아이템도 사용하며 교감도 합니다. ‘메타버스’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 2020년 4월 에픽게임즈의 게임 ‘포트나이트’ 속에서 열린 트래비스 스캇의 콘서트. 전 세계에서 1230만명이 동시 접속해 콘서트를 즐겼다. (사진=에픽게임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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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는 1992년 출간된 미국 닐 스티븐슨의 SF소설 ‘스노우 크래시’(Snow Crash) 속 가상세계 명칭인 메타버스에서 유래했습니다. 정확한 정의로 자리 잡은 건 없지만 일상과 경제활동이 현실과 분리된 것이 아닌, 현실의 연장 선상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개념이란 점에는 대다수 학계와 산업계가 동의하고 있죠. 별도의 분리된 가상 공간이 아닌, ‘또 다른 현실’이라는 개념에 더 가깝습니다.
가장 처음 메타버스로 주목받고 있는 분야는 게임입니다. 삼성증권 ‘메타버스, XR로 꽃피우다’ 보고서(2022년 발간)에 따르면 시장에 처음 메타버스란 개념이 구체적으로 자리잡은 건 서두에 언급한 ‘포트나이트’ 속 트래비스 스콧의 콘서트였습니다. 이후 ‘마인크래프트’(전 세계 누적 판매량 2억장), ‘로블록스’(월간 활성 이용자 수 1억5000만명), 등 다양한 게임들이 메타버스 플랫폼으로서 역할을 했죠.
게임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게임 플레이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소통할 수 있는 소셜 기능이 합쳐진 것으로 이는 가상세계에서 현실과 같은 문화·경제 활동 구현이 가능해집니다. 국내에선 네이버제트 ‘제페토’가 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제페토’는 누적 가입자 수가 무려 3억명을 넘어섰다고 하죠.
앞서 2007년 미국 미래가속화연구재단(ASF)가 분류한 메타버스의 유형은 크게 4가지였습니다. 증강현실, 라이프로깅(Life logging), 미러월드(Mirrored World), 가상세계 등입니다. 증강현실의 경우 현실에 판타지를 입힌 세계로 나이언틱의 게임 ‘포켓몬고’가 한 예가 될 수 있겠네요. 라이프로깅은 디지털 공간에서 자신의 일상을 타인과 공유하는 즉,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될 수 있겠습니다. 미러월드는 현실세계를 디지털 공간에 복제한 세계로 쉽게 보자면 ‘구글 맵’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가상세계는 다른 세계에서 타인들과 사회활동을 하는 세계, 예컨대 ‘로블록스’나 ‘포트나이트’로 이해하면 쉽습니다.
초기의 메타버스 경험은 주로 PC, 모바일, 콘솔 중심으로 이뤄졌지만, 최근엔 가상현실(VR) 기기의 대중화로 좀 더 실재감 있는 메타버스를 경험할 수 있게 됐습니다. 미국 메타(옛 페이스북)의 VR헤드셋 ‘오큘러스 퀘스트’가 대표적이죠. 머리에 쓰는 기기인 ‘헤드 마운트 디스플레이’(HMD) 형식입니다. 증강현실(AR) 글라스(안경)도 마찬가지로 메타버스 경험을 지원하는 핵심기기로 꼽힙니다. 애플과 구글 등이 최근 경쟁적으로 VR·AR 기기 개발에 나서고 있는 이유입니다.
2018년에 나온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레디 플레이 원’을 보면 미래 메타버스 세상이 잘 나타납니다. HMD를 쓰고 메타버스 속 촉각을 실제처럼 느낄 수 있는 VR 슈트, 글러브 등 모든 장비들이 등장하는데, 이 같은 영화 속 장면들은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VR·AR 기기는 물론, 최근엔 가상세계 속에서 물체를 만지면 진동을 느낄 수 있는 햅틱(촉각형) 기기들도 다양하게 개발 중입니다.
디지털 휴먼 기술도 대세로 떠오르고 있죠. 메타버스 내에서 나를 대신해 움직이는 아바타가 디지털 휴먼으로 탄생하는 것인데, 주로 게임 회사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 에픽게임즈는 물론 국내에서도 크래프톤, 스마일게이트, 넷마블 등이 경쟁적으로 버추얼 휴먼 기술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실물에 가까운 외관과 함께 인공지능(AI)을 통한 실시간 렌더링은 물론 실제 인물의 움직임, 위치 등을 360도 입체 영상으로 만들어내는 볼류매트릭 기술 등이 대표적입니다. 최근 SK텔레콤도 세계 최초로 볼류메트릭 기술을 통해 자사 메타버스 플랫폼 ‘이프랜드’에서 가상콘서트를 열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죠.
메타버스 속에선 누구나 소비자인 동시에 창작자가 됩니다. ‘로블록스’만 해도 200만명 이상의 이용자들이 게임을 만들고, 이중 35만명이 2020년 기준 3000억원의 수익을 올렸다고 합니다. 메타버스가 신(新) 직업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의미죠. 메타버스 전용 공연·전시 등의 제작자나 감독, 연기자가 나올 수 있겠고 메타버스 건축가, 스포츠 선수 등도 예상이 됩니다. 데이터, 개인정보 등이 플랫폼에 묶이는 게 아니라 개인이 소유하고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웹 3.0’과도 잘 맞아떨어집니다.
블록체인의 일종인 대체불가능토큰(NFT)과의 접목도 예상됩니다. 메타버스 이용자들이 만드는 콘텐츠에 희소성, 소유권을 부여할 수 있어서죠. 예컨대 메타버스 속 랜드(땅)을 구매할 때 NFT는 등기권리증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겁니다.
향후 국내에서 메타버스 산업은 큰 무리없이 성장할 수 있을까요. 결국 문제는 ‘규제’일 겁니다. 이제 막 세상에 인식되고 있는 메타버스는 앞서 규제가 만연한 ‘게임’과 함께 묶이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최근 국가데이터정책위원회(국가 데이터 정책 콘트롤타워)가 연내 게임물과 메타버스를 구분하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배포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또한 게임 속 재화를 현실 재화로 바꿀 수 있는 ‘P2E’(Play to earn) 게임도 뜨거운 주제인데요. 국내에선 현행법상 서비스가 불가능해서 최근 P2E게임에 대한 규제 완화 목소리도 커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최근 메타가 서울대와 혼합현실(XR) 기술 및 메타버스 연구가 가능한 ‘XR 익스피리언스 센터’를 한국에 개소하는 등 글로벌 기업들의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점차 구체화되는 메타버스 세상, 어떻게 ‘제2의 현실’이 우리 삶에 자리잡게 될지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