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GO를 찾아서]우리가 'K-할머니'에 열광하는 이유
by김민정 기자
2021.05.08 00:05:00
액티브 시니어에 빠진 2030세대..쿨한 할머니에 열광
"솔직담백한 입담에 진정성 느껴"
광고·예능·유튜브까지 인기 몰이 중
[이데일리 김민정 기자] 현재 전 세계가 ‘K-할머니’ 열풍에 빠졌다.
지난달 26일 제93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윤여정이 한국배우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면서부터일까. 최근 70대 노인들이 MZ세대(1980~2000년대 출생 세대) 못지않게 왕성한 활동으로 보는 이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K-할머니라고 불리는 70~80대 한국 할머니들은 일제강점기 후반부터 한국전쟁을 포함해 한국의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끌어안은 세대다. 동시에 자녀들을 무작정 끌어안고 무한한 애정을 쏟으며 내리사랑을 실천한 세대다.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K-할머니의 매력은 무엇일까.
영화 ‘미나리’로 전 세계를 홀린 배우 윤여정은 올해로 73세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경험이 묻어나는 통찰력에 유머를 곁들인 그의 수상소감은 현지에서도 큰 화제를 모으면서 연기뿐 아니라 말로도 세계를 사로잡았다.
이에 윤여정의 매력에 스며든다는 의미의 ‘윤며들다’라는 말도 나왔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윤여정의 어록’이라며 시상식 후 인터뷰 내용이 빠르게 공유되기도 했다.
K-할머니 열풍을 일으킨 건 윤여정뿐만 아니다. 유튜브 채널 ‘밀라논나’로 활동 중인 장명숙(69) 씨. 국내 최초 밀라노 유학생이었던 만큼 그의 패션 감각은 젊은 여성들에겐 닮고 싶은 ‘워너비’로도 꼽히며 구독자도 80만 명이 넘는다.
장 씨는 주로 패션 콘텐츠를 올리다 최근엔 ‘논나의 아지트’라는 고민 상담 코너를 만들기도 했다. 이 코너는 연륜이 묻어난 진실한 조언으로 공감을 얻고 있다.
여기에 유튜브 구독자 131만명을 보유한 박막례 할머니도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요리법, 드라마 리액션 영상 등은 매번 화제를 모은다. 박 할머니의 간장 비빔국수 조리법은 조회수가 508만 회를 넘어서기도 했다. SNS에서는 해당 조리법를 따라 하고 인증사진을 올리는 유행이 일기도 했다.
특히 박 할머니는 최근 동갑내기인 윤여정의 낭보가 전해진 후 직접 만든 미나리전을 들고 찍은 사진을 올리며 “나는 집에서 미나리전으로 축하했어요. 꽃길만 걸어요”라고 축전을 띄우기도 했다.
이처럼 ‘액티브 시니어’(활동적 장년)들은 재치 있는 입담과 진정성 있는 조언, 그리고 겸손함을 갖추고 세대 간 거리를 좁히고 있다.
그렇다면 유독 2030세대들이 K-할머니에 빠진 이유는 뭘까.
젊은 세대들은 이들이 특유의 입담과 연륜에서 묻어나오는 여유를 갖고 있으면서도 권위를 벗은 태도 등에 열광한다.
특히 이들의 진정성 있는 조언은 ‘꼰대’ 같지 않다는 게 2030의 의견이다. 대표적으로 “우리는 낡았고 매너리즘에 빠졌고 편견이 있다. 살아온 경험 때문에 많이 오염됐다. 이 나이에 편견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그런데 어른들이 젊은이들에게 ‘너희들이 뭘 알아?’라고 하면 안 된다”고 한 윤여정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이에 대해 대학생 A씨는 “나이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솔직한 태도가 좋다”며 “존경할만한 진짜 어른의 모습”이라고 했다.
실제 시니어 유튜버의 영상을 시청하는 이유에 대해 MZ세대들도 ‘순수하고 귀여운 모습’, ‘신선하고 재미있는 콘텐츠’ 등을 꼽기도 했다.
이렇게 K-할머니의 호감도가 높아지면서 광고업계에서도 이들을 반기는 분위기다.
윤여정은 1020세대들이 즐겨 찾는 쇼핑몰 ‘지그재그’의 모델로 등장해 “니들 마음대로 사세요”라고 일갈한다. 또 OB맥주 광고에선 “자신에게 솔직해지자”는 메시지를 전한다.
지금까지 쇼핑몰과 맥주 광고 등은 젊은 모델의 몫이었다. 때문에 윤여정이 등장한 건 파격에 가까웠다. 하지만 대중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시니어 모델이 주는 낯선 재미에 MZ세대가 푹 빠진 것이다. MZ새대의 소비 패턴은 부모 세대와 사뭇 다르다. 단순 상품력이나 유명 연예인의 이미지를 보고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재미와 새로움을 추구한다.
윤여정뿐만 아니라 MZ세대들이 즐겨 찾는 햇반컵반의 모델로는 80세 나문희 씨가 등장해 추리게임을 펼치고, 화장품(리더스 코스메틱) 광고에서도 80세 강부자 씨가 나서기도 했다.
최근 시니어 스타들이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면서 덩달아 ‘할매니얼’이라는 신조어도 나왔다. ‘할매니얼’은 ‘할머니’와 ‘밀레니얼 세대를’ 합한 신조어다.
때문에 수년째 유통가를 휩쓸고 있는 ‘할머니 신드롬’이 식품을 넘어 패션계에도 불고 있다.
화려한 꽃무늬가 자수된 블라우스나 카디건, 펑퍼짐하고 강렬한 색깔의 원피스나 긴 주름치마 등이 대표적이다.
실제 SNS에 ‘그래니룩’을 검색하면 2만 건이 넘는 게시물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니룩’은 할머니를 뜻하는 (Granny)와 패션 스타일을 의미하는 룩(look)을 붙인 신조어로, ‘할머니 같은 패션’을 의미한다.
특히 할매니얼 패션의 인기는 10,20대 소비자가 주로 이용하는 온라인 편집숍이나 SPA 브랜드에서도 두드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