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노벨 과학상 수상의 저력 "수십년 믿고 기다린 가미오칸데 '뚝심'"

by오희나 기자
2015.10.08 00:00:20

[이데일리 오희나 기자] “당신이 쓴 논문이 몇 편인지보다는 과학계에 내놓을 만한, 노벨상을 받을 만한 연구 업적이 무엇인지를 묻는 풍토로 바뀌어야 한다.”

일본이 올해 노벨상에서 과학상을 휩쓰는 모습을 보며 국내 과학자가 내뱉은 쓴소리다.

올해 노벨상에서 일본은 생리의학상에 이어 6일 물리학상을 연달아 수상하면서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금껏 노벨상 과학 분야에서 미국은 수상자를 246명 배출해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은 올해까지 21명을 배출해 2위인 영국(62명), 독일(48)에 이어 4위에 올랐다.

염한웅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는 “업계에서는 일본 과학자들 가운데 노벨상을 받을 만한 업적을 가진 사람이 20여명 이상 줄 서 있다고 보고 있다”며 “최근 20~30년동안 노벨상을 수상할만한 업적이 전세계적으로 몇 안되기 때문에 노벨상 수상 가능 업적은 정해져 있다. 연구 업적이 발표되고 나서 5년안에 판가름난다”고 설명했다.

특히 올해 노벨상 화학분야에서 유력한 후보로 꼽히는 제3세대 유전자가위인 ‘크리스퍼(CRISPR/cas9)’도 처음에는 일본 과학자가 발견했다.



크리스퍼가 처음 발견된 것은 1987년 일본 과학자 요시즈미 이시노(Yoshizumi Ishino)에 의해서다. 대장균에서 발견된 크리스퍼는 처음에는 기능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주기적으로 간격을 띄우고 분포하는 짧은 회문 구조의 반복 클러스터(CRISPR, Clustered Regulary Interspaced Short Palindromic Repeats)’라고 불렸으나 2002년부터 공식적으로 크리스퍼라는 명칭이 붙였다.

만일 크리스퍼가 올해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다면 처음 발견했던 일본 과학자는 공동으로 수상하게 될 가능성도 크다.

염 교수는 “일본 과학자들이 연구를 할때 가장 기본으로 생각하는 부분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하는 것인가다”라며 “미국에서 하고 있는 연구를 한다면 연구비를 주지 않는다. 완전히 새로운 분야를 연구하도록 독려한다”고 말했다.

그는 “반면 한국은 외국에서 유망하다고 각광받는 분야를 연구하려는 경향이 크다”며 “이는 거꾸로 얘기하면 이미 누군가가 그 분야를 개척했고 유망하다고 알려진, 이제 더이상 유망하지 않은 연구라는 소리”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일본 정부는 1983년 ‘가미오칸데’를 폐광에 건설할 때와 1995년 ‘수퍼 가미오칸데’를 건설할때 각각 1000억원 가량을 투입했다. 아무도 개척하지 않은 분야에 1980년대부터 수천억원을 투입하고 연구 성과가 나올때까지 몇 십년을 두고 기다려준 결과가 노벨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결국 가미오칸데 연구성과를 냈던 고시바 마사토시 도쿄대 교수는 2002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고, 수퍼 가미오칸데에서 실험했던 가지타 교수는 올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과학계 관계자는 “동경대나 하버드대 등 세계적인 대학에서는 테니어(tenure: 종신 재직권)를 줄 때 논문수가 몇편인지 묻지 않는다. 연구업적을 통해 새로 개척된 분야가 있는지 노벨상을 받을 만한 업적인지를 묻는다”면서 “하지만 국내 현실은 아직까지 그러한 수준까지 올라서지 못했다. 그동안 국내 과학계가 양적인 부분에 치중했다면 이제는 질적인 부분에 중점을 둘 때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