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도년 기자
2011.10.27 09:00:00
대출 중도상환 수수료 등 약탈적 대출행태 개선 요구 커져
금융권 탐욕 논란속 금융당국은 물론 외부전문가도 공감대
[이데일리 김도년 기자] 최근 월가 점령시위와 함께 국내 금융권의 탐욕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국내 은행들의 ‘약탈적 대출(predatory lending)’ 행태를 규제해야 한다는 지적이 금융당국 내부에서 제기되고 있어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당국 내부에선 대출 중도상환 수수료를 완전히 폐지하고, 궁극적으로는 만기 일시상환 대출을 아예 없애는 등 미국식의 강도 높은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도입할 필요하고 있다며 현실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약탈적 대출’이란 금융회사가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고객에게 무리하게 대출을 해준 뒤 높은 이자와 비싼 연체료를 챙기고, 빚을 갚지 못하면 담보물을 갈취하는 대출행태를 말한다.
금융위원회 고위관계자는 20일 “가계부채 종합대책에 따라 은행권에 대해 장기 고정금리·비거치식·분할상환 대출의 비중을 단계적으로 늘리도록 지도하고 있다”며 “하지만 중장기적으론 만기 일시상환 대출을 없애는 등 강력한 미국식 규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금융위의 다른 관계자도 “시장 충격을 감안할 때 당장 시행하긴 어렵겠지만 정부도 미국과 비슷한 수준의 주택담보대출 규제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의 주택담보대출 구조는 상환기간이 짧은데다 만기 일시상환 대출의 비중이 크게 높아 집값 하락 등 외부충격에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올 상반기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의 일시상환 대출 비중은 40%에 이르고, 10년 이하 단기대출의 비중 역시 40%에 달한다. 대출을 중도상환할 경우 높은 수수료를 물리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히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상반기 기준 국내 가계부채 규모는 1050조원, 가구당 6042만원으로 사상 최대 수준이다.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중도 지난 2000년 81%에서 올 상반기엔 137%로 껑충 뛰어올랐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기 직전인 2007년 당시 미국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중이 141%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게 금융당국의 시각이다.
주택담보대출의 거품 붕괴로 여러 차례 위기를 경험한 적이 있는 미국은 지난 94년 ‘주택 소유권 및 자산 보호법(HOEPA·Home Ownership and Equity Protection Act)’을 만들어 금융회사에 대한 강력한 규제장치를 마련해두고 있다.
이 법안은 주택담보대출을 조기에 상환할 때 은행의 수수료 부과를 금지하고 있으며, 만기 일시상환 대출은 아예 취급하지 못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대출자의 상환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대출 역시 ‘약탈적 대출’로 규정해 금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비슷한 내용의 법안이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박선숙 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주택을 담보로하는 과잉대출의 규제에 관한 법률안’은 만기 전에 대출을 상환했다는 이유로 제재금을 부과할 수 없도록 하고, 만기 일시상환도 요구할 수 없도록 정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물론 외부 전문가들도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정책 패러다임의 큰 틀을 점진적으로 바꿔나가야 한다는데 공감대를 표시하고 있다.
전성인(경제학) 홍익대 교수는 “‘약탈적 대출’을 막기 위해선 금융회사들이 운용 능력이 안되는 사람에게 상품을 판매할 수 없도록 하는 이른바 ‘적합성의 원칙’을 지키도록 하는 게 핵심”이라면서 “이를 어겼을 때는 마땅히 권리구제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