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정해근 기자
2006.05.05 09:00:00
[이데일리 정해근 칼럼니스트] 어제는 돌풍처럼 봄바람이 불었습니다.
햇볕이 따사로운 빈 밭 언저리며 야트막한 산언덕에서 파릇하게 돋아오는 봄나물을 캐내는 아낙네들의 통치맛자락을 때로는 은근슬쩍, 때로는 휘다닥 뒤집어 대는 것이 본시 봄바람일텐데도, 요즘 봄바람은 시대가 바뀐 탓인지 사뭇 거센 것 같습니다. 하긴 봄바람이란 것이 원래부터 언 땅에서 녹아오르는 물기운의 차이에 따라 방향도 없고 세기도 일정치 않아 봄날 미친년 널뛰듯 하는 것이었지만 어제 거리를 불어대던 바람은 봄처녀 가슴을 설레이던 그런 봄바람은 아니었습니다.
요즘 국제시장을 보면 자꾸만 심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930원대에 와 있는 달러/원 율이 그렇고, 이제는 훌쩍 70달러 선을 넘어 100달러를 공공연히 떠들어 대는 유가가 그렇고, 엔화며 유로화의 강세 분위기와 함께 미국시장에서 고금리, 인플레이션이란 용어가 갑작스레 많이 사용되는 것도 우리를 불안하게 합니다.
더군다나 볼리비아의 석유시설 국유화 조치며 원유재고량의 급등락이 발표되면서 하루에 2~3불이나 등락을 거듭하는 국제유가는 이제 자동차용 휘발유값 앙등에 따른 불안을 넘어 우리나라 전체의 성장잠재력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국제적인 귀금속을 포함한 원자재 가격의 속등뿐 아니라 이미 오를대로 올라 있으면서도 끝갈데를 가늠하기 어려운 부동산 가격의 거품문제 등은 결국 하나의 주제로 모아지는 것 같습니다. 바로 `달러화의 약세`라는 것입니다.
이미 1970년대와 80년대를 겪어오면서 미국 무역수지의 불균형을 환율조정으로 풀어보려했던 플라자합의의 역사가 그렇게 시작되었듯이 쌍둥이적자에 대한 해결방안도 궁극적으로는 인플레이션과 환율하락을 통한 달러의 실질가치를 낮추는 전략으로 귀결됩니다.
어제 발표된 미국의 서비스업수지와 공장주문지수의 호조는 인플레이션 우려가 짙어지며 FRB의 추가적인 금리인상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로권의 견조한 경제상황과 풍성한 오일머니의 달러 이외 통화로의 포트폴리오 재조정 문제는 세계경제의 견조한 성장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달러가치의 지속적인 하락을 예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시급한 우리 문제로는 달러/원 환율의 향방이자 환율정책에 대한 가측성임에도 달러/원 환율은 깜깜한 한밤중을 걷는 것 같습니다. 이미 너무 무거운 외환보유고와 함께 국내기관들의 외환조절능력이 외국투자자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떨어지면서 외환시장의 변동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별다른 상황변화가 없는 한 1000원대의 환율이란 어느 한순간의 역사적 수치로 치부해야할지도 모를 것입니다.
봄바람이 심하게 붑니다. 외환시장에도, 주식시장에도, 국제 원유시장에도, 원자재 시장에도 사뭇 거세게 방향도 모르는 바람이 불어닥칩니다. 온세상을 흔드는 태풍까지로야 커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면서도 동시에 아가씨 치맛자락 밑으로 살랑살랑 불어오는 상긋한 봄내음을 담뿍 담은 그런 봄바람이 그리워집니다. 외환시장에도 국제금융시장에도 원유시장에도 그런 봄냄새 물씬 나는 바람만 불어오면 참 좋겠습니다. (대우증권 트레이딩영업본부장/상무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