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大이동)⑤ 한·중·일의 대응
by강종구 기자
2005.04.04 07:05:25
세계 최대 외환보유가 부메랑되어 경제 위협
환율정책 일제히 변화 조짐
정부개입 후퇴, 민간자본 유출 유도
[edaily 강종구기자] 한국,일본,중국 등 동북아 3국의 환율정책에 대한 태도가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민간자본의 해외유출을 촉진하기 위한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동북아 3국의 행보는 한 방향을 향하고 있다. 미국의 금리인상과 달러화 약세에 대한 대응이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3국의 변화가 필연에 가까운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대미무역을 통해 누적된 경상수지 흑자와 과다논쟁으로까지 비화된 세계 최대의 외환보유액이 이제는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 경제를 위협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 외환보유액, 너무 많이 쌓았나
97년 외환위기이후 아시아 신흥시장국들은 아껴쓰고 저축하며 수출에 매진한 결과 엄청난 무역흑자를 쌓아나갔다. 또 위기당시 꼭 필요할 때 바닥났던 국가 비상금에 대한 아픈 기억으로 벌어들인 달러를 외환보유액으로 차곡 차곡 쌓아 나갔다.
지난해말 현재 일본, 중국, 대만, 한국은 나란히 세계 1~4위 외환보유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외환보유액의 확충은 아시아가 외환위기에서 벗어났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로 거론되지만 또 한편으로는 2002년 이후 지속된 달러약세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통화가 강세를 보이지 않는 근거가 되고 있다.
미국와 유로지역 국가들은 "아시아가 수출을 위해 환율을 조작하고 있다"고 비난하는가 하면 세계 투기자금들은 외환보유액을 좋은 먹잇감으로 여겨 군침을 삼키고 있다.
중국은 위안화 환율을 1달러당 8.27위안에서 고정시켜 놓고 유입되는 달러를 외환보유액으로 흡수했다. 미국 시각으로 보면 한국도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일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은 한국의 환율제도를 자유변동환율제가 아닌 관리변동환율제라고 칭하고 있다.
원화 환율은 지난해말 이후 급락했지만 외환위기 이후 수년동안 거의 횡보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수출로 번 달러를 국가가 거의 사들인 다음 미국 국공채 등을 주로 매입하는 식으로 다시 미국으로 돌려 보냈기 때문이다.
◇ 민간자본 유출 유도
그러던 아시아가 확실히 변했다. 일본은 지난해 3월 이후 외환시장 개입을 중단했고 95년부터 유지해 오던 예금전액 보장제도를 이달 1일부로 전면 폐지했다.
이는 국내자본의 해외유출을 유도해 엔화 강세 압력을 줄이겠다는 포석으로 이해되고 있다. 예금 전액보장제가 완전 폐지됨에 따라 일본 국내자본의 해외증권투자 등 자본유출이 보다 확대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광주 한국은행 국제국장은 환율이 1000원선을 위협하던 지난 3월초 "일본의 예금 전액보장제 폐지가 다가오면서 엔화 환율이 예전에 비해 훨씬 안정적이 됐다"며 "원화 환율도 다소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망했다.
중국도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중국 최초로 외환시장 조성자(마켓메이커)를 지난달말 외국은행 7곳, 국내은행 2곳으로 선정했고 그에 앞서 중국 기업들의 외화소지 한도를 높이고 중국 시중은행들이 투자할 수 있는 외화투자상품의 범위를 확대했다.
조중재 굿모닝신한 수석연구원은 "중국은 환율제도면으로만 보면 고정환율제에서 변동환율제로 넘어갈 수 있는 조치들을 거의 다 취했다고 볼 수 있다"며 "사실상 정치적인 선택이 남아 있을 뿐"이라고 평가했다.
우리나라 역시 해외증권투자 확대를 유도하기로 하는 등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보험사의 해외투자한도를 늘리고 해외부동산투자를 완화할 방침이다.
재미있는 것은 한중일 3국의 공적연금들이 일제히 해외투자 확대에 나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2003년까지 거의 없다시피 했던 우리나라 국민연금기금의 해외채권 투자액은 지난해 4조원으로 급증했다. 국민연금이 `제2의 외환보유액`을 표방하며 미국 국채 5년물을 집중적으로 사들였고 올해는 한도를 더 늘렸다.
단일펀드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일본의 정부연금투자펀드(GPIF)는 현재 12조6000억엔(약 120조원)인 해외투자규모를 2009년초까지 두배인 25조5000억엔으로 대폭 확대할 방침이다. 이 연금펀드는 특히 아예 환율변동위험을 전혀 헤지(hedge)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중국정부는 지난 2월 후생기금(한국의 국민연금격)을 비롯한 주요 연기금들의 해외투자방안을 승인해 자국내 연금의 해외채권 매입 발판을 마련했다.
아시아 3국의 이같은 움직임은 환율하락 압력을 공식 외환보유액이 아닌 연금을 통해 조절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김우찬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국민연금기금의 해외투자는 최근의 급격한 원화가치 상승세를 둔화시킬 수 있다. 해외자산을 취득하려면 필히 외환시장에서 달러화 매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며 "외환당국의 외환시장개입 비용을 줄여주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 `공식` 환율개입의 후퇴 신호?..민간자본서 절상압력 `김빼기`
지난달 전세계를 강타한 이른바 `한국은행(BOK)쇼크`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국내 증권사 한 애널리스트는 "미국 국채를 무리하게 사들여 금리를 억지로 끌어내리지 않겠다는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준 의장에 대한 약속"이라고 말했다.
그린스펀 의장이 의회 증언에서 "금리를 올리는데 장기금리가 낮은 것은 수수께끼"라고 한 말은 아시아 국가들이 미국 국채를 사는 바람에 금리인상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경고`였고 통화다변화는 그에 대한 아시아의 메아리라는 설명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BOK쇼크 이후 일본은 고이즈미 총리가 직접 나서 "투자다변화가 필요하다"고 언급했고 중국도 최근 "외환보유액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달러약세 압력이 아시아 신흥시장국에 집중되고 있는 마당에 더 이상 외환보유액을 통한 환율방어는 국제적인 비난의 빌미가 될 수 있다"며 "외환보유액을 통한 개입의 후퇴신호로 받아들여진다"고 덧붙였다.
한 외국계증권사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을 비롯한 3국 중앙은행들이 외환시장개입에서 확실히 후퇴하고 있다"며 "특히 장기간 개입중단을 하고 있는 일본과 고정환율제를 고수하고 있는 중국보다 최근까지도 강력한 시장개입을 해왔던 한국의 변화는 충격적이다"고까지 지적했다.
최근 외환보유액과 관련된 고위 당국자들의 발언은 이같은 해석을 설득력 있게 들리게 한다. 지난달 31일 이해찬 총리는 "외환보유액은 연말 2200억~2300억달러나 돼 적정 외환보유액보다 300억~500억 달러 많게 된다"며 "원화가 절상된 것 자체는 우리 경쟁력이 그만큼 강해진 것이고 겸허하게 받아들여야한다"고 말했다. 또 "97년 외환위기때는 국민소득 1만달러를 유지하기 위해 800원을 고수하다가 충격이 왔다"고 강조했다.
한덕수 경제부총리 역시 "외환보유액이 과다하다"고 지적했고 심지어 이성태 한은 부총재도 가세했다. 이부총재는 "우리나라의 적정 외환보유액 수준을 명확히 말하거나 판단할 순 없지만, 적정 수준을 넘어섰다는 확신이 선다면 초과분에 대해서는 수익률 제고 차원에서 국제 금융시장을 통해 공격적으로 운용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중국이 위안화를 절상했을 경우나 미국 달러화가 달러가 약세에서 강세로 돌아섰을 경우 혹시라도 발생할지 모르는 급격한 자본 유출입에 대한 사전 대비책이란 해석도 나오고 있다. 대규모 자금이동이 금융불안으로 이어지기 전에 `바람빼기`에 나선 셈이라는 지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관심을 끄는 것이 이성태 부총재의 지난 28일 발언이다. 이 부총재는 이날 한 국제세미나 개회사에서 "동아시아지역 많은 나라들이 금융시장의 개방화와 세계화가 빠르게 진전되면서 97년 금융위기를 겪었다"며 "각고의 노력으로 위기를 극복했지만 외국자본의 유입과 유출 규모가 계속 확대되면서 환율, 주가, 금리 등 금융시장 가격변수의 변동성이 대폭 확대되고 있으며 이는 금융시장 가격변수를 통해 그 영향이 전파되는 통화정책의 효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외국자본의 대규모 유출입으로 금융불안이 발생할 수 있고 이 경우 통화정책으로 어찌할 도리가 별로 없다는 우려로 들린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한국의 경우 주식투자자금의 해외유출입 규모는 매년 몰라보게 커지는 추세다. 특히 주식투자자금의 90%이상이 직접투자가 아니라 단기차익을 노리는 증권투자자금이고 이중 환위험을 헤지하는 비율은 극히 낮다는 것이 한은의 관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