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정전)"불편은 있었지만 혼란은 없었다"(종합)

by정명수 기자
2003.08.16 03:17:03

[뉴욕=edaily 정명수특파원] ○… 뉴욕증권거래소와 나스닥 시장은 15일도 평소와 다름없이 오전 9시30분 개장해, 오후 4시 폐장한다고 밝혔지만, 맨하튼의 일부 금융기관들은 증권 매매를 하지 못했다. 전화, 인터넷 등 통신망에 문제가 발생, 주문이 제대로 나가지 않은 것. 키이프브루엣트앤우드의 존 더프 사장은 "뉴욕증권거래소 종목과 달리 나스닥 종목에 대해서는 주문이 들어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나스닥 관계자가 거래소와 각 기관을 연결하는 전화선에 문제가 있다고 말해줬다"고 전했다. 거래소 피트의 트레이더인 존 콜빈은 "트레이디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며 "많은 고객들이 맨하튼 사무실로 출근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날 뉴욕 주식시장의 거래량은 평소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일부 시장참가자들은 시장을 조기 폐장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옵션 만기 때문에 조기 폐장은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옵션 만기일이 아니었더라면 거래량이 더욱 줄어들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퀸즈 지역의 한 증권사에서 일하는 홀던 씨는 이날 아침 출근을 할 수 없었다. 통근 기차와 전철이 마비됐기 때문. 그는 전날 귀가시에도 엄청난 전쟁을 치뤄야했다. 홀던 씨는 "아침에 증권 거래가 정상적으로 이뤄진다는 소식에 크게 놀랐다"며 "아무도 자신이 출근하지 않은 것을 개의치 않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전 내내 고객들의 전화에 시달려야했다"고 말했다. ○… 월가의 전문가들은 이번 거래가 미국 경제와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고심하고 있다. 메릴린치의 수석 전략가인 리차드 번스타인은 발전기 판매량을 주목해야한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정전 시간이 단기간에 그쳤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소비심리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홈디포나 로우스 등에서 팔리는 간이 발전기의 판매량을 보면 소비심리의 변화를 측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발전기 판매량이 늘어난다는 것은 소비자들이 전력 인프라를 믿음직스럽지 않게 생각한다는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소비성향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 정전 사고는 경제 일정에도 심각한 차질을 일으켰다. 아멕스(AMEX)는 전력 공급의 문제로 개장시간을 제때에 맞추지 못했고, 뉴욕상품거래소도 조기에 폐장했다. 채권시장 역시 오후 2시에 서둘러 거래를 마친다. 미시간 대학의 소비자심리지수 발표도 다음주 화요일로 연기됐다. ○… 이날 뉴욕증권거래소 개장식에는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이 나와 직접 오픈닝 벨을 울렸다. 블룸버그 시장은 "오늘 중으로 전력 공급이 정상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블룸버그 시장이 소유한 경제 통신사 블룸버그의 케이블 TV인 블룸버그 뉴스는 파행 방송을 계속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뉴욕 스튜디오의 기능이 마비된 듯 유럽과 워싱턴의 앵커들이 나와 방송을 하고 있다. 개장 전후와 장중 거래소 피트에서 생방송으로 시황을 전하는 코너도 생략됐다. ○…블룸버그 시장은 이날 8시쯤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밤 3000여명의 소방대원이 철야 근무를 했으며 60건의 심각한 화재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화재는 촛불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8000건의 911전화가 쇄도했고, 800건의 엘리베이터 사고가 접수됐다. 1만명의 경찰병력이 뉴욕시 주요 도로와 거점에서 교통정리 및 치안유지에 총력을 기울였다. 약탈행위로 뉴욕 경찰에 체포된 인원은 28명에 불과했다. 정전으로 에어컨디셔너를 작동할 수 없게 된 호텔에서는 투숙객들이 밖에 나와 노숙을 해야했으며 전철과 기차, 페리 등의 운행이 정지돼 수천명의 통근자들이 걸어서 다리를 건너거나 맨하튼 시내에서 철야를 해야했다. ○…조지 파타키 뉴욕주지사는 "이번 사태는 폭설로 교통이 두절된 것과 비슷하다"며 "어디서, 왜 이같은 문제가 일어났는지 알 수 없지만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 일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뉴욕 시민들은 유례가 없는 정전 사태와 교통 대란을 맞아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이는 지난 겨울 엄청난 폭설로 대중 교통이 마비되는 일이 잦았기 때문에 정전으로 전철과 기차가 멈춘 것에 대해서도 크게 당황하지 않은 것. ○… 전력 공급이 재개된 15일 새벽 이후에도 뉴욕 맨하튼을 오가는 통근열차는 운행되지 않고 있다. 각 금융기관의 직원들도 제때에 출근하지 못했다. 맨하튼과 롱아일랜드 서폭 카운티, 낫소 카운티를 연결하는 롱아일랜드레일로드(LIRR)는 전력 공급후 운행 제개까지 6시간 이상이 소요될 것이라고 밝혔다. 뉴욕 증권거래의 중심인 맨하튼의 교통 상황도 좋지 않다. 버스 운행이 지연되고 지하철은 아직도 운행이 중단된 상태다. ○… 14일 전력 공급이 중단된 것은 주식시장 마감 벨이 울리고 10여분이 지난 직후였다. 전화와 핸드폰, 인터넷 등 일체의 통신망이 마비됐다. 퇴근시간이 임박했기 때문에 파장이 더욱 컸다. 기차, 지하철, 페리 등 공공 교통이 일제히 정지됐다. 도로의 신호등 시스템도 마비돼 교통사고의 위험이 높았다. TV 방송을 들을 수 없는 시민들은 라디오에 의지해 정전이 지엽적인 문제가 아닌 미 동북부 지역 전체의 문제라는 사실을 전해들었다. 경찰들이 주요 교차로에서 수신호로 교통 통제를 시작했고, 운전자들은 침착하게 이에 따랐다. ○… 기자가 살고 있는 롱아일랜드 지역도 정전으로 일체의 통신수단이 차단됐다. 핸드폰으로 연락을 취했지만, 통신 상태가 고르지 않았다. 사태가 장기화될 것을 대비해 인근 대형 슈퍼에 초와 식료품을 사기 위해 차를 몰고 나갔다. 이 슈퍼마켓은 자체 발전기로 전력을 공급, 냉장설비 등을 가동하고 있었다. 슈퍼를 찾는 사람들이 평소보다 많았지만 혼란은 전혀 없었다. 건전지 수요가 많을 것을 대비해 슈퍼측에서는 건전지 재고를 진열해놨고, 양초 판매대도 사람들이 붐볐다. 슈퍼 주변의 주유소는 영업을 중단한 상태였다. 연료가 떨어진 차들이 어디서 주유를 할 수 있는지 물었지만 주유소 직원들도 제대로 안내를 하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이었지만 혼란을 없었으며, 신속하게 배치된 경찰들이 교통상황을 적절하게 통제했다. ○… 미국의 일부 아파트에서는 연료로 전기 랜지를 사용하도록 돼 있다. 정전 사태로 전기 랜지를 쓸 수 없게 된 시민들은 야외에서 요리할 수 있는 바베큐 그릴로 저녁을 준비했다. TV 방송을 들을 수 없게 되자 뉴욕 시민들은 대부분 라디오에 의지해 외부 상황을 전해 들었다. 라디오의 DJ들은 사상 최악의 정전 사태을 맞아 침착하게 긴급 방송을 진행했다. 교통 대란속에 어둠이 짙어졌지만, 약탈, 방화 등의 소식은 없었다. 일부 라디오 방송에서는 "TV도 없고, 전자 게임기도 없으니 가족간에 진솔한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이라며 분위기를 북돋우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이날 뉴욕 일대는 며칠째 흐린 날씨가 오랜만에 맑게 게인 상태였고, 달빛도 밝아 꺼진 가로등을 대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