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돌린 모친 급습…안방서 일어난 ‘모자 살인사건’ 전말은[그해 오늘]
by이로원 기자
2024.06.20 00:00:08
생계 이끌던 모친 흉기로 살해한 아들
유서까지 썼으나 극단적 선택 실패
母 허리 통증·치매 등으로 일 못하게 되자 범행
2심, 징역 15년 불복 항소 기각
[이데일리 이로원 기자] 2022년 6월 20일 오후 11시 55분께 부산 서구의 주거지 안방에서 A씨는 자신의 치매 노모를 목 졸라 살해하려 했다. 화장대 서랍에서 물건을 찾기 위해 등을 돌려 앉아있던 어머니의 뒤를 급습한 것이다. 어머니가 거세게 저항하자 그는 흉기를 꺼내 가슴 부위를 여러 차례 찔렀고, 어머니는 끝내 아들의 손에 살해됐다.
A씨는 2008년 부친이 사망하고 2010년 스스로 공무원을 그만둔 이후 어머니(67)와 단둘이 생활했다. 그는 퇴직 이후 사업, 목사, 공무원 등 이것저것을 준비했으나 무엇 하나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수입이 전혀 없었다.
장성한 아들이 방황하는 동안 생계는 오롯이 어머니의 몫이었다. 식당 주방 일이나 액세서리를 파는 작은 장사 따위를 도맡아 하며 아들을 대신해 생계를 이끌어 나갔다. 그렇게 어머니가 벌어 온 200만 원 안팎의 수입이 이들 모자의 수입 전부였다.
그러던 2018년, 어머니가 허리 통증으로 일을 못 하게 되자 두 사람의 경제적 사정은 매우 악화됐다. 모자는 더 작은 집으로 옮겨 보증금 차액으로 겨우 생계를 이어 나갔다. 어머니는 일을 그만둔 무렵부터 치매 증상을 보였다. 지난해 초부터는 아들을 잘 알아보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고, 혼자서 가스 불을 끄지 못하는 등 보호자 없이는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척추질환에 이어 녹내장까지 덮쳐 몸과 마음이 모두 쇠약해졌다.
A씨는 경제적으로 궁핍한 상태에서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를 혼자 둘 수 없다는 이유로 구직활동조차 시도할 수 없게 됐다. 그러자 A씨는 어머니와 함께 생을 마감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10년 넘게 별다른 직업이 없었던 아들을 위해 식당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았던 어머니는 끝내 아들의 손에 생을 마감해야만 했다. A씨는 유서를 준비해 놓고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결국 재판대에 서게 됐다. A씨는 존속살해 혐의로 기소돼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1심 재판부는 “자신을 낳고 길러 준 어머니의 생명을 앗아갔다는 점에서 용납되거나 용서받을 수 없는 반사회적 범죄”라며 “A씨는 주변 친인척이나 사회복지시설 등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다른 방법을 강구하지 않은 채 범행을 저질러 비난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혔다.
다만 “피고인은 이 사건 범행을 모두 자백하면서 자기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있고, 어머니의 사망으로 큰 상실감을 겪는 것으로 보인다”며 “가족들이 피고인의 선처를 탄원한다”며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이에 A씨는 양형이 부당하다며 항소했다. 하지만 치매와 지병으로 일상 생활이 어려워진 60대 노모를 흉기로 살해한 아들의 항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부산고법 형사2부(부장판사 최환)는 A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A씨가 주장하는 양형 부당 사유는 1심 양형 과정에서 충분히 고려한 사정들”이라며 “피해자의 치료·보호를 위해 다른 방법을 시도하지 않은 사정이나 나름의 노력, 어머니와의 정서적 유대감 등을 고려해도 양형을 변경할 새로운 사정이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