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24시]한-쿠바 수교가 북한에 주는 함의

by윤정훈 기자
2024.02.26 05:00:00

韓 발전모델 관심 큰 쿠바
이념보다 실리 선택
4대 세습 준비하는 북한
자력갱생 기반한 폐쇄 유지
정상국가 되려면 전향적 자세를
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 전 통일연구원장

대한민국이 북한의 ‘사회주의 형제국’ 쿠바와 수교했다. 쿠바는 1959년 피델 카스트로가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한 이후 반미·반제전선의 선봉에 서서 비동맹운동을 주도했던 나라로 이념적으로 북한과 가장 가까운 국가다. ‘제1의 적대국’, ‘불변의 주적’으로 규정한 대한민국이 쿠바와 수교함으로써 북한은 한-중 수교에 맞먹는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1월에 열린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반제자주를 절대불변하고도 일관한 제1국책”이라며 “사회주의나라들과의 관계발전을 우선과제로 내세우고, 나라의 대외관계영역을 확대하기 위한 사업에서 새로운 진전을 이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한민국을 주적으로 돌려놓고 반제공동노선을 강화하겠다는 김정은의 주장을 무색케 하는 한국과 쿠바의 수교에 충격을 받은 북한은 김여정 부부장 ‘개인명의’의 담화를 통해서 일본과 수교 의지를 내비쳤다.

피델 카스트로와 라울 카스트로 형제의 통치를 거쳐 3세대 지도자인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이 북한의 반발에도 한국과 수교를 단행한 것은 만성적인 경제난 때문일 것이다. 쿠바는반제·반미전선의 선봉에 서서 발전도상국에 불리한 국제질서를 바꿀 것을 주장했지만 여전히 저개발국에 머물고 있다. 비동맹운동을 함께 했던 인도, 인도네시아, 유고슬라비아 등은 자본주의 세계경제에 편입해 고도성장을 실현하고 있지만, 북한과 쿠바는 세계 최빈국의 상태에 머물고 있다.

미국과 소련 어느 진영에도 가담하지 않고 비동맹중립노선과 개발도상국에 불리한 국제무역구조를 바로잡자는 ‘신국제질서운동’과 ‘77그룹의 남남협조’ 움직임 등은 사회주의권 붕괴와 탈냉전으로 설득력을 잃어갔다. 그럼에도 북한은 ‘반제자주’를 내세우고 ‘우리식’ 사회주의체제를 유지하면서 자본주의 세계체제로의 편입을 거부하고 ‘자력갱생’ 노선을 유지하고 있다. 쿠바도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관광개방’을 본격화하는 등 변화의 움직임을 보였지만 미국의 제제까지 받고 있어 경제침체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수교의 배경은 한국의 경제성장 경험을 배워 오랜 침체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쿠바 지도부는 만성적인 경제난 해소를 위해서 낡은 이념보다는 실리 추구가 절실하다고 판단하고,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부상한 대한민국의 발전모델에 관심을 보인 것이다. 우리가 시리아, 코소보 등을 제외한 지구촌의 거의 모든 나라와 수교했지만 가장 가까운 북한과 적대관계를 유지하는 한 지속가능한 평화와 번영을 구가하기 어렵다. 따라서 한국과 쿠바의 수교를 북한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기 보다는 ‘글로벌 중추국가’로서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기여와 협력의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사회주의권인 제2세계가 사라지면서 지구를 글로벌 노스(북반부에 속한 중심부 선진국, 제1세계)와 글로벌 사우스(남반부에 소재하는 저개발국, 구 제3세계와 비동맹권)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미중 전략경쟁을 하고 있는 중국이 ‘일대일로’ 등을 통해서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사우스는 공급망 재편과정에 많은 성장잠재력을 가진 미래의 땅으로 평가받고 있다. 공적원조와 개발지원을 통한 이 지역에 대한 한국의 영향력 확대는 ‘글로벌 중추외교’의 중요한 의제다.

이번 수교는 쿠바 지도부 교체에 따른 정책전환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쿠바에서의 지도부 교체는 더 이상 교조적 사회주의 이념에 얽매이지 않고 경제발전을 위한 정책전환을 추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3대 세습으로 이어진 북한이 4대 세습을 준비하면서 자력갱생을 고집하는 것은 선대 지도자를 비판하기 어려운 태생적 한계 때문이다. 최근 김정은이 보인 통일·대남 관련 정책전환은 정세를 악화시키고 인민생활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 역행이다. 북한이 원하는 북일 국교정상화가 이뤄지려면 납치문제, 핵·미사일문제에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는 등 국제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는 사상이론적 조정으로 ‘정상국가’의 면모를 갖춰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