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백했는데 왜 무죄일까…제주 변호사 피살사건, 다시 미궁[사사건건]
by한광범 기자
2023.01.15 03:32:33
대법, 무죄 취지 파기환송…"객관적 증거가 없다"
"설사 공모 인정해도 살인 아닌 상해치사가 맞다"
22년만의 범인검거 ''없던 일로''…전모 못 밝히나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사건 발생 22년 만인 2021년 용의자의 한국 송환으로 미제사건 해결의 기대감이 높았던 제주 변호사 피살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지난 12일 무죄 취지의 판결을 내리며 다시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지게 됐다.
제주 변호사 피살 사건은 1999년 11월 5일 새벽 시간 제주도 삼도동 한 도로에 주차돼 있던 승용차 안에서 검사 출신 이승용 변호사가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20년 넘게 미제로 남았던 사건은 전직 조폭 A씨가 공소시효가 만료됐다는 생각에 자신을 ‘공범’이라 한 언론에 제보하며 실마리가 풀리는 듯했다.
| 2021년 8월 강제송환되는 제주 변호사 피살사건 용의자 A씨.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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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시효가 남은 것을 확인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고, A씨(57)를 2021년 8월 한국으로 송환했다. 재판에 넘겨진 A씨는 1심에서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 유죄가 인정돼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대법원은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 취지로 파기하며 사건을 광주고법 제주재판부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언론 인터뷰서부터 검경 조사, 법정 진술에 이르기까지 오락가락한 A씨 주장 외엔 객관적 증거가 전혀 없다고 결론 냈다. 일단 A씨가 방송 인터뷰 등을 통해 밝혔던 공범 B씨 등과 관련된 진술이 수차례 번복되는 등 일관성이 없었을뿐더러 객관적 사실과도 맞지 않았다.
A씨가 가장 먼저 밝혔던 ‘자백’ 제보를 뒷받침할 증거가 전혀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이었다. 설사 제보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A씨에게 ‘살인 공범’이 아닌, 이미 공소시효가 끝난 ‘상해치사 공범’ 정도만 적용이 가능하다는 것이 대법원의 결론이었다.
A씨는 2019년 8월 후배를 통해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이 변호사 사망과 관련이 있다”는 제보를 했고, 두 달 후인 10월 전화통화와 캄보디아에서의 대면을 통해 담당 PD와 인터뷰를 진행했고, 다음과 같은 취지(이하 첫 번째 진술)로 말했다.
“1999년 여름께 유탁파 두목이던 C씨 전화를 받고 찾아가고, 지인과 만나고 있는 C씨와 단둘이 C씨 집에 간 후 피해자를 가장 믿을 수 있는 조직 동생과 함께 혼내주라는 지시를 받았다.”
“경비 명목으로 3000만원을 받았고 친구인 B씨와 상의해 범행을 준비를 했다. 미행 등을 통해 피해자 동선을 파악했다. 범행 당일 상해만 가하려고 했는데 B씨가 혼자 혼내주러 갔다가 피해자가 저항하는 과정에서 일이 잘못돼 피해자가 사망했다.”
“C씨에게 경비 명목으로 받은 현금 3000만원을 범행 이후 B씨에게 모두 줬다. 범행 이틀 후엔 도피 목적으로 B씨를 서울로 올려 보냈고, B씨는 이후 4~5년 간 제주도로 돌아오지 못했다.”
“B씨가 이후 죄책감에 괴로워했다. B씨가 자수할 것을 염려해 ‘절대 그 일에 대해선 어떤 생각도 가지면 안 된다. 네가 일부러 한 것도 우리가 일부러 한 것도 아니잖아. 시간도 다 되었고’라고 말해줬다. 하지만 B씨는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다 2014년 8월 자살했다.”
하지만 A씨가 처음 범행 지시자로 지목한 C씨는 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다. 1995년 11월부터 수감 생활을 한 C씨는 이 변호사 사망 이후인 1999년 11월 16일에야 출소했다. 또 도피시켰다는 B씨의 경우도 피살사건 이듬해 2000년 중반 제주도에서 행인에게 상해를 가한 혐의로 처벌을 받기도 했다.
담당 PD가 이후 C씨의 이 같은 수감기록을 언급하자, A씨는 첫 방송 이후 뒤늦게 “지시한 사람은 C씨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고 말을 바꿨다. 하지만 끝까지 지시를 한 ‘다른 사람’의 정체는 밝히지 않았다.
이후 A씨 진술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2020년 7월 중순 담당 PD와의 통화에서 “사실 직접 오더를 받은 것은 B씨며, 저는 B씨가 상의를 요청해 함께 의논만 했다”(이하 두 번째 진술)고 주장했다.
방송 이후 경찰이 재수사에 착수했고, A씨는 캄보디아 현지에서 돌연 자취를 감췄다. 경찰이 인터폴에 A씨에 대한 적색수배를 요청했고, 캄보디아 측은 2021년 6월 A씨를 검거했다. 이후 A씨는 두 달 후 한국으로 송환됐다.
| 1999년 11월 5일 발생한 제주 변호사 피살사건 현장에서 경찰들이 감식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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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 진술은 한국 송환 이후에도 오락가락을 반복했다. 경찰의 1~4회 조사에선 두 번째 진술을 유지하다가 5회 조사에선 “저와 B씨 모두 범행에 관여하지 않았고, 단지 방송에서 들은 얘기를 토대로 이야기한 소설”이라고 주장(이하 세 번째 진술)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조사부턴 다시 첫 번째 진술을 꺼내며 “범행 사주 윗선은 검찰에서 진술하겠다”고 말했다.
검찰 송치 이후에도 A씨의 오락가락 진술은 반복됐다. 그는 1~2회 조사에선 첫 번째 진술을 유지하면서도 윗선에 대해선 어떠한 진술도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바로 다음 조사에선 세 번째 진술을 폈다. 그다음부터는 또 두 번째 진술을 꺼내 들었다.
검찰은 결국 지시자가 누구인지 확인할 수 없다는 전제 하에 첫 번째 진술을 공소사실로 적시해 A씨에 대해 살인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재판에 넘겨진 A씨는 다음과 같은 새로운 주장(이하 네 번째 진술)을 폈다.
“B씨로부터 2011년 8월 피해자를 살해했다는 말을 들어 알게 된 것뿐이다. 범행을 모의하거나 가담하지 않았고, 인터뷰 내용은 들은 내용에 허위와 과장을 보탠 것이다.”
재판에서의 쟁점은 다른 진술이 아닌 첫 번째 진술을 근거로 A씨의 살인 혐의를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1999년 11월 범행으로서 애초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 대상에 포함되지 않을 뻔했지만, 공소시효 만료 이전 A씨가 해외 도피를 했던 사실이 드러나며 공소시효가 사라졌다. 실제 A씨가 범행에 가담했더라도 살인이 아닌 상해치사가 인정될 경우엔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 대상이 아니다.
1심은 “A씨 첫 진술이 전체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축소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객관적 증거가 부족한 상황에서 공범 B씨가 피해자를 죽일 의도를 가졌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A씨가 살인을 공모했다고 인정하기엔 무리가 따른다”며 A씨에 대해 살인 혐의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PD에 대한 협박 혐의는 유죄로 판단해 징역 1년 6월을 선고했다.
2심은 “A씨와 B씨가 상당기간 폭력단체 조직원으로 활동했고 다른 조직원이 흉기에 찔려 사망한 사건을 경험한 적이 있는 점 등을 감안하면 흉기 사용 범행의 경우 의도와 달리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며 살인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A씨의 살인 혐의를 입증할 객관적 증거가 부족하다며 협박 혐의는 유죄를 확정하고, 살인 혐의에 대해선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A씨 진술에 따른 범행시 주요 인물인 B씨, C씨가 이미 모두 사망한 사람으로서 제보 진술 신빙성 확인이 애초 불가능하고, 이들과 관련한 A씨 제보 진술에 부합하는 객관적 증거도 없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실제 지시를 받았다거나 돈을 받았다는 자체도 객관적 입증이 전혀 되지 않았다. 또 A씨가 뒷조사를 통해 알게 된 내용이라며 피해자를 ‘평소 운동을 즐기는 검도 유단자’라고 설명했던 것 역시 사실과 전혀 달랐다.
A씨가 첫 번째 제보에서 ‘죄책감으로 자살했다’는 B씨의 경우 실제 남긴 유서에는 변호사 피살 사건과 관련한 언급이 전혀 없고 평소 금전적 문제로 괴로워했다는 증언만 있었다.
대법원은 이처럼 A씨 첫 번째 진술의 구체성에 의문이 드는 상황에서, 설사 진술 신빙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B씨의 범행에 대한 객관적 증거 없이 상해치사가 아닌 살인의 공모를 A씨에게 적용할 수는 없다고 결론 냈다.
검찰이 파기환송심에서 결정적 유죄 증거를 확보하지 않는 한 A씨는 파기환송심에서 1심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미 유죄가 확정된 협박죄로만 양형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