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watch] '원 보이스' 강조하는 청와대의 '투 보이스'

by피용익 기자
2013.04.15 06:33:01

[이데일리 피용익 기자] 지난 11일 오후 9시38분. 삼청동에서 저녁자리에 있던 기자는 김행 대변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목소리는 다급했다. 이날 오후 4시에 있었던 류길재 통일부 장관의 성명 발표에 대한 해석이 달라졌다는 거였다.

성명 발표 직후만해도 류 장관과 김 대변인은 모두 “(정부가) 대화를 제의한 것이라기 보다는…”이라며 ‘원론적인 입장’임을 밝혔다. 하지만 불과 다섯시간만에 전화기 속 김 대변인은 “(정부가) 북한에 대화를 제의한 것”이라고 성명 내용을 재해석했다.

황급히 춘추관으로 복귀해 상황을 파악해보니 갑작스럽게 해석이 바뀐 건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 때문이었다. 박 대통령이 국회 외교통일위·국방위 소속 새누리당 의원들과 만찬을 함께한 자리에서 “북한과대화할 것”이라며 “북한과 대화의 일환으로 오늘 류 장관이 성명을 발표한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류 장관은 성명 발표 전 청와대와 문구 하나하나를 조율했는데도 박 대통령의 의중까지는 파악하지 못한 셈이다. 박 대통령의 ‘입’ 역할을 하는 김 대변인도 마찬가지다.



청와대는 지난달 11일 국가 안보와 관련해 ‘원 보이스(one voice)’ 방침을 분명히 했다. 개성공단 문제는 통일부에서 입장을 밝히고, 미사일 발사에 대해선 국방부가 설명하는 식이다. 여러 부처에서 통일되지 않은 목소리가 나갈 경우 정책 혼선이 발생하고 국민의 불안감이 높아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런데 류 장관의 성명과 관련해선 청와대와 정부가 스스로 ‘투 보이스’로 혼란을 일으켰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워졌다. 여기에 정홍원 국무총리마저 이튿날 “대화를 하자는 것은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고 말하면서 정부의 엇박자는 극에 달한 분위기다.

정부의 ‘원보이스’ 원칙이 어긋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8일에는 북한의 4차 핵실험 징후를 놓고 통일부와 국방부가 서로 딴 소리를 했다. 류 장관은 “그런(4차 핵실험을 감행할) 징후가 있다고만 말할 수 있다”고 밝힌 반면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현재 활동은 핵실험 징후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결국 류 장관은 자신의 발언을 뒤늦게 정정해야 했다.

청와대의 ‘원 보이스’ 방침에 언론은 적극 협조하고 있다. 국가 안보와 관련한 보도에는 국익을 위해 신중에 신중을 기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기사에서 ‘청와대 핵심 관계자’, ‘국방부 고위 관계자’ 등을 인용한 민감한 내용이 현저히 줄어든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의 엇박자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이러한 원칙이 지켜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