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日엘피다 인수 꺼리는 3가지 이유
by안승찬 기자
2012.04.13 07:40:04
1차 목표는 엘피다 실사.."기술 경쟁력 확인 필요"
공동인수 제안한 도시바, 진정성에 의문
제아무리 SK라지만, 또 대규모 베팅하기엔 일러
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4월 13일자 18면에 게재됐습니다. |
[이데일리 안승찬 기자] 세계 3위 D램 업체인 일본 엘피다 인수전에 뛰어든 SK하이닉스의 진의(眞意)가 오리무중이다.
SK하이닉스가 밝힌 공식 입장은 "실사 결과 시너지가 있고, 우호적 인수 조건이 달성된다면 인수 절차를 진행한다"는 것이다. SK하이닉스는 최근 엘피다에 실사단을 보냈다.
조건만 좋다면 최종 인수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의미지만, 달리 보면 인수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혼란스러움은 여기서 생긴다. SK하이닉스의 전략적 제스처인지, 최종 인수를 위한 드라이브인지 관전평이 제각각이다.
SK하이닉스가 이번 인수전에 뛰어든 첫번째 목적은 경쟁사의 실사 기회다. 12일 SK하이닉스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엘피다를 실사할 수 있는 이번 인수전에 들어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 2002년 하이닉스(000660) 매각 과정에서 미국의 마이크론 등이 입찰에 참여해 하이닉스를 샅샅이 살펴보고 떠났다. SK하이닉스는 경쟁사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게다가 엘피다는 일본 기업치고는 허세(虛勢)가 심하다. 지난해 엘피다는 "회로 선폭(간격)을 25나노미터(1나노미터=10억분의 1미터)까지 줄인 D램 반도체를 세계 최초로 양산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세계 1·2위 업체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뛰어넘는 수준이다.
"과장됐다"는 평가가 많지만, 본격적인 성장 전략을 짜고 있는 SK하이닉스는 엘피다가 가진 기술 경쟁력의 실체를 확인해 둘 필요가 있다.
| ▲ 최태원 SK 회장. SK하이닉스의 공동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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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피다 인수 후보군중 하나였던 도시바가 하이닉스에 엘피다 공동인수를 제안했다. 이 때문에 SK하이닉스가 도시바와 함께 엘피다를 실제로 인수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법 나온다.
하지만 도시바가 엘피다를 인수할 의지가 별로 없다는 시각도 있다. 도시바는 1차 입찰제안서를 냈지만, 숏리스트(예비후보군)에 들지 못했다. 도시바는 일본 정부가 희망했던 인수 후보군이다. 그만큼 도시바의 탈락은 이례적이다.
숏리스트는 인수 희망자의 입찰제안서를 보고 결정한다. 여기엔 인수 가격 등이 포함되지 않았다. 어지간하면 통과할 수 있는 절차다. 도시바의 입찰제안서는 1차 과정도 통과하지 못했을 만큼 부실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도시바는 자금 여력이 충분하지 않은 데다 차세대 반도체 쪽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엘피다가 가진 일반 D램과 모바일 D램에는 매력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의 눈치를 봐야 하는 도시바는 공동인수를 제안함으로써 "우리도 의지는 있다"는 신호를 보낼 수 있다. 경쟁사로 넘어가더라도 도시바는 마이크론보다 다양한 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 SK하이닉스와 손을 잡는 편이 유리하다.
SK하이닉스의 엘피다 인수 가능성을 크게 보는 쪽은 대부분 최태원 SK 회장에 주목한다. 최 회장은 현재 SK하이닉스의 공동대표이사다.
SK그룹은 M&A로 덩치를 키워 왔다. M&A 전문가도 많고 M&A의 경험과 노하우도 풍부하다. 게다가 SK그룹 계열사는 대부분 점유율 1위 회사다. M&A로 규모의 경제를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시너지를 창출하는 스타일을 추구한다.
SK하이닉스가 엘피다를 인수하면 SK하이닉스는 세계 D램 시장 점유율을 단숨에 23.7%에서 35.6%로 올릴 수 있다. 당장 삼성전자(43.2%)를 위협할 수 있는 수준이다. 특히 SK하이닉스가 관심이 있는 모바일 D램 쪽에 엘피다가 강하다. 엘피다의 모바일 D램 점유율은 17%에 달한다.
하지만 국내 사업 중심인 SK가 곧장 대규모 해외기업 인수에 나서기는 어려울 것이란 반론도 있다. SK가 하이닉스를 최종 인수한 게 지난 2월이다. 고작 2개월만 또다시 수조원 규모의 베팅을 하기에는 너무 공력이 짧다.
SK하이닉스에 정통한 관계자는 "최 회장이 반도체 분야에 대해 열심히 익히고 있지만, 하이닉스에 이어 엘피다까지 당장 인수할 정도로 자신감이 붙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추가 M&A에 나설 가능성은 있지만, 지금은 이른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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