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은 잡스를 지웠고, 삼성은 잡스를 따랐다

by안승찬 기자
2012.03.22 07:02:02

잡스는 배당 싫어했지만, 애플 17년만에 대규모 배당 결정
삼성은 11년만에 배당성향 10% 밑으로
3년째 배당 축소.."현금 더 쌓아 대규모 투자 대비"

[이데일리 안승찬 기자] 스티브 잡스는 유난스레 현금에 집착했다. 주주들의 배당에 요구에 잡스는 콧방귀만 뀌었다. 그가 애플에 복귀한 97년 이후부터 사망할 때까지 애플은 한번도 배당을 하지 않았다. 잡스는 "주주들에게 최고의 보상은 최고 제품과 높은 주가"라고 입이 닳도록 말했다.
 
잡스가 사망한 이후 애플의 최고경영자(CEO)로 올라선 팀 쿡이 17년 만에 대규모의 배당을 결정했다. 이를 두고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즈는 "쿡이 애플에 남아 있는 잡스의 흔적을 없애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만큼 잡스는 배당을 꺼리는 경영의 상징이었다.
 
엄청난 현금이 쌓인 애플이 배당 쪽으로 돌아섰지만, 삼성전자는 오히려 최근 3년간 배당을 크게 줄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규모 투자에 대비한 재원 마련으로 전략이 달라지고 있다. 삼성이 배당보다는 투자와 성장을 강조했던 잡스 쪽으로 더 기운 셈이다.

2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005930)는 지난 16일 정기주주총회에서 보통주 1주당 5000원의 현금배당을 결의했다. 이미 중간배당으로 지급했던 500원을 합치면 삼성전자의 2011회계연도 배당금은 총 5500원이다.


지난해 보통주 1주당 1만원의 현금배당을 지급했던 것과 비교하면 금액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특히 벌어들인 이익금에서 배당을 지급하는 비중을 보여주는 배당성향(현금배당금/주당순이익)은 8.2%에 불과했다. 100원을 벌었을 때 주주에게 지급하는 배당이 8.2원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삼성전자의 배당성향이 10% 미만으로 떨어진 것은 지난 2000년(8.5%) 이후 처음이다. 지난 10여년간 삼성전자는 벌어들인 이익금의 10% 이상을 꾸준히 배당해왔다.

최근 3년간은 삼성전자의 배당이 줄어드는 경향도 뚜렷하다. 삼성전자는 지난 2009년엔 19.09%의 배당성향을 보였지만, 2010년에는 11.31%로 낮췄고, 지난해 8.2%로 더 낮아졌다.

이는 국내외 경쟁사와는 차이를 보이는 행보다. 지난 17년간 한 번도 배당을 하지 않았던 애플은 오는 7월 분기 배당으로 1주당 2.65달러, 연간으로 1주당 10.6달러를 배당키로 했다.



애플의 올 회계연도(9월 결산법인) 예상 주당순이익이 43.55달러라는 점을 고려하면, 애플의 배당성향은 24.3%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LG전자(066570)의 경우도 오히려 배당을 늘리는 추세다. LG전자는 지난 2009년 배당성향은 11.8%였고, 2010년에는 13.8%로 배당 비중을 더 높였다. 지난해에는 1주당 1543원의 손실이 발생했음에도 최근 보통주 1주당 200원의 배당을 결정하기도 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설계와 디자인 중심의 애플과 달리 삼성전자는 반도체 등에 대규모 설비투자가 필요한 회사여서 원래 배당성향이 높지 않은 편"이라면서도 "단순 비교는 쉽지 않지만, 삼성전자가 추가적인 대규모 투자를 위해 배당을 줄이고 현금을 확보하는 전략을 취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올해 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에 나설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지난 1월 삼성전자는 올해 시설투자에만 지난해보다 2조원 늘어난 총 25조원을 집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건희 삼성 회장도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올해 오히려 투자를 줄여야 하지만, 더 적극적으로 투자하겠다"면서 과감한 투자집행을 예고했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는 보유 현금 규모를 지난 2010년 22조4800억원에서 지난해 말 26조8800억원으로 20%가량 늘려놓았다. 착실히 실탄을 쌓고 있다는 의미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배당을 많이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감한 투자를 통한 성장과 주가 상승 역시 주주 가치를 실현하는 또다른 방법"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