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공산당 90년]①中共, 가난 떨치고 中華로 서다

by윤도진 기자
2011.06.29 09:30:00

"黨 초기 60년..수퍼파워 중화경제의 초석"
GDP, 1978년 3645억위안→2010년 39조위안

중국 공산당이 오는 7월1일 창건 90주년을 맞는다. 평가는 각양각색이다. 하지만 당 지도부가 만들어낸 괄목할 경제 성장에 대해서는 대다수가 혀를 내두른다. 국가는 미국이 맞서기 힘겨워할 만큼 크고 강해졌다. 하지만 그 뒤켠에는 백만장자와 농민공 사이의 격차, 관직사회의 부정부패, 커져가는 환경문제가 있는 것이 공산당이 이끈 중국 경제의 현실이다. 이데일리는 중국 공산당 창건 90주년을 계기로 그 동안의 경제적 성과와 이면의 그림자, 그리고 향후 전망을 3편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주]

[상하이=이데일리 윤도진 특파원] 불과 얼마 전이다. 1992년 한중 수교 직후 중국을 찾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60~70년대에나 보던 모습"이라고 말했다. 포장이 벗겨진 길, 허름한 집, 궁색한 생활상이 중국 경제의 낙후성을 대변했다. 냉전시대 공산 진영을 이끈 소련보다 국력은 약하고 인민들은 헐벗었던 게 당시의 가난한 `중공`이었다.

20년이 채 안 지났다. 지난 1월 미국을 방문한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주석은 경기 부진에 시달리는 유수 미국 기업과 총 450억달러 규모의 `선심성` 계약을 내놨다. 외환보유액 세계 1위, 무역규모 세계 1위인 `슈퍼파워 중화(中華)`의 모습이 세계에 내보여진 순간이었다.
 

▲ 지난 1월 워싱턴을 국빈방문한 후진타오 중국 주석(오른쪽)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왼쪽). (사진: 신화망)



창당 90주년 홍보에 분주한 중국 공산당은 최근 외신 기자들을 대상으로 회견을 열고 공산당 역사를 크게 3단계로 나눠 설명했다.

1921년 창당에서부터 국민당을 내몰고 중화인민공화국을 건설한 1949년까지, 그 후 사회주의 체제를 확립하고 통치 체제를 다진 1978년까지, 그리고 개혁개방과 중국식 표현으로 `사회주의 시장경제` 초석을 세운 현재까지다.

리중제(李忠傑) 중앙당사연구실 부주임은 "개혁개방 이전 시기의 중국 공산당에 대해 외부에서는 박한 평가가 많지만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은 중국 공산당의 오늘을 있게 한 풍부한 경험"이라며 "이전 60년이 최근 30년 고속성장의 기반이 됐다"고 강조했다.

1958년 직군별로 집단노동 방식의 공산경제를 구축하려던 대약진운동, 극좌 계급주의 운동인 1960년대 문화대혁명 등은 공산당의 오류로 평가받는 대표적인 지점. 하지만 이 경험이 이후 덩샤오핑(鄧小平)의 실용노선인 `흑묘백묘론`, 기업가를 끌어안은 장쩌민(江澤民)의 `3개대표 사상` 등으로 이어졌다는 게 공산당의 설명이다.




▲ 1978년 이후 중국의 GDP 추이(자료: 중국 국가통계국, 한국은행 베이징사무소)
상하이 외교가의 한 중국통은 "비록 중국 공산당이 초기 경제적 지체를 낳았을 지는 몰라도 거대한 인구와 영역을 당의 통치 하에 두는 데 실패했다면 80년대 이후 급속한 경제 팽창과 국력의 신장은 없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실제 개혁개방 뒤 수치로 보여지는 경제 성과는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1978년 3645억위안이었던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2010년 39조7983억위안(5조8786억달러)으로 늘었다. 화폐 가치 변화를 빼고 보면 33년사이 100배 넘게 몸집이 커진 셈이다.

중국 GDP는 작년 2분기 일본을 제치고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에 올라섰다.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05년 5%에서 작년 9.5%로 늘어났다. 린이푸(林毅夫) 세계은행 부총재는 "2030년엔 미국을 제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 1978년 이후 중국의 무역규모 추이(자료: 중국 국가통계국, 한국은행 베이징사무소)

산업의 불모지가 `세계의 공장`, `세계의 시장`으로 변하면서 무역 규모는 1978년 수출 97억달러, 수입 109억달러(총 206억달러)에서 작년에는 수출 1조5779억달러, 수입 1조3948억달러(2조9727억달러)로 팽창했다. 3조400억달러의 세계 1위 외환보유국 타이틀은 덤으로 따라 붙었다.

다만 14억에 달하는 인구를 셈법에 넣으면 중국이 `국부(國富)`를 `민부(民富)`로 잇기에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작년 중국의 1인당 GDP는 4000달러를 넘긴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는 아직 세계 100위권 밖이다. 도시와 농촌간의 소득격차가 점점 커지는 것도 중국의 현실이다.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은 1979년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덩샤오핑 전 주석이 주창한 사상으로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뜻으로 직역된다.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인민이 잘 살면 그만이라는 중국식 개혁개방을 이끈 실용주의다.
장쩌민 전 주석의 3개대표(3個代表) 사상은 공산당이 ▲선진 생산력(자본가) ▲선진문화 발전(지식인) ▲광대한 인민(노동자·농민)의 근본 이익을 대표해야 한다는 사상. 개혁개방으로 커진 중산층을 공산당으로 편입시킨 이론적 근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