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in][이슈별 금융시장 전망]①한국은행은 어디로…

by문정현 기자
2011.02.09 09:20:25

마켓in | 이 기사는 02월 08일 10시 14분 프리미엄 Market & Company 정보서비스 `마켓in`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이데일리 문정현 기자] “지금 우리는 문에서 이만큼 떨어진 위치에 있다. 적당한 시기에 문을 빠져나가려면 문 쪽으로 조금씩 조금씩 이동을 해야 된다. 문 근처에 있지도 않은 사람이 정상화할 시기가 됐다고 해서 갑자기 그리 이동해서 빠져나갈 수는 없다.” (이성태 한국은행 前총재, 2009년 12월 기자간담회)

“금리라는 것은 가장 중요한 거시변수로 모든 경제활동에 영향을 미친다. 때문에 다른 변수들을 고려해서 그 당시로서는 최선의 정책결정을 할 수밖에 없다. 우회전을 한다 해도 어떤 조건이 되면 우회전하느냐, 타이밍 선택의 문제가 있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 2010년 10월 기자간담회)

기준금리 정상화라는 큰 목표는 같지만 이를 이행하는데 있어 `이성태호(號)`와 `김중수호(號)`의 방식은 상당한 차이를 드러낸다. 큰 배를 움직이려면 미리 뱃머리를 돌려둬야 한다는 게 이 전 총재의 논리라면, 과연 지금 뱃머리를 돌려도 될 때인지 항해 조건을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 김 총재의 논리다.

이런 가운데 한은이 지난 1월 기준금리를 2.50%에서 2.75%로 인상했다. 연초부터 설마 올리겠냐는 의구심을 뒤집는 조치였다. 김 총재 취임 이후 가장 파격적인 행보로 평가된다. 한은이 드디어 정상화의 고삐를 죄는 것이 아니냐는 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이 같은 깜짝 인상도 따지고 보면 김 총재가 그동안 주창했던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1월 기습적인 인상에는 고공행진 중인 신선식품과 원자재 가격 상승, 임금·공공요금 인상 계획 등에 따른 물가 불안이 주 요인으로 지목됐다.



지난 12월 금통위 직후 발표된 2011 경제전망 자료를 보면 물가 급등 가능성은 적어도 한은 입장에서는 하루 아침에 출몰한 위험요인이 아니다. 소비자물가는 올 상반기에 전년동기대비 3.7% 상승하고 근원인플레이션율은 1.8%에서 2.8%로 뛸 것으로 예상됐다. 그럼에도 한은은 하루 전 열린 금통위에서 주요국 경기 변동성, 유럽 재정문제 등을 언급하며 기준금리를 동결했었다.


그렇다면 1월 돌발 인상을 이끌어 낸 또 다른 요인으로 정부와의 공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성장에 무게를 두던 정부가 “물가가 4%를 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발언을 내놓을 만큼 정치적인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면 과연 기준금리 인상이 가능했을까 하는 문제다. 총재가 더욱 노력하겠다던 ‘시장과의 소통’을 할 틈도 없이 여건과 분위기가 급변했다는 것 외에는 설명하기 힘들다. 환율전쟁, 유럽 재정위기, 지정학적 리스크 등 외부 불안요인이 소강상태에 들어간 가운데 정부의 스탠스 변화가 금리 정상화를 노리는 한은에 절호의 기회를 제공한 셈이다.

정부와의 공조는 한은 내부에서도 일정부분 필요성을 인정하는 상황이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시장이 자유화 할수록 중앙은행의 힘은 막강해지지만 규제 경제에서는 다르다”며 “지금처럼 성장이 계속될 것인가에 대한 불안이 있고, 각종 규제가 도입되는 상황에서는 카운터파트인 정부와 박자를 잘 맞추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한은의 기준금리 정상화 속도나 폭에 대한 지나친 기대를 갖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김중수 총재는 1월 금통위 회의 직후 열린 간담회에서 물가에 대해 강경한 발언을 내놓은 한편으로 “베이비스텝을 통해 인플레를 수속(收束)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며 여지를 남겼다.

‘전방위적인 물가잡기’라는 명분 아래 현재 톱니바퀴처럼 맞물려가고 있는 정책 공조가 언제 어그러질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경기 둔화세의 바닥을 확인해야 하고 주택시장 부진과 담보대출 증가 사이에서 저울질해야 하는 숙제도 남아있는 상황에서 올 한해 한은이 진정한 `인플레이션 파이터`, `매파`가 될 수 있을지 가늠하기엔 시기상조란 얘기다. 한은 다른 관계자는 “(금리의) 큰 방향은 다 알고 있지만, 현재 인상폭과 시기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총재, 부총재, 집행간부를 포함해 그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