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사설)함께 가는 세상을 만들자

by이종석 기자
2010.01.01 07:50:03

[이데일리 이종석기자] 경인년(庚寅年) 새해가 밝았다. 60년만에 찾아오는 백호랑이의 해다. 백호는 四神(청룡/백호/주작/현무) 중 유일하게 실존하는 동물이다. 그 신령함으로 인해 민간신앙에서는 산신령이나 산군자로 통한다.

직전 백호랑이 해였던 1950년에는 6.25 동란이 발발했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재건의 깃발을 올린 지 60년.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강국으로 우뚝 섰다.

매년 맞이하는 새해 아침이지만 6.25 한 갑자를 맞는 올해의 감회는 남다르다. 70년대 ‘한강의 기적’과 90년대 ‘외환위기 극복’에 이어 한국경제가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난해 우리 경제는 글로벌 신용위기의 파고를 잘 헤쳐왔다. 하지만 우리 앞에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양극화, 고령화, 저출산, 취업난, 가계부실, 사교육.., 어느 것 하나 간단치 않지만 미래를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들이다.

양극화 해소는 이 중에서도 가장 무거운 화두다.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채택한 신자유주의 경제체제하에서 양극화 심화는 예고된 수순이었다. 자본시장 자유화로 투기성 소득은 늘어나고, 노동시장 유연화로 임금격차는 더 크게 벌어졌다. 돈이 돈을 버는 구조가 공고화되면서 ‘있는 자는 더 넉넉해지고, 없는 자는 더 가난해지는‘ 불평등 시스템이 자리를 잡았다.

공정한 경쟁의 결과라면 마땅히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출발선이 다른 경쟁을 공정한 경쟁으로 볼 수는 없다. 자본주의가 내세우는 모토 가운데 하나가 ‘기회의 균등’이다. 냉정하게 보자면 이 말은 허구다. 기회라는 것 조차 자본의 논리로 얼마든지 불평등하게 바꿀 수 있는게 지금의 구조다. 자본 격차가 벌어진 상황에서 공정한 출발선을 논하기 어려운 이유다.

양극화는 사교육을 통해 후손에게 대물림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우려스럽다. 사교육 집중은 사회 양극화와 중층적 접점을 이루고 있다. KDI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개천에서 용(龍) 나는 일은 앞으로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지적했다.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인생을 좌우하는 정도가 점점 강해지고, 교육이 계층상승의 사다리 보다는 경제적 지위의 대물림 통로로 변질돼 가고 있다는 자성이다.



열심히 일해 자기 집 장만하고, 자식교육만큼은 제대로 시켜보겠다는게 이 땅 장삼이사들의 소박한 꿈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꿈을 이룰 수 없는 사회라면 구성원들은 희망을 갖기 어렵다. 창발적 도전 보다는 자기생존과 방어에 집착하게 되고, 한탕주의와 패거리문화, 집단이기주의가 득세한다. 자연히 사회발전 동력은 떨어질 것이고, 잠재적 불안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나라 안팎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한둘이 아니겠지만 양극화와 사교육, 일자리 문제의 중요성을 재삼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모두가 함께 가는 세상이어야 경제도 살고, 정치도 살고, 미래도 살아난다.

양극화 해소를 위한 현 정부의 정책은 유별나다. 주요 정책 발표 때마다 ‘서민’을 앞세운다. 대통령이 포장마차를 방문해 음식을 팔아주며 서민대책을 강조한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조치를 완화하고, 법치논쟁을 불사하면서 까지 재벌회장에게 특별사면을 단행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미 벌어진 경쟁의 출발선을 정부가 더 벌려놓는 것 아니냐는 푸념이 나온다.

양극화는 일조일석에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우선 양극화의 골이 더 넓어지지 않도록 좁혀놓는 일이다. 경쟁의 출발선을 정비하고, 당장은 어렵더라도 다음에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의 불씨를 살려야 한다.

경제성장의 과실을 모든 국민이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나라를 단합시키는 궁극의 방도다. 이를 위해서는 성장의 과정에 국민이 함께 뛰어야 하고, 분배의 과정에도 함께 참여해야 한다. 모두가 함께 가기 위해서는 인적 물적 자원을 효과적으로 배분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신분이나 학습수준이 아니라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능력을 발휘했는지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경인년 새해. 한반도를 일깨우는 백호랑이의 기상과 함께 모두가 어깨 걸고 같이 나아가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