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타게 찾은 아들의 죽음…"믿었는데 배신감 컸을 것" 5년 전[그해 오늘]
by이로원 기자
2024.09.19 00:00:57
보험금 노리고 동거녀 장애 아들 살해한 남성
대법원서 무기징역 확정 "범행에 대한 반성이 없다"
[이데일리 이로원 기자] 2019년 9월 19일 전북 임실군을 지나는 17번 국도 인근의 인적 드문 도로. 이날 아침 9시 무렵 가로 276㎝, 세로 127㎝, 높이 90㎝의 철제 적재함에서 중증지적장애가 있던 20대 남성 A씨의 시신이 발견됐다. 실종 현수막까지 내건 가족이 가출을 신고한 지 보름여 만이었다.
A씨가 입고 있던 바지 주머니에서는 지갑과 현금 2000원, 이어폰 2개가 발견됐고. A씨의 머리에서는 직경 2.5㎝ 정도의 다수 골절이 확인됐다.
A씨를 부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혈중 미르타자핀의 농도가 높은 상태에서 머리 부위 손상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결론 내렸다. 우울증에 복용되는 미르타자핀의 대표적인 부작용은 졸음이다. A씨의 신장조직 등에서 검출된 미르타자핀 1.7mg/kg이 검출됐는데, 이는 치사량(1.8mg/kg)에 근접한 수준이다.
목격자도 흉기도 없어 수사에 난항을 겪었지만 사체 유기 장소 부근 CC(폐쇄회로)TV에 범인의 덜미가 잡혀 그를 법정에 세울 수 있었다. 범인은 A씨의 모친인 B씨와 지난 2014년부터 동거를 하던 백모(60) 씨였다.
백 씨가 함께 지내던 A씨를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한 건 4억1700만원의 사망보험금 때문이었다. 백 씨는 2019년 9월 3일 오전 9시 40분쯤 전남 목포시에 있는 자신의 주거지 근처에서 A씨를 본인의 차량에 태운 뒤 치사량 상당의 미르타자핀 성분 등이 포함된 불상의 물질을 먹여 A씨를 항거 불능 상태로 만들었다.
이날 오전 11시 50분쯤 전남 보성군의 한 CCTV에 백 씨의 차량 조수석에 한 남성이 의식을 잃은 채 실려가는 모습이 그대로 찍혔다. 백 씨는 이후 전남 장흥군과 보성군, 순천시, 임실군 등을 다녔다.
같은 날 오후 6시쯤 백 씨는 목포에서 160km 떨어진 전북 임실군의 인적이 드문 곳까지 운전해 가서 A씨를 살해했고, 인근 노상에 있던 콘크리트 제조 철제함 안에 A씨의 사체를 유기했다.
백 씨는 수사기관의 조사과정과 재판 과정 중 범행을 부인했다. 의식을 잃은 조수석의 남성은 전남 목포시 인근에서 태운 무전 여행객이라고 주장했다. A씨가 사망했을 때 나오는 보험금은 모친 B씨가 타게 돼 자신에게는 경제적 이득이 없고, 부동산 임대업 등으로 경제 형편이 넉넉해 범행 동기가 없다는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런 백 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의 사체가 발견된 곳을 우연히 두 차례나 지나칠 가능성이 극히 드문 데다, 무전 여행객을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7시간 동안 태웠다는 진술에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본 것.
게다가 B씨가 백 씨에게 정신적으로 종속돼 있어 보험금은 백 씨가 가질 것으로 판단했다. 실제 B씨는 A씨의 사망보험금으로 수령한 5000만원 중 1000만원을 백 씨의 1심 변호인 선임 비용에 사용했다. 백 씨는 신용불량자로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도 않았다.
범행 1년 전 집중적으로 가입한 보험도 범행 증거가 됐다. A씨를 피보험자로 한 보험 3개는 범행 1년 전인 2018년 8~9월 사이 집중적으로 가입됐다. 월 보험료만 70만원이 나갔다. 2018년 8월에는 사망보험금만 6억원짜리 보험에 가입했다가 1개월 만에 해지했다.
그동안 백 씨가 수차례에 걸쳐 보험사기를 저지른 정황도 있었다. 2008년에는 동거하던 여성의 명의를 이용해 보험료를 환급받거나 요양급여를 대신 받아 내다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당시 동거녀는 현재까지 행방불명인 상태다.
1심 재판부는 2020년 2월 백 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을 믿고 함께 피해자를 찾으려 실종자 현수막을 걸고 전단지를 나눠줬던 피해자의 모친이 겪었을 정신적 고통과 슬픔은 상상할 수도 없이 크다”며 “피해자 가족과 피고인을 영구적으로 격리할 필요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백 씨 측은 “이미 상당한 재산이 있어 보험금을 목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볼 수 없고, 범행일 이후 피해자를 목격했다는 목격자가 있다”며 항소했지만, 2심 역시 “피고인이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만 계속하며 범행에 대한 반성이 없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2020년 10월 백 씨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