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논설 위원
2024.09.02 05:00:00
전 세계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자의 절반 이상이 한국인이라고 한다. 미국 사이버보안 업체 시큐리티 히어로의 조사 결과다. 지난해 7~8월 유튜브 등 동영상 플랫폼과 딥페이크 사이트에 게재된 영상물 9만 5820건을 조사해 보니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자의 53%가 한국인으로 나타났다. 두 번째로 많은 미국인(20%)의 세 배에 가깝고 일본인(10%), 영국인(6%), 중국인(3%), 대만인(2%)보다 훨씬 많다. 피해자의 90% 이상은 가수와 배우 등 연예인이다.
얼핏 한류의 인기를 배경으로 떠올릴 법하지만, 그보다는 딥페이크 성범죄에 느슨하게 대응해 온 우리 잘못 탓이 크다. 조사에서 드러나지 않았지만, 딥페이크 음란물을 제작해 유포한 가해자 가운데 한국인이 적지 않을 것이다. 국내 딥페이크 성범죄 증가가 전 세계 인터넷 동영상 채널 오염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미국 신문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이 전 세계적 문제의 진앙”이라고 지적했다. 우리가 ‘정보기술(IT)강국’을 자부할 줄만 알았지 IT 악용 범죄를 방치한 것을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딥페이크 성범죄 대상은 연예인에 국한되지 않는다. 교육부 조사에 따르면 올 들어 학생과 교직원 중 딥페이크 피해자는 196명이고 그 가운데 절반 이상은 중학생이다. 전교조의 온라인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21%가 딥페이크로 직간접 피해를 입은 적이 있다고 했다. 최근 여대생과 여군을 대상으로 한 딥페이크 음란물이 텔레그램 대화방을 통해 유포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딥페이크 성범죄는 이처럼 우리 사회 구석구석으로 퍼지고 있다.
딥페이크 성범죄는 개인의 인격을 파괴하고 피해자에게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안길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의 대응은 미흡하기 이를 데 없었다. 허위 영상물 유포 행위에 대한 처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불과하다. 허위 영상물을 제작해도 ‘유포할 의도’가 없었다면 처벌 대상도 아니다. 정부는 지난 30일에야 딥페이크 성범죄에 관한 대책회의를 처음으로 열어 딥페이크 제작·유통에 대한 처벌 강화와 허위 영상물 소지 등에 대한 처벌 도입을 추진하기로 했다.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속히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