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누명’ 수지김, 16년 만에 억울함 달래다 [그해 오늘]
by이준혁 기자
2023.08.14 00:01:11
[이데일리 이준혁 기자] 2003년 8월 14일. 서울지법 민사합의41부는 수지김(김옥분)씨 여동생 옥자씨 등 유족 10명이 국가와 살해범 윤태식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는 원고들에게 위자료 42억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간첩 누명을 쓰고 기나긴 고통이 이어진 ‘수지김 사건’ 16년 만에 유족들이 국가로부터 마침내 손해배상을 받게 됐을 때 김옥분씨의 마음은 조금이나마 편안해질 수 있었을까.
| 간첩 누명을 썼던 김옥분씨 유족들이 사건 16년 만에 국가로부터 배상금을 받게 됐다. (사진=SBS 보도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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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의 억울한 사연은 1987년부터 시작됐다. 그해 1월 남편 윤씨가 사업자금 문제로 말다툼을 벌이다가 우발적으로 그녀를 목졸라 살해한 뒤 침대 밑에 시신을 숨기면서다.
이틀 뒤 윤씨는 싱가포르로 이동해 북한 대사관에 망명을 신청했다. 하지만 살인자 신분인 윤씨를 선전용으로도 이용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북한 대사관이 이를 거부했고, 윤씨는 미국 대사관을 찾아갔지만 역시 쫓겨나고 만다.
윤씨의 동태를 수상하게 여긴 미국 대사관이 한국 대사관에 연락하면서 한국 정부가 윤씨의 신병을 확보한다. 이때 윤씨는 살인 혐의를 피하기 위해 황당한 주장을 내뱉는다. “북한 공작원에게 납치됐다가 탈출했어요. 제 아내가 바로 북한 간첩입니다.”
그렇게 김씨는 ‘수지김’이라는 북한 간첩으로 둔갑됐다.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현 국가정부원)는 범행 사실을 알고도 윤씨의 말을 진실인 양 묵인했다. 전두환 정권 퇴진에 쏠린 국민들의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서였다.
당시 안기부장이었던 장세동씨 지휘 아래 수지김 사건은 ‘살인·자진 월북 시도 사건’에서 ‘납북 사건’으로 정밀하게 조작되며 반공 선전도구로 활용됐다.
김씨가 목숨을 잃고 졸지에 간첩으로 몰리면서 가족들의 삶도 붕괴됐다. 간첩 가족이라는 이유로 모진 조사를 받아야 했고, 이혼을 당하고 학교에서 쫓겨나 신분을 숨기고 쥐죽은듯 지내야 했다. 어머니는 실어증을 얻고 숨어살다가 김씨가 피살된지 10년 만인 1997년 숨을 거뒀다.
안기부 보호 하에 안전하게 입국한 살해범 윤씨는 지문인식기업을 인수해 ‘패스21’이라는 벤처기업 창업에 성공, 사기죄로 복역 중 알게 된 이를 통해 96년 전직 국회의원 소개받으면서 청와대에까지 사업 수완을 발휘했다.
방송에 출연하는 등 과하게 이목을 끌자 윤씨를 의심한 이들이 의혹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관련 보도들이 나오고, 해당 내용을 다룬 방송 프로그램이 송출되면서 윤씨와 안기부의 공작이 세간에 알려지게 됐다.
감옥에 있을 줄 알았던 윤씨의 떵떵거리는 모습을 본 유족들이 진실규명을 위해 노력한 끝에 결국 모든 진실이 만천하에 드날 수 있었다. 검찰은 공소시효 만료를 50일 남겨두고 간신히 윤씨를 구속해 홍콩 정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토대로 윤씨의 살인과 국가기관의 개입을 밝혀냈다. 사실 1987년 홍콩에서는 윤씨가 살인범이라는 정부와 언론 발표가 나왔다. 하지만 통신망이 현재 같지 않던 상황이어서 국내에 알려지지 않았다.
유족들은 1987년 김씨가 살해된 당시 안기부가 윤씨의 범죄 사실을 알고도 사건을 조작해 김씨를 간첩으로 몰았고, 2000년 경찰청과 국가정보원이 사실을 숨기며 윤씨에 대한 내사를 종결함으로써 명예회복 기회를 박탈당했다며 2002년 5월 소송을 냈다.
윤씨는 2002년 재판에서 살인, 사기 뇌물공여 등 혐의로 징역 18년을 선고받았다. 윤씨는 억울하다며 불복해 항소했고 2심은 “다만 범행이 오래전에 발생했고 피고인이 장기간 불안과 초조함 속에서 고통을 겪어온 점, 안기부의 은폐공작에 기인한 측면과 관련해 피고인의 책임만 물을 수 없다는 점, 계획적 살인이 아닌 우발적 살인이었다는 점 등을 양형에 참작해 1심의 형을 감경한다”며 징역 15년 6개월을 선고했다.
법원은 2003년 8월 14일 국가에도 42억원의 배상금을 유족에게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당시 유례가 드물 정도로 큰 액수의 배상금이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고들이 수지김씨 사망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고통을 받았을 것임에도 국가는 조직적으로 국가권력을 이용해 살해된 수지김씨를 간첩으로 조작하고 살인범 윤씨를 오히려 반공투사로 만들어 원고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끼쳤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나라와 같은 남북분단 상황에서 원고들은 간첩가족으로 몰려 그동안 신분상의 불이익으로 인해 경제적 궁핍을 겪었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까지 당했다”며 “이 모든 사정을 참작해 위자료로나마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당시 유족들은 간첩 가족으로 몰리는 바람에 경제력을 잃어 소송에 필요한 인지대 3800만원조차 마련할 여건이 되지 않아 2800만원을 도움 받고 나머지 1000만원은 법원에 소송구소 신청까지 냈었다.
사실을 은폐 및 조작했던 장씨 등은 직권남용 및 직무유기 공소시효 만료로 공소를 면했다. 장씨에게 구상권이 청구돼 9억원의 배상금이 판시됐으나 장씨는 일부만을 납부했다. 국가는 윤씨에게도 구상권을 행사해 대법원은 4억 5000만원의 배상금을 판결했으나 윤씨의 재산은 이미 공중분해된 뒤였다.
유족들은 이후에야 홍콩 현지에서 김씨가 묻힌 곳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홍콩 당국에서 무연고자 시신으로 처리해 유해를 수습할 수는 없었다. 대신 김씨가 다른 무연고자 시신과 공동으로 묻힌 묘지의 흙을 고향으로 가져와 어머니 묘지에 뿌리면서 모녀가 다시 만날 수 있도록 해줬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