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칼로 위협할까 방검복 입고 체납세금 받으러 10만km 뜁니다"
by조용석 기자
2023.07.03 05:24:08
[인터뷰]중부지방국세청 체납추적과
체납징세 시작은 재산파악…민형사 업무도 다수
가택수색 중 위험상황도…강제개문 대신 설득 ‘노력’
해외은닉에 신유형 자산까지 어려워지는 체납징수
“세금 밀리면 피하지 말고 도움부터 요청하세요”
[수원=이데일리 조용석 기자] “가택수색 중 체납자가 주방 근처로 가려고 하면 우선 막아야 합니다. 언제든지 (칼 등을 사용할 수 있는)위협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방 쪽에는 방검복을 입은 전담 인원을 꼭 배치합니다.”
최근 수원 중부지방국세청에서 만난 김승현 체납추적과장과 손희정 조사관은 체납추적 업무를 설명하며 이같이 밝혔다. 30년 국세청 베테랑 공무원인 이들은 중부청 관할인 경기·강원도 지역 세금체납자를 관리한다. 일선 세무서에서 처리하기 어려운 고액·장기체납 또는 고의성이 짙은 악질 체납건 등이 체납추적과로 넘어온다.
| 김승현 중부지방국세청 체납추적과장. 함께 인터뷰한 손희정 조사관은 체납자와 직접 접촉하는 현장 업무가 많아 사진 촬영을 고사했다.(사진 = 조용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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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납징수의 시작은 체납자 재산 파악이다. 김 과장은 “체납자 본인 명의 재산은 쉽게 파악할 수 있지만, 타인 명의로 변경을 하는 등 은닉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며 “다양한 정보를 분석 후 고의성이 강하다고 판단되는 체납건을 우선 추적 조사대상으로 선정하고, 이후 강제징수까지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체납추적 업무라면 흔히 가택수색을 떠올리지만 민·형사적인 업무도 많다. 예를 들어 세금을 내지 않으려 자기 재산을 타인 명의로 돌려놨다면 민사소송인 사해행위 취소소송을 해야 한다. 이외에도 공탁, 경매, 형사 고발 등 체납 징세와 관련된 모든 방법을 활용해야 하기에 국세행정뿐 아니라 민·형사까지 능숙해야 한다.
이 같은 노력으로 중부청 체납추적과가 최근 5년 징수한 세금은 약 1조원으로, 매년 약 2000억원에 달한다. 인원이 34명인 점을 고려하면 1인당 약 300억원의 세금을 받아냈다는 얘기다. 손 조사관은 “4년간 체납추적과에서 근무하며 이동한 거리가 10만㎞”라며 “낮에는 현장활동이 많아 서류작업 등 업무는 대부분 밤에 한다”고 말했다.
| 중부청 체납추적과 조사관들이 체납자 가택수색 과정에서 압류한 명품가방과 신발 등을 정리하고 있다.(사진 = 국세청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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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택수색은 국세징수법에 의거해 세무공무원이 체납자의 주거지나 차량 등을 수색하는 행위를 말한다. 손 조사관은 “일단 가택수색을 시작하면 이삿짐센터 수준으로 샅샅이 찾는다”며 “한 번은 빨래건조대 위에 뜬금없이 쌀 항아리가 있어서 열어보니, 약 7000만원 규모의 외화 뭉치를 검정 비닐 봉지에 꽁꽁 싸서 숨겨 놓았더라”고 말했다. 차량도 체납자들이 자주 재산을 은닉하는 장소이기에 꼭 확인한다.
가택수색 과정에서 체납자가 숨겨둔 현금다발, 명품 등이 발각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실제 지난해 중부청 체납추적과는 한 체납자의 집을 가택수색하며 명품가방과 구두·지갑 등 수백여점을 압류한 후 공매 처분해 5억원을 징수하기도 했다.
체납자에 대한 가택수색은 필요한 활동이지만 위험요소도 많다. 흥분한 체납자들이 흉기를 사용하는 등 돌발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체납자가 문을 열지 않고 버텨도 즉각 강제 개문을 하기보다 밖에서 설득하고 기다리는 이유도 체납자가 흥분을 가라앉힐 수 있게 시간을 주는 이유가 크다.
김 과장은 “가택수색 전에는 방 배치도 등을 확보해 각각의 팀원이 맡을 장소를 미리 정해놓고 시작한다”며 “업무 효율성과 함께 안전을 모두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체납자가 주방 쪽으로 가려 하면 칼을 사용할 위험성이 있어 일단 못 가게 한다”면서 “위협적인 경우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어 항상 안전에 주의한다”고 덧붙였다.
엄정한 법 집행과정이지만 미성년 자녀들이 있는 집은 최대한 배려한다. 손 조사관은 “한번은 자녀가 3명이 있는 체납자의 집을 가택수색했는데, 자녀들이 등교한 이후에 들어갔다”며 “아이들이 가택수색 장면을 직접보면 평생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면 악질 체납자의 경우는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서 강력하게 집행한다는 설명이다.
체납징수 업무는 과거보다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한다. 종전에는 탈세가 국내에 한정됐다면 최근에는 해외로 범위가 확장됐기 때문이다. 또 비트코인 등 새로운 유형의 자산 등장도 국세청이 고민하는 부분이다. 실제 국세청은 2021년 가상자산으로 재산을 은닉한 2416명으로부터 약 366억원을 징수하기도 했다.
다만 체납추적 업무에서 강제력 행사가 전부는 아니다. 악질 체납이 아닌 일시적 자금난으로 세금이 밀린 경우에는 압류 등 강제절차 대신 납부유예나 분할납부 등을 안내하며 분납계획을 함께 고민해주는 역할도 한다.
김 과장은 “법인의 경우 코로나19 대유행처럼 외부 요인에 의해 일시적으로 사업이 안 될 때가 있는데, 무조건 압박만 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세정지원을 통해 재기하도록 돕는다”며 “다시 사업이 잘 돼 세금을 많이 낼 수 있게 되면 국가도 개인도 좋은 일 아니냐”고 강조했다. 그는 또 “세금을 체납했다고 무조건 (국세청을)피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해달라”고 당부했다. 국세청에 따르면 국세체납액은 누적 102조 5000억원(2022년 기준)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