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이 골리앗 이겼다...한미약품·유한양행의 특허 비법
by송영두 기자
2024.12.18 11:26:05
[이데일리 송영두 기자] 알테오젠(196170), 이오플로우(294090) 등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글로벌 기업과 특허 분쟁에 휩싸였다. 핵심 기술 특허 소송 결과에 따라 회사 존폐 위기로 이어질 수 있어 리스크가 매우 크다는 지적이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특허 분쟁에 취약할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오는데, 빅파마와 특허 분쟁서 승소한 한미약품(128940)과 유한양행의 렉라자 특허 전략을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미약품과 유한양행(000100)의 특허 전략 공통점은 제품 및 기술 개발시 특허 리스크를 선제적·주기적으로 점검하고, 특허 장벽으로 잠재적인 분쟁에 대비했다는 평가다.
12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알테오젠은 미국 할로자임, 이오플로우는 미국 인슐렛과 특허 분쟁을 진행 중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302440)도 화이자와 폐렴구균 백신 특허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중 이오플로우는 최근 미국 재판부가 인슐렛 웨어러블 인슐린 패치 특허를 침해했다고 인정해 패소했다. 무려 6337억원 규모 배상금 판결을 내려 회사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졌다.
전문가들은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특허 등 IP를 위한 투자에 인색하고, 전략이 부재해 이런 글로벌 기업과의 특허 분쟁시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반면 한미약품이 아스트라제네카와의 특허 분쟁에서 승소한 사례와 최근까지의 특허 전략은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설명이다.
|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 에소메졸.(사진=한미약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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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글로벌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는 한미약품과 한미홀딩스, 한미USA, 한미정밀화학 등 4개사를 상대로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 넥시움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넥시움은 연매출 50억 달러에 달하는 블록버스터 약물이었다. 넥시움은 매우 광범위한 염특허를 보유하고 있었다. 한미약품은 차별화된 염(스트론튬 염) 기반 에소메졸을 개발, 미국 출시를 앞두고 있자, 아스트라제네카가 염 특허 침해를 주장했다.
하지만 2012년 미국 뉴저지 법원은 에소메졸이 넥시움의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고 판결했다. 이에 아스트라제네카가 항소했지만, 2013년 미국 연방순회항소법원 역시 특허 침해를 인정하지 않아 한미약품이 최종 승소했다. 인도 제약사 란박시는 넥시움 특허 장벽을 넘지 못해 아스트라제네카와 협상을 통해 제품 발매를 미루기로 했던 점을 고려하면, 한미약품의 승소는 상당한 의미가 있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한미약품의 승소는 제품 개발 당시부터 넥시움 특허를 파헤치고, 선제적으로 특허분쟁에 대비했던 것이 주효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넥시움은 약리학적으로 허용 가능한 매우 다양한 염 형태를 보호하고 있어 (특허)다툼의 여지가 있었다. 따라서 한미약품은 상당히 차별화된 에스오메프라졸 스트론튬 염을 개발, 기존 특허에 포괄된다고 보기 어려운 면을 강조했다”라며 “단순히 다른 염이 아닌 기존 염보다 개선된 물성, 용해도, 흡수 특성 등에서 차별성을 갖는다는 점을 어필했다. 사실적 근거를 바탕으로 아스트라제네카 특허 클레임 범위에 속하지 않는 독자적인 제품임을 인정받았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한미약품(한미사이언스 포함)은 특허 장벽 구축에 공을 들이고 있다. 2018년부터 2023년까지 6년간 등록된 국내 특허 수는 총 143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 1위다. 보유한 특허권도 국내 238건, 해외 2135건에 달한다.
다수의 변리사는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 중 유한양행 렉라자 특허 전략에 주목하고 있다. 국내 기업 중 드물게 다양한 특허 출원 및 등록을 통해 촘촘한 렉라자 특허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렉라자는 원개발사 오스코텍이 2009년 11월 키나아제 억제제에 대해 최초물질특허를 냈고, 2010년에는 PCT 출원, 2014년 레이저티닙을 포함한 물질특허를 미국서 임시 출원했다. 2015년 유한양행에 기술이전 된 후 같은해 미국 정규출원과 PCT 출원을 마쳤다. 2017년에는 한국서 메실산 염특허와 중간체·제법특허를 가출원했다. 2018년에는 PCT 출원을 완료했고, 경구투여조성물 특허도 출원했다. 글로벌 제약사 얀센에 기술이전 된 후인 2019년 얀센과 유한양행은 투여용량 특허와 렉라자-리브리반트 병용투여 특허를 출원했고, 2020년 특허 등록이 완료됐다.
유정민 특허법인 무한 변리사는 “제노스코와 오스코텍은 렉라자 최초물질특허를 출원했고, 개량발명에 대해 유한양행이 물질특허를 출원했다. 그 이후 염 발명, 제조방법 발명, 조성물 발명 등의 특허를 출원했는데, 유한양행과 얀센은 임상을 진행할때 마다 추가 특허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다”며 “이는 휴미라 특허 전략과 유사한 에버그리닝 전략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손지연 데일리파트너스 변리사는 “렉라자의 경우 물질특허 존속기간을 늘리기 위해 염 특허, 조성물 특허 등을 계속 후속 출원했다. 결국 렉라자의 특허가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며 “국내에서 이렇게까지 특허 전략을 수립하는 곳은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에버그리닝이란 오리지널약 개발사가 특허 독점권을 연장하기 위해 물질 특허 이후 결정형, 이성질체, 염, 조성물, 제법 등의 특허를 후속 등록하는 전략이다. 막대한 의약품 개발 비용의 초기 회수를 위한 장기 특권 독점화와 의약품 개발 일련의 시계열적 개발단계에서 생성되는 다수 파생발명의 보호가 목적이다. 애브비가 개발한 블록버스터 치료제 휴미라의 경우 물질 특허가 2016년 12월에 만료됐지만, 에버그리닝 전략을 통해 무려 126개의 특허 장벽을 세워 2023년이 돼서야 최초 바이오시밀러가 출시됐다.
손 변리사는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아무래도 규모가 작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신약 및 제품 개발에 치중할 수 밖에 없고 대부분의 자본도 여기에 투여되다 보니 IP에 대한 인식 부족과 자금 투여가 이뤄지지 않는다”며 “원천기술이 있다고 하더라도 최근에는 무효심판이 많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에 어렵더라도 바이오 기업들은 광범위하게 특허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특허 전략으로 주목받은 한미약품과 유한양행의 공통점은 핵심 파이프라인에 대한 선제적 특허 리스크 해소, 특허 전략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광범위한 특허 장벽을 구축하고 있는 점이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한미약품과 유한양행과 유사한 특허 전략을 고민해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특허 전략에 힘을 쏟아야 하는 이유는 특허권이 제약바이오 기업에 중요한 무형자산 중 하나이기 때문”이라며 “특허는 경쟁사 시장 진입을 저지해 시장 점유율을 보호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특허 소송 결과에 따라 회사의 매출이 좌우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