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장병호 기자
2024.06.12 00:05:00
주정뱅이 연대기
마크 포사이스|312쪽|비아북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우리는 인간이기 전부터 이미 술꾼이었다.”
작가 겸 언론인 마크 포사이스는 ‘주정뱅이 연대기’에서 이같이 말한다. 인류의 역사는 술과 밀접하다는 주장이다. 생명체가 처음 등장한 45억 년 전, 단세포 미생물은 당류를 먹고 에탄올과 이산화탄소를 배설했다. 저자는 이 배설물이 ‘맥주’와 다름없다고 말한다. “인류가 술을 마시기 시작한 이래 술은 항상 우리 곁에 있었으며 인류는 언제나 취하고 싶다는 욕망과 함께 했다”는 것이다.
책은 시대와 대륙을 막론하고 술 마시기를 사랑했던 ‘주정뱅이’의 역사를 살펴본다. 천만 년 전 인류의 조상인 원숭이는 땅에 떨어져 발효된 과일의 당분과 알코올을 섭취하며 처음 술을 접했다. 고대 이집트인은 오직 ‘만취’하기 위해 축제를 펼쳤고, 아테네 사람들은 계획적으로 술을 마시는 심포지엄을 열었으며, 중세 바이킹은 ‘원샷’으로 용기를 시험했다.
술이 인류에게 즐거움만 준 것은 아니다. 18세기 인구 60만 명의 대도시였던 런던은 사회 질서가 무너지면서 빈민들이 슬럼가에 모여 진(Gin)을 마시며 현실을 잊었다. 권력자들은 진에 높은 세금을 매겼지만, 술을 향한 빈민의 광기까지 막진 못했다. 독재자 스탈린은 과음으로 소비에트 공화국을 통치했다. 술은 고위 간부들에게 수치심을 주고, 실수로 본심을 드러내게 했다. 술은 가난한 사람의 위안이자 가난의 원인이며, 도피의 수단이자 강력한 해방의 상징이었다.
저자는 “술은 때로는 폭력을, 때로는 평화를 알선하며 인류와 함께 변화했다”고 말한다. 술에 취하고 싶은 원초적인 욕망이 인간의 역사를 쌓았다는 것이다. 술에 대한 흥미로운 예찬론이다. 다만 저자의 주장은 최근 음주운전 관련 논란이 끊이지 않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다소 공허하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