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틴 원액으로 남편 살해한 불륜 아내[그해 오늘]
by이준혁 기자
2023.09.07 00:01:11
국내 최초 니코틴 살인 사건…재산 가로챌 목적
대법원까지 모두 부인·내연남에 무기징역 선고
재판부 “직접 증거 없지만 정황상 충분히 유죄”
[이데일리 이준혁 기자] 2017년 9월 7일. 국내 처음으로 니코틴 원액을 이용한 살인 사건에 대한 판결이 내려졌다. 이날 의정부지법 형사합의 11부는 아내 송모(당시 48세)씨와 내연남 황모(당시 47세)씨에게 각각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잠이 든 남편 오모(당시 53세)씨에게 니코틴 원액을 주입해 살해한 혐의였다.
| 니코틴 원액울 주입해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2017년 9월 7일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아내 송모씨와 내연남 황모씨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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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오씨가 사망한 날은 2016년 4월 22일, 가족과 외식 후 남양주시 자택으로 돌아와 맥주를 마시고 방에 들어가 잠들었는데 갑자기 사망했다. 누군가가 출입한 흔적도, 누군가에게 당한 외상도, 누군가에게 저항한 흔적도 없었다.
사인은 니코틴 중독이었다. 부검 결과 오씨 몸에서는 치사량인 니코틴 1.95㎎/ℓ와 수면제 성분인 졸피뎀이 다량 발견됐다. 일평생 줄담배를 피운 사람에게도 나오지 않을 양이었다. 오씨는 생전 담배를 피운 적 없는 비흡연자였다.
오씨 사망을 옆에서 목격했다는 송씨는 출동한 경찰에게 “남편의 부검을 원하지 않는다”는 수상한 대답을 했다. 당초 송씨는 오씨가 숨진 직후 112도, 119도 아닌 장례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그는 장례지도사가 “우선 신고 접수하라”고 안내한 뒤에야 112와 119에 신고해 상식적인 절차를 밟았다.
수사기관이 최종 부검 결과를 기다리는 사이 송씨는 시신을 인도받은 당일인 4월 25일 오씨 시신을 화장했다. 빈소조차 차리지 않는 등 장례식을 치르지 않은 채 서둘러 한 결정이었다. 또한 오씨 주변인 누구에게도 사망 소식을 알리지 않았다. 그리고 나흘 뒤 오씨의 사망신고를 마쳤다.
송씨와 오씨는 6년간 동거했다. 혼인신고는 오씨가 숨지기 두 달 전 갑자기 이뤄졌다. 혼인신고서는 오씨 몰래 작성됐다. 오씨 필체가 없는 혼인신고서의 증인은 내연남 황씨였다.
이후 경찰 조사 결과 송씨가 오씨 사망 후 한 달도 되기 전에 아파트 등 10억원의 재산을 처분한 사실이 드러났다. 약 5000만원의 퇴직금과 8000만원의 보험금도 챙겼다.
상속받은 오씨의 예금 중 약 1억원은 황씨 주머니로 들어갔다. 황씨는 곧바로 자신의 도박 빚을 상환했다. 2015년 5월부터 불륜을 저지른 두 사람은 각기 신용불량으로 대량의 채무를 지고 있었다. 결국 두 사람이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던 방식의 신종 살인 수법을 시도한 이유는 돈이었다.
황씨는 그해 초부터 미리 오씨의 재산을 빼돌릴 계획을 세워뒀다. 그는 오씨가 사망하기 5일 전 ‘퓨어 니코틴 치사량’을 인터넷에 검색했다. 이미 4월 12일 니코틴 원액을 구입한 후였다. 재판부는 이 부분을 유력한 범행 증거로 인정했다.
1심 재판부는 “니코틴을 어떻게 주입했는지 직접적인 증거는 없지만, 이 사건 정황만으로도 유죄를 인정하기에 충분하다”며 “인명경시와 물질만능 풍조로부터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반인륜 범죄를 저지른 피고인들을 사회와 영구 격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내연관계인 피고인들이 피해자의 재산을 가로채려 범행을 공모하고 허위로 작성된 문서로 혼인신고를 마친 뒤 수면제를 사용, 피해자를 무방비 상태로 만들고 니코틴 원액을 주입해 살해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하지만 송씨와 황씨는 “피해자가 자살했거나 제3자가 개입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움에도 1심 재판부가 간접 증거에 의한 막연한 추측만으로 유죄를 인정했다”며 무죄 취지로 항소했다.
이에 항소심은 “송씨가 두 딸을 키우는 이혼녀로서 피해자를 만나 1년 정도 교제하다가 자녀와 함께 피해자 집에서 함께 살게 됐고 피해자에게 많은 경제적인 도움을 받았음에도 내연관계였던 황씨와 이 범행을 저질렀다”고 판단했다.
이어 “범행을 반성하기는커녕 일말의 죄책감을 보이지 않고 있다”며 “배은망덕한 범행과 인면수심의 행태가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고 탐욕스러운 범법자에 의해 피해자 같이 생명을 잃는 사태를 막기 위해 중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이후 대법원은 피고인들의 상고를 기각해 무기징역이 확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