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보기에 부끄럽습니다"...잼버리 30년 전 [그해 오늘]

by박지혜 기자
2023.08.07 00:03:13

[이데일리 박지혜 기자] “함부로 행동하는 어른들이 많아 외국인들 보기에 부끄럽습니다”

1993년 8월 7일 열린 대전 엑스포(대전세계박람회) 관람을 온 당시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이 한 매체를 통해 한 말이다.

이 학생은 엑스포장에서 본 어른들에 대해 “엑스포는 국제 행사인 만큼 행사장에서 질서를 잘 지켜야 한다고 배웠는데 이곳에 직접 와 보니 그렇지 못한 것 같아요”라고 일침을 가했다.

‘총체적 부실’ 운영으로 파행 위기에 놓인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대회’가 열린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일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 집에 온 손님을 맞이하는 상황인 건 똑같다.

1993년 8월 7일부터 11월 7일까지 93일 동안 대전엑스포 성공개최의 숨은 주역으로 꼽히는 ‘도우미’. 당시 도우미란 명칭은 엑스포조직위원회가 세련되고 친근한 이미지를 풍기는 호칭공모를 통해 ‘관람객을 맞이하고 불편을 해소해주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성’이란 뜻의 순수 우리말로 붙여졌다.
채용경쟁률이 25대 1에 달했다 (사진=유튜브 채널 KTV 아카이브 영상 캡처)
특히 당시에는 “우리나라의 첨단 과학과 경제 수준, 그리고 국민의식 수준을 평가받는 국제 시험장”이라는 대전 엑스포 조직위원회 측의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대전 엑스포가 열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연합뉴스는 “전시관 주변 으슥한 곳을 찾아 삼삼오오 모여 술판을 벌이거나 고스톱을 치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고 보도했다.

또 “지구관 ‘도우미’들이 관객들에게 우산을 나눠주고 들어올 때 되돌려 달라고 요구했으나 이날 나눠준 200개의 우산 중 반납된 것은 불과 20여 개에 그쳤다”, “전시관에 있는 물건들이 없어지는 어이없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엑스포와 같은 세계적인 행사를 치르면서 시민들은 ‘손님 대접’에 대한 책임감도 느끼기 마련이다. 그게 나의 자부심이자 지역, 국가의 자부심이란 걸 깨닫기 때문이다.

정부와 조직위의 잼버리 부실 운영이 더욱 원망스러운 건 시민의식은 이미 ‘준비돼 있었다’는 점이다.

전북 군산 지역 커뮤니티에 따르면 군산 시민들은 잼버리 사태가 터지자 지난 4일부터 꽃게 냉동고까지 동원해 매일 잼버리 야영장으로 얼음물 1000병과 이온음료 600병을 날랐다.

“아이들이 좋은 추억과 재미있는 기억만을 남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며 “우리 집에 온 손님인데 차린 건 없어도 배불리 보내야 한다. 먼 길 온 손님, 등 따뜻하고 배불리 보내는 게 우리의 정 아닌가”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봉사에 참가한 한 시민은 “어른들이 미안하다. 당장 해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대전 엑스포에 수학여행이나 소풍을 다녀온 뒤, 대전하면 엑스포나 마스코트 ‘꿈돌이’가 절로 떠오르는 어른들에겐 새만금 잼버리에 온 세계 청소년들의 추억이 걱정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일부 외신에선 이번 잼버리 문제가 2030년 부산 엑스포 유치 노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파장이 더 확산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 와중에도 국내 누리꾼은 댓글이나 SNS를 통해 잼버리 대원들에게 “미안하다”고 대신 사과하고 있고, 잼버리 개영 전 앞다퉈 치적 홍보에 열을 올리던 관계자들은 슬그머니 책임 회피에 나선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