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주'는 키아프가, '돈'은 프리즈가…관람객 7만여명 들이고 폐막

by오현주 기자
2022.09.07 00:01:02

△사상 최대 아트페어가 남긴 이슈 결산
리히터·콘도 등 거장 작품에 인파·거래 몰려
프리즈 작품, 일반관람객에겐 '사진 속 그림'
한국미술시장, 홍콩시장 넘어설 가능성 커져
오세훈 시장 "내년 프리즈·키아프 송현동으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 ‘명작 퍼레이드’를 펼친 ‘프리즈 서울’ 전경. 가고시안갤러리가 내건 데미안 허스트의 ‘재는 재로, 먼지는 먼지로’(2005) 속 유리판에 빼곡하게 모여든 관람객들이 비쳐 보인다. 일명 ‘알약’으로 알려진 허스트의 작품은 건식 전사지로 만든 알약에 하나하나 색칠해 완성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아트공화국’인 줄 알았다. 지난 엿새간 대한민국을 미술 하나로 북새통에 몰아넣은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서울’이 폐막했다. ‘프리즈 서울’은 2일부터 5일까지 나흘간, ‘키아프 서울’은 2일부터 6일까지 닷새간 ‘소문 무성한 잔치’를 열었고, 각자의 계산법대로 성과를 쓰고 과제를 안은 채 마무리했다. 올해 론칭해 하루 앞서 문을 열었던 ‘키아프 플러스’가 1일부터 5일까지 진행됐으니, 키아프로선 21번의 행사를 치르는 동안 가장 길게 장을 세웠던 셈이다.

과연 결과는 어땠을까. 한마디로 프리즈는 ‘대흥행 기록’, 키아프는 ‘절반의 성공’이다. 2020년 9월, 5년 동안 함께하기로 약속을 하고 올해 처음 한국에 상륙한 프리즈에게 기꺼이 사랑채를 내준 키아프는 주객이 뒤바뀌는 상황을 맞았다.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발 디딜 틈 없는 ‘진짜 장터’가 벌어진 건 프리즈 쪽이었다. 오매불망 기다렸을 ‘큰손’ 컬렉터가 먼저 달려간 곳도 프리즈다. 개막하자마자 수십억대 작품 판매소식이 빵빵 터져나왔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설마 했던, 바로 그 풍경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키아프 역시 북적거리는 분위기를 살려내긴 했다. 하지만 “프리즈에 묻어간다”는, 자존심 건드리는 평가가 내내 따라다녔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 ‘명작 퍼레이드’를 펼친 ‘프리즈 서울’ 전경. 한 관람객이 갤러리 타데우스로팍 벽면에 걸린 독일작가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정오의 엑스레이’(2020) 앞에 한참을 머물렀다. 개막 첫날 120만유로(약 16억 3000만원)에 팔린 작품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키아프와 프리즈를 한꺼번에 관람할 수 있는 공동티켓으로 공동개최의 의미를 살린 이번 행사에 다녀간 관람객 수는 7만여명. 미술품 투자열기가 최고조에 달했다고 했던 지난해 ‘키아프 2021’이 기록한 8만 8000여명(누적)보단 수치상으론 조금 밑돈다. 하지만 이조차 고스란히 키아프의 것으로 보기에는 애매한 구석이 있다. “프리즈만 보고 돌아간다”는 관람객은 속출했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잘 드러나지 않아서다.

온전히 키아프만의 성과가 될 매출 규모는 지난해 낸 역대급 성적 650억원을 다소 웃돌 거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사실 행사에 앞서 “지난해 대비 3배 성장할 것”이란 예측은 키아프에서 먼저 내놨다. 2000억원대까지 내다봤으나 거기까지 미치긴 어렵겠다는 의견이 다수다. 키아프를 주최하는 한국화랑협회는 늘 해왔던 첫날 판매현황을 건너뛴 데 이어 “올해부터 판매액 집계를 발표하지 않기로 했다”는 운영진의 갑작스러운 결정을 전했다. 한편 프리즈가 팔아낸 미술품 규모를 두곤 “6000억∼8000억원대”란 얘기가 나온다. 그간 매출 규모를 발표한 적 없는 프리즈지만, 속속 드러난 수백·수십억대의 작품가를 놓고 볼 때 그 정도는 무난할 거란 추측이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 ‘명작 퍼레이드’를 펼친 ‘프리즈 서울’ 전경. 관람객들이 R+V갤러리에 걸린 파블로 피카소의 ‘화가’(1967)를 감상하고 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굳이 관람객 수와 매출액을 따지지 않더라도 말이다. 단군 이래 최대의 미술장터를 마감한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서울’이 대한민국 미술시장에 내려놓은 이슈거리는 적잖다.

‘프리즈 서울’에 나흘 내내 압도적으로 몰린 인파는 예외 없이 해외 유명작가의 걸작을 건 갤러리로 향했다. 4500만달러(약 613억원) 상당의, 이번 ‘프리즈 서울’에서 가장 비싼 작품으로 소개된 파블로 피카소의 ‘방울이 달린 빨간 베레모 여인’(1937)을 건 미국 애콰벨라갤러리즈는 마치 포토존을 차린 듯했다. 너나 할 것 없이 스마트폰 카메라를 들이대, 혹여 작품이 손상되진 않을지 염려스러운 정도였으니까.

파블로 피카소의 ‘방울이 달린 빨간 베레모 여인’(1937)을 한 관람객이 카메라에 담고 있다. 4500만달러(약 609억원)를 달고 애콰벨라갤러리즈에 걸린 작품은 ‘프리즈 서울’에 최고가로 나와 거의 모든 관람객을 불러모았다. 옆에 걸린 피에트 몬드리안의 ‘구성, No.Ⅱ’(1927)가 홀대를 받는다 싶을 정도였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하우저앤드워스에 걸린 조지 콘도의 신작 ‘붉은 초상화 구성’(2022)을 향한 인기도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그 앞 바닥엔 루이스 부르주아의 ‘회색분수’(1970∼1971)까지 놓여 있던 터. 그냥 지나칠 이유가 없었던 거다. 데미안 허스트와 무라카미 다카시 등을 건 가고시안갤러리, 안젤름 키퍼와 게오르그 바젤리츠 등을 건 타데우스로팍 등도 예외는 아니다.

결국 행사의 성패를 좌우할 실제 거래도 이들 작품에 몰렸다.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촛불’(1984)이 1500만달러(약 204억원, 가고시안)에 팔렸다는 첫타에 이어 콘도의 ‘붉은 초상화 구성’이 280만달러(약 38억원), 마크 브래드퍼드의 ‘오버패스’가 180만달러(약 24억원, 하우저앤드워스), 바젤리츠의 ‘정오의 엑스레이’(2020)가 120만유로(약 16억 3000만원) 등등, 곳곳에서 판매신호가 잡혔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 ‘명작 퍼레이드’를 펼친 ‘프리즈 서울’ 전경. 벽에는 조지 콘도의 ‘붉은 초상화 구성’(2022)이 걸렸고, 바닥에는 루이스 부르주아의 ‘회색분수’(1970∼1971)가 놓였다. 거장급의 작품을 대거 들여온 하우저앤드워스는 콘도의 그림을 280만달러(약 38억원)에 판 것을 비롯해 첫날에만 14점을 팔아내는 기염을 토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반면 한국 작가의 작품이 대다수인 키아프는 상대적으로 ‘평이’할 수밖에 없다. 굳이 안달을 부리면서 눈도장이라도 찍어야 할 만큼 “일생에 단 한 번”은 아니었다는 거다. 달려가는 순서에서도 밀렸고, 구매하는 목록에서도 밀렸다. 결국 키아프는 “해외 거물급 작가와 구분이 필요한 한국 작가들을 위한 장치가 잘 보이지 않았다”는 비평에 내내 시달렸다. 미술계 한 전문가는 “거장의 걸작과 나란히 걸린다고 저절로 격이 올라가는 건 아니”라며 키아프 운영의 허점을 꼬집기도 했다.

문제는 결국 드러날 ‘간극의 풍경’을 예상은 했으나 신중하게 고려하지 않은 키아프의 대응에 있다. 두 아트페어를 한덩이로 묶어가는 데 분명한 체급 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 ‘명작 퍼레이드’를 펼친 ‘프리즈 서울’ 전경. 프리즈 마스터즈 섹션에서 갤러리현대가 설치한 이승택의 작품을 관람객들이 돌아보고 있다. 갤러리현대는 박현기·이승택·곽인식 세 작가만으로 ‘돌의 세계’를 꾸며 화제를 모았다. 박현기·이승택의 작품은 11억원 상당에 판매됐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서울은 공략해야 할 타깃층이 다르다.” 이 말은 오히려 해외 미술계 관계자가 꺼냈다. 그도 그럴 것이 관람객은 대거 몰렸지만 ‘프리즈 서울’에 나온 작품 대부분은 한국의 일반 관람객에겐 그저 스마트폰에 저장할 ‘사진 속 그림’일 뿐이란 얘기다. 굳이 아트페어가 아니어도 기꺼이 찾아갔을 그 현장에서, 미술관이나 박물관 전시보다 10배 이상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그저 관람만 했다’는 소리다. 오해도 만들어냈다. 영국계 한 갤러리스트는 “한국인은 아트페어를 굉장히 좋아하는가 보다”고 말하기도 했으니까.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 ‘명작 퍼레이드’를 펼친 ‘프리즈 서울’ 전경. 프리즈 마스터즈 섹션에 나선 카스텔리갤러리는 1980년대 작품을 중심으로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개인전을 꾸렸다. 관람객들 사이로 ‘초현실주의 머리 Ⅱ’(1988·앞)와 ‘프로필 헤드’(1988)가 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키아프는 프리즈와 공동개최를 두고 “해외 미술계에 한국 미술과 작가를 소개한 성과”를 내세워왔다. 하지만 프리즈가 ‘한국 미술계에 해외 작가와 그들의 걸작을 각인한 성과’와 비교를 할 땐 소소할 수밖에 없다.

‘VIP’를 대하는 온도차도 여지없이 드러냈다. 키아프는 늘 해왔던 대로 올해도 각 갤러리에게 ‘VIP 티켓’을 할당하고 그 이상의 관리는 하지 않았던 터. 진짜 VIP인지 VIP의 티켓을 들고 온 일반 관람객인지는 구분할 재간이 없다. 그래선지 VIP에게만 전시장을 공개한다는 첫날은 항상 ‘미어터졌고’, “무슨 VIP가 이리 많은가” 했던 불만이 올해, 다름 아닌 ‘프리즈 서울’에서도 터져나왔던 거다.

지난 2일 개막을 앞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프리즈 서울’ 입구. VIP에게 전시장을 먼저 공개한 이날, 관람객들이 긴 줄을 늘어선 채 입장을 기다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첫술에 배가 부를 수 없다는 진단도 나온다. 프리즈와 키아프 양쪽에 부스를 낸 학고재갤러리의 우찬규 대표는 키아프가 강조했던 ‘한국 미술과 한국 작가가 해외 미술계 인사와 갤러리스트들에게 미친 영향’이 적잖을 것으로 내다봤다. “당장 올해는 아니어도 그 효과가 만드는 이후의 시너지를 기대해볼 만하다”는 거다.

홍콩 미술시장이 흔들리고 있는 시점에 등장한 ‘한국 미술시장’의 파워에 대해선 너나 할 것 없이 공감하는 분위기다. 아시아 미술시장의 중심에 나설 기회가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사이먼 폭스 프리즈 CEO가 “첫 개최만으로 ‘프리즈 서울’이 본고장인 런던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프리즈 아트페어가 됐다”고 한 말에도 거부감이 없다. 폭스 CEO는 “수익 면에서도 프리즈 서울이 프리즈 뉴욕이나 프리즈 LA를 제칠 수 있을 것”이라 장담하기도 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 연 ‘키아프 서울’ 전경. 학고재갤러리에 백남준의 ‘구-일렉트로닉 포인트’(1990·오른쪽)가 우뚝 섰다.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을 기념해 제작했다는 작품이다. 왼편으로 김현식의 ‘현을 보다’(2022) 연작 9점이 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그렇다고 놔두면 그냥 흘러가는 물은 아니다. 해외 미술품 경매사의 한 관계자는 “어느 작가가 뜬다고 하면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몰아가는’ 문화가 한국에 있다”며 “단단하게 다져나가야 할 미술시장에 이런 쏠림, 아울러 급속한 시장 과열은 경계해야 할 지점”이란 조언을 내놨다. 국적을 막론하고 미술시장의 기둥은 ‘작가’인데 그 작가를 제쳐두고 돈 되는 작품에만 투자하는 분위기를 꼬집은 거다. 그 관계자는 “그림 한두 점 비싸게 파는 일로 해결될 일은 분명히 아니”라고 못을 박았다.

“서울의 결과가 놀랍다”는 탄성은 올해 ‘프리즈 서울’에 참여한 해외 갤러리들의 이견 없는 반응이다. “내년에 프리즈 서울에 참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말로 기분좋은 성과에 대한 소회를 덧붙였다. 이는 새로운 시장개척으로 쓸 만한지 테스트한 ‘세계고시’에 한국이 통과됐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 연 ‘키아프 서울’ 전경. 김구림의 ‘음과 양’(2009·오른쪽)이 가나아트 부스에 걸렸다. ‘키아프 서울’의 대표작으로 나선 작품은 4억원대에 판매됐다. 그림 왼쪽으로 휠체어에 앉은 김구림 작가가 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사실 이번 행사에 해외의 갤러리스트들보다 더욱 놀란 건 대한민국의 ‘관’이다. 첫날인 2일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오세훈 서울시장이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서울’을 다녀간 데 이어 5일에는 전병극 문체부 차관까지 현장을 둘러보며 북적이는 인파 속에 섞였다.

“우수한 한국 작가와 작품이 세계적으로 알려질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박 장관의 약속에 더 빠른 실행력을 보인 건 오 시장이다. 이건희미술관 건립지로 선정한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를 “내년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서울’의 개최지로 빌려줄 의향이 있다”고 발언한 거다. 서울시는 이에 내년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서울’을 강남에서 강북으로 이전하는 방안에 대한 검토에 들어갔다. 키아프의 반응도 나쁘지 않다. 다만 결은 좀 다른 눈치다. “천막을 치거나 가건물을 세워서라도 아트페어를 유치하고 싶다는 뜻을 오 시장이 밝혔다”며 “만약 성사된다면 코엑스를 메인무대로, 송현동을 보조무대로 판을 더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 연 ‘키아프 서울’ 전경. 세련된 전시 디스플레이로 유명한 벨기에 갤러리 악셀베르보트가 ‘보따리’ 연작으로 유명한 설치미술가 김수자의 작품으로만 부스를 꾸리고 전시장 밖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연출해 호평을 얻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