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반짝이는 ‘봄’, 눈부신 쪽빛이어라

by강경록 기자
2022.04.08 00:00:02

푸근하고 눈부신 부산의 봄길을 찾아 가다
미포~송정~시랑대~오랑대까지의 봄길
옛 동해남부선 철로 옆 ‘부산그린레일웨이’
푸른 뱀 전설 간직한 청사포
기장 8경 중 하나인 해안절벽 ‘오랑대’
사진작가도 자주찾는 일출명소 ‘오랑대’

해운대 미포에서 청사포 부산그린레일웨이에서 바라본 짙푸른 부산 바다와 저 멀리 보이는 오륙도


[부산=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따스한 봄 햇살이 푸근하고 눈부시다. 이맘때만 누릴 수 있는 호사가 있다. 푸른 산들바람을 쐬며 조용한 숲을 걷고, 풀 향기 물씬 풍기는 녹음방초를 온몸으로 느껴보는 것이다. 3월의 마지막 날, 부산의 ‘봄길’을 찾아나선 이유다. 부산의 동쪽인 해운대와 송정, 그리고 기장 대변항까지 이어진 해안길을 하염없이 걸었다. 한 굽이 돌 때마다 짙푸른 봄 바다가 다가와 말을 건네고, 산자락에 새 단장을 시작한 연둣빛 숲에선 화사한 연분홍 꽃 무리를 품고선 반갑게 인사한다. 한적한 포구를 오고 가는 통통배도, 낮게 나는 갈매기떼도, 손님 기다리는 길거리 좌판의 할머니 얼굴에도 반짝이는 봄이 묻어 있었다.

부산의 봄을 마중나가는 길. 해운대 작은 포구인 ‘미포’로 향한다. 달맞이언덕 아래에 있는 작은 바닷가 마을이다. 달맞이언덕은 소를 닮아서 ‘와우산’(臥牛山)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미포가 소의 맨 아랫부분에 해당해 꼬리 ‘미’(尾)를 써서 미포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영화 ‘해운대’가 이곳에서 촬영되면서 조용했던 포구에 관광객이 몰리기 시작했다. 이후 주변이 급격하게 개발되면서 과거의 한적한 분위기는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남부동해선 폐철로를 활용해 만든 부산 해운대 미포의 해운대블루라인파크


포구에서 바다를 등지고 오르막길을 조금 오르면 공원이 보인다. 부산진구와 포항을 잇는 옛 동해남부선 철로를 활용한 관광열차 ‘해운대블루라인파크’다. 옛 동해남부선은 1935년 일제강점기에 완공된 철로다. 일본이 우리나라에서 수탈한 물자를 자기 나라로 보내려는 야욕으로 건설했다. 이후 동해남부선 복선 전철화로 2014년 폐쇄되면서 기차도, 철로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사라졌다. 녹슨 철로 위로 다시 기차가 달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20년 10월. 관광객들을 위해서였다. 미포에서 서핑 명소인 송정까지 4.8km 옛 철길 구간만 다시 이었다.

부산그린레일웨이에서 본 옛동해남부선 철로와 부산 바다


철길 옆으로 나란히 산책길도 이어져 있다. 이 길의 이름은 ‘부산그린레일웨이’. 부산 해안을 이은 갈맷길의 일부 구간이다. 이 산책길은 차장 안에서 보는 풍경과 달리, 부산의 바다와 푸른 하늘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철길 옆으로 산책을 즐기는 사람과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걷다가 문득 고개를 들고 옆으로 바라보면 드넓은 바다가 출렁이고, 찰싹이는 파도 소리가 철길 위의 낭만을 더한다.

미포에서 청사포로 가는 부산그린레일웨이에서 본 전망대와 센텀시티


미포를 지나면 곧 청사포다. 청사로라는 이름에는 슬픈 이야기가 있다. 갓 시집온 여인이 고기잡이를 나선 남편을 기다렸다. 하지만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여인은 매일 바다를 보며 그리워했다. 이에 용왕은 푸른 뱀을 보내 여인을 데려오게 해 남편을 만나게 했다는 이야기다.

원래 청사포의 이름에 뱀을 뜻하는 ‘사’(蛇)자를 쓴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은 모래 ‘사’(沙)자로 바꿨는데 그 이유가 충분치는 않다. 포구 안 마을에는 여인이 바다를 보며 남편을 기다렸다는 큰 소나무와 바위가 있다. 이름도 망부송(望夫松)과 망부암(望夫岩)이다. 바닷가 마을의 쉽지 않았을 삶이 그려진다.



푸른뱀의 전설을 형상화한 청사포 다릿돌전망대. 다릿돌이란 임은 바다 앞 가지런히 늘어선 다섯 암초가 징검다리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포구 동쪽 끝에는 다릿돌전망대가 있다. 유선형 전망대로, 푸른 뱀의 전설을 형상화했다. 길이는 무려 72.5m. 그만큼 바다로 길게 뻗어 있다. 다릿돌이라는 이름은 바다 앞 가지런히 늘어선 다섯 암초가 징검다리 같다고 해서 붙었다. 전망대 뒤편에 있는 언덕에 오르면 푸른 뱀이 바다로 날아드는 듯한 전망대의 모습을 또렷하게 볼 수 있다. 여기에 서면 다릿돌도 잘 보인다. 드넓은 바다도 펼쳐져 가슴을 탁 트이게 한다.

구덕포를 지나자 송정해수욕장과 바로 이어진다. 이 해수욕장은 부산지역 대학생들의 MT 성지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예쁜 카페와 길거리 음식들이 많고, 서핑을 즐기기 좋아 연인들도 많이 찾는다.

송정해수욕장에서 서핑을 즐기는 서퍼


젊음의 기운이 가득한 송정을 지나면 기장이다. 조용한 시골 동네였던 기장은 최근 몰라지게 달라지고 있다. 그 중심엔 오시리아 관광단지가 있다. 대규모 숙박시설과 테마파크, 쇼핑몰 등이 들어서면서 관광객을 끌어들이면서다. 오시리아라는 이름은 인근 바닷가 명승인 ‘오랑대’와 ‘시랑대’에서 앞글자를 따고, 부산으로 ‘오시라’는 중의적 의미를 더해서 붙였다.

오래된 명승으로 이름 알린 기장 8경 중의 하나인 시랑대의 해안 기암절벽


시랑대는 기장 8경 중의 하나. 오래된 기장의 명승이다. 바닷가 해안절벽의 시랑대는 가슴 탁 트이는 풍광에 예부터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았던 곳이다. 찾아가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지만, 어찌된 일인지 찾는 게 영 쉽지 않다. 여기엔 이유가 있다. 해동용궁사가 시랑대 입구를 막고 있어서다. 사찰은 울타리를 치고, 시랑대로 이어지는 길을 막았다. 대신 사찰 뒤편으로 난 오솔길로 올라 철문을 지나야 한다. 그 흔한 안내판 하나 제대로 없는 점도 시랑대를 찾는 이에게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어렵사리 철문을 지나자, 시랑대까지는 불과 200m 남짓이다.

조선 영조 9년 시랑직(이조 참의)를 지낸 권적이 새긴 ‘시랑대’(時浪臺)


계단을 따라 해안으로 내려가면 중간쯤 돌출된 바위에 ‘시랑대’(時浪臺)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이 글씨는 조선 영조 9년(1733) 시랑직(이조 참의)을 지낸 권적이 새겼다. 계단을 따라 바위 끝으로 가면 전망대가 있다. 암반 끝은 억겁의 세월 동안 수많은 풍파를 버텨낸 흔적이 주름처럼 새겨져 있다. 그리고 바위는 그 깊이를 가늠하기 힘든 짙푸른 바다와 이어져 있다. 이 모습에 우리 선조들도 그토록 많은 찬사를 보냈으리라. 이제는 누군가의 이기심으로, 찾는 이가 줄면서 그 존재조차 조금씩 잊혀가고 있는 모습이 아쉽기만 하다.

아난티코브 앞으로 난 해안산책로에서 본 해동용궁사. 시랑대 가는 길을 막고 있다.


오랑대는 좀더 북쪽에 자리하고 있다. 시랑대에서 아난티코브 앞으로 난 해안산책로를 따라가면 오랑대까지 이어진다. 오랑대는 옛날 기장으로 유배 온 친구를 만나러 다섯 선비가 이곳에 와서 풍류를 즐겼다는 설에서 전해진 이름. 사실 오랑대는 일출 명소로 이름난 곳이다. 붉은 태양과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를 동시에 감상할 수 있어서다. 크고 작은 암석 사이로 해가 떠오르는 광경은 사진작가는 물론 일반인들도 밤잠을 아껴가며 오랑대를 찾는 이유다.

오랑대 해안 기암괴석 위에 새겨진 해광사 용왕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