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성장, 역대 최대 부채에 물가까지…금리인상 압박 커진다

by최정희 기자
2021.05.14 00:00:00

원자재 가격 급등 등 에브리싱 랠리 현실화
美처럼 물가 오를 정도 아닐 듯..장기간 지속성도 의문
문 대통령 4% 성장률 미션..한은, 금리 조정 입지 좁힐 수도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이데일리 최정희 이윤화 기자] 4%대까지 거론되는 경제성장률 전망, 사상 최대 수준의 가계부채, 주식·부동산 등 자산 가격 버블 논란에 이제는 인플레이션 우려까지 더해졌다. 1년째 연 0.5%의 사상 최저 기준금리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은행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년동월비 4.2%를 기록, 1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시장의 눈은 한은을 향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라고 일축해온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긴축을 앞당길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으면서 한은이 연준보다 앞서 선제적 대응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시 한은의 시간이다.

미국의 소비자 물가가 예상치(3.6%)를 크게 상회한 4.2%를 기록하면서 모든 것이 오르는 ‘에브리싱 랠리(Everthing rally)’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

기저효과, 백신 접종에 따른 경제 활동 재개로 인한 숙박·항공 등 운임 상승에 더해 반도체 공급 부족이 빚어낸 결과이지만 이를 미국만의 현상으로 보기는 어렵다. 세계 2위 경제대국인 중국 정부도 자국 경제에 미칠 파장을 주시하면서 연이어 경고음을 내고 있다.

13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 국무원은 전날 리커창(李克强·사진) 총리 주재로 열린 상무회의를 마치고 낸 보도문에서 “국내외 정세와 시장의 변화를 주시하고 시장 조절 정책을 잘 시행함으로써 원자재 가격의 급속한 인상이 다른 곳에 영향을 끼치는 상황에 대처해야 한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대표적인 원자재 수입국가인데다 수출의 40%를 차지하는 미국, 중국의 인플레이션 경계감이 시간차를 두고 유입될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작년 5월 마이너스(-0.3%) 물가를 기록한 탓에 5월 물가상승률은 4월(2.3%)보다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우혜영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물가는 4~5월 정점을 찍을 것인데 최대 3%대로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관건은 물가상승의 지속 가능성이다. 미국은 경제 활동이 재개되면서 항공운임과 숙박비가 전월보다 각각 10.2%, 7.6% 오르는 등 펜트업(Pent-up·보복 소비) 수요가 일부 작용했다. 미국 자체적 요인도 많다는 얘기다. 특히 조 바이든 행정부가 실업수당을 지급하면서 구인란이 생겼고 이로 인해 인건비가 올라갈 가능성 등은 미국에만 국한된 얘기다. 미국내에서는 12일(현지시간) 5년물 기대인플레이션율이 2.72%로 10년물(2.54%)보다 높게 형성돼 있다는 점을 근거로 인플레이션이 단기에 그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아직 영업시간 제한 등 타이트한 방역조치 시행으로 내수 부진이 이어지고 있어 미국 만큼 물가가 오르긴 어렵다.

다만 2분기 기저효과,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물가 상승이란 ‘일시적 요인’이 예상보다 장기간 이어진다면 기대인플레이션을 높이고 이는 다시 물가를 자극할 가능성도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연초부터 “연준은 ‘고용 안정’에 중점을 두고 있지만 우리는 ‘금융 안정’에 보다 유의해야 한다”며 연준과 다른 길을 갈 것임을 선언했고 그 뒤로도 3% 중반대의 성장률을 자신하며 조금씩 금리 인상쪽으로 씨앗을 뿌리기 시작했다. 금융통화위원회 위원들도 ‘매파’ 색깔을 강화하고 있다. 한 금통위원은 4월 금통위 의사록에서 “금융안정 이슈에 대해 통화정책을 고려할 필요성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종합해보면 물가가 오르더라도 한은의 물가목표치(연 2.0%)에는 미달할 가능성이 높고 금리를 올리더라도 물가 때문이 아니라 금융 안정 측면에 무게를 둘 가능성이 제기된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권 관계자는 “물가 상승이 (금리 인상의) 충분조건이 되긴 어렵다”고 말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연내 금리 인상 가능성을 낮게 본다.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지만 우리나라와 미국은 다른 상황이고 인플레이션 때문에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은 더 없다는 얘기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금리 인상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은 커질 수 있으나 금리 인상 시기를 앞당기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도 “금리 인상을 가장 빨리 보는 시기도 내년 1분기”라며 “6개월 이상의 시차가 남아 아직까지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미 연준이 인플레이션 우려에 조기 금리 인상 등 긴축에 나설 가능성도 낮다는 평가다. 삼성선물에 따르면 연준의 금리 인상 시기를 반영하는 SOFR(Secured Overnight Financing Rate·국채담보 익일물 RP금리)가 연 0.25%(현 정책 금리 0~0.25%)를 초과하는 월물은 2023년 3월물로 시장에선 여전히 연준의 금리 인상 시점을 2023년 2분기로 보고 있다는 분석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제시한 ‘4% 경제성장률’이 2010년(6.8%) 이후 11년 만의 최고 성장률이나 아직까진 ‘목표치’이기 때문에 오히려 금리 조정의 걸림돌이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정부가 정책적 노력으로 성장률을 최대한 끌어올려 대통령의 미션을 수행해야 할텐데 이런 상황에서 한은이 금리 인상으로 찬물을 끼얹을 수 있을 지에 대한 부분이다. 조영구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올해 4% 성장률을 하더라도 내년엔 이보다 낮아질 텐데 성장률이 꺾어질 때 금리를 올린다는 것도 맞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다만 한 채권시장 관계자는 “낮은 금리가 경제를 활성화한다는 프레임이 있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낮은 금리가 과도한 가계부채 등 금융불균형을 키워 경제 활성화에 부담이 된다는 프레임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